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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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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게 한국시장이냐

등록 2008-03-28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달러화 가치 한국서 ‘나홀로 강세’ …유동성 부족해진 미국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과 채권만 팔아치워 </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엿새가 미국 자본주의를 흔들었다.’ 은 최근 미국 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유동성 위기 사태가 촉발한 긴박한 상황(3월11∼16일)을 이런 제목으로 보도했다. 베어스턴스 위기가 터지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RB)는 불을 끄기 위해 투자은행에도 재할인 창구의 접근을 허용하는 등 즉각 초강력 긴급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연준이 부실 금융기관 구제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이런 조처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거의 사용된 적이 없는 파격적인 것이다. 사실상 미국 경제가 구제금융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정보파트장은 “10여 년 전 외환위기에 빠졌던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것처럼 미국 투자은행들이 연준으로부터 긴급 유동성 지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미국 스스로 자기 나라를 구제하고 있는 게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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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구제금융을 연상케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한국 외환시장도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3월18일 달러당 원화 환율이 1030원대로 수직 상승하는 등 1997년 말 외환위기 때의 환율 급등 상황이 다시 나타났다.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30원 넘게 폭등한 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8월6일(67원) 이후 처음이다. 즉,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 반면, 상대적으로 달러화 가치가 급등한 셈이다.

“빠져도 기관·개인이 받쳐주니까”

그런데 세계적으로 미 달러화는 엔, 유로 등 다른 통화에 비해 바닥 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다. 3월17일 칼라일캐피털이 부도 상황에 직면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면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99.77엔대까지 떨어졌다. 100엔 선이 무너진 건 1995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달러화 가치의 급락을 막기 위해 선진 각국이 13년 만에 환율 공조체제를 조성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유독 한국에서만 달러화 가치가 ‘나홀로 강세’를 보이는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로 베어스턴스가 파산하는 등 미국 경제는 금융위기에 빠져들면서 달러 유동성 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부족한 달러를 공급하기 위해 미국 투자자들은 한국의 주식과 채권을 마구 팔아치우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주식·채권을 판 돈으로 달러를 매집해 미국에 달러 유동성 실탄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 외환시장에서 ‘달러 사자’세가 강하게 일면서 ‘나홀로 원화 가치 약세’라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송재은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달러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투자자들이 각국에서 투자자산을 팔고 있는데, 자본시장 자유화가 대폭 이뤄진 우리나라 주식·채권 시장이 가장 만만하다고 보고 쉽게 ‘셀 코리아’를 통해 달러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는 미국에서 터졌는데, 한국도 미국 못지않은 금융 대혼란을 맞고 있는 격이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지금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건 미국의 신용경색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현금화해 돈을 빼가는 데 가장 만만한 시장으로 한국을 꼽으면서 대규모로 주식·채권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3~4월에 있는 외국인 주식배당 송금이 본격화되면 ‘나홀로 원화 약세’는 더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외국인들은 한국을 돈을 빼갈 수 있는 환금성 좋은 시장으로 여기고 있다”며 “신흥시장 중 한국시장은 주식을 팔고 빠져도 기관·개인이 매입해 떠받쳐주기 때문에 가장 먼저 달러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만만한 시장이라고 인식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한 이명박 정부 경제팀이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지원하기 위해 원-달러 환율을 1150원까지 용인할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환투기 조짐까지 일고 있다. 금융시장 관계자는 “외환시장이 꼬이고 있다. 투기 세력이 강하게 붙고 있는 것 같다. 이명박 경제팀이 ‘나홀로 원화 약세’를 그대로 방치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막 베팅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물론 원화 가치 하락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수도,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평가절하)하면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 그러나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투자에 필요한 자본재나 소비재 등의 수입 가격이 뛰기 때문에 국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물가가 뛸 경우 소비와 투자 등 내수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시점에서 원-달러 환율 상승은 종합적으로 우리 경제에 마이너스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국제 유가가 폭등하고 있는 상태에서 환율까지 오르면 물가 압력이 크게 높아지게 된다. 수출기업의 환율 혜택도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 이미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져든 데다, 세계 경제까지 둔화되면 원화 가치가 하락해도 큰 덕을 보기 어렵게 된다. 구제금융 상태에 돌입한 미국 경제라는, 바깥에서 밀려드는 파도에 한국 금융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는 셈이다.

고유가 시대, 환율 상승은 독

투자은행 5위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지자 시장은 이제 업계 4위인 리먼브러더스의 부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다음 차례는 손보그모기지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면서 위기감은 계속 증폭되고 있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정보파트장은 “대형 투자은행 중 리먼브러더스와 스위스금융그룹(UBS)도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얘기가 있다. 곳곳에서 ‘믿을 곳이 없다’는 불신이 팽배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신용위기 공포가 극에 달하면서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갈수록 번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용 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려면 오히려 부실이 모두 드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총체적 규모를 모른다는 게 가장 큰 위험 요인이었는데, 점차 헤지펀드부터 대형 투자은행까지 부실 공포가 전염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모든 금융위기는 부실이 다 드러나 망할 것은 망하고 투자은행들이 손을 드는 국면이 전개되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전창환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아직 부실의 전모가 드러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올 여름이나 가을까지 사태가 지속될 것으로 본다”며 “연준이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처방으로 위기를 지연시키겠지만, 유동성만 자꾸 공급하는 것으론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직은 ‘위기가 지나가고 있는 국면’은 아니며, 미국 경제의 근본 문제인 과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등 고통스런 조정 과정을 미국 경제가 감내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연준은 금리 인하 처방을 통해 문제를 풀려 하고 있고, 위기가 언제 끝날 것인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3월19일 “0.75%포인트에 이르는 연준의 대폭적인 금리인하는 경기침체를 완화하는 효과를 다소 내고 약간의 혈액을 공급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미국 정책 당국이) 금융 부문 붕괴의 근저에 깔려 있는 문제들에는 접근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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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위기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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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darkblue" size="4">금융 주도 자본축적 체제의 함정 </font>

미국 경제가 오래전부터 막대한 쌍둥이(재정·무역) 적자에 허덕이고 있지만, 지금의 미국 금융위기를 초래한 1차적 요인은 금융 부문이다. 즉, 기업과 실물 부문의 수익성 위기라기보다는 ‘금융 주도 자본축적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경제는 1990년대에 정보통신(IT) 기술을 앞세운 이른바 ‘신경제’를 통해 장기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IT 과잉 투자는 2001년 닷컴 버블 붕괴를 가져왔고, 미국 경제는 심각한 침체에 빠져드는 게 불가피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사상 유례없는 초저금리 정책을 통해 경기침체를 막아왔다. 닷컴 주식 버블이 90년대 호황을 이끌었다면, 2001년 이후에는 초저금리에 따른 풍부한 시중 유동성을 바탕으로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이것이 소비를 떠받치면서 미국 경제를 견인해온 셈이다.
물론 주택 가격 버블이 터질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그 대응책으로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위험을 잘게 쪼개 분산시켜왔다. 전창환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버블 붕괴의 위험을 회피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자산 유동화와 신종 파생금융상품들이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급속히 확대됐다. 금융이 경제를 지배하는 시스템이 더욱 강화된 것”이라며 “신종 파생금융상품이 위험을 회피하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터질 위험을 단지 은폐했을 뿐이라는 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파생금융상품으로 무장한 미국 금융 시스템이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위험을 분산했기 때문에 상환 위기가 닥치더라도 큰 충격 없이 넘어갈 수 있다고 믿었고, 이런 믿음을 근거로 대출금을 상환하기 어려운 소득계층에까지 접근했다가 발목을 잡힌 것이다. 조복현 한밭대 교수(경제학)는 “자산을 증권화한 파생금융상품을 혁신적 금융기법이라고 떠들고 금융의 새로운 돌파구라고 칭송했지만, 미국 금융기관들이 결국 여기서 좌초하고 말았다”며 “외발 자전거처럼 저금리에 의존해 달리던 미국 경제가 쓰러지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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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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