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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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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세는 환경의 적이다

등록 2008-03-14 00:00 수정 2020-05-03 04:25

휘발유에 부과되고 무분별한 도로 건설에 쓰여… 두 차례 기한 연장도 부족해 일본 따라 10년 연장하나

▣ 도쿄=석광훈 도쿄대 법정대학원 객원연구원·녹색연합 정책위원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최근 일본 국회 여야가 ‘도로 건설·정비 예산’(특정도로재원)인 휘발유세 문제를 두고 격돌을 벌이고 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3월로 도로 건설을 위한 휘발유세 중 기본세율의 2배인 잠정세율(한국의 탄력세율과 동일)은 종료돼야 한다. 그러나 국토교통성과 여당은 문제의 잠정세율을 향후 10년간 연장해 약 35조엔을 조성할 뜻을 밝혔다. 이를 지방세(33조엔)와 합쳐 장장 2900km에 이르는 도로 건설과 정비에 사용하겠다는 게다.

고속도로 옆 파리 날리는 국도들

야당과 언론은 휘발유세 잠정세율의 종료와 함께 “50년 전 전후 복구 과정에나 필요했던 정부 주도의 도로 건설은 이제 시대적 사명을 다했다”며 휘발유세를 일반 재원으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국회에는 아직도 그 유명한 ‘도로공단족’이 살아 있고 도로산업계 역시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비록 지난 고이즈미 정권이 인기몰이 차원에서 도로산업의 핵심인 ‘4대 도로공단’을 형식적으로는 민영화했으나, 그 대신 국가 주도의 도로 건설 사업 지속을 보장받은 ‘도로업계-국토교통성-도로족 의원-지방자치단체’ 동맹은 여전히 건재하다.

‘특정도로재원’을 둘러싼 일본 여야의 힘겨루기가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이지만, 사실상 일본 제도를 모방해온 우리야말로 정작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일이다. 일본의 휘발유세보다 훨씬 높게 자동차 연료에 부과되는 교통세(2006년 ‘에너지교통환경세’로 이름을 바꿈)는 대부분 도로 건설과 정비에 쓰이는 목적세다. 이 교통세는 애초 2003년, 2006년 종료되는 것으로 계획됐으나, 두 번 모두 3년씩 더 연장한 바 있다. 최근 국제 고유가 상황에서 국내 정유사들의 가격 담합 의혹과 함께 납세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교통세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던 ‘휘발유세 인하’ 약속은 선거 이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국가경제를 고려할 때 고유가를 이유로 유류세를 인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기본세율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탄력세율을 약간 인하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사실 세수만 두고 말한다면 재경부의 주장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연료세를 부과하는 영국도 지난 10년간 트럭 운전자들의 강한 반발에 끄떡 않고 기존의 조세정책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는 전체 그림의 절반인 세출을 빼놓고 하는 말이다. 절반의 진실을 숨긴 주장이란 얘기다. 만약 교통세가 영국 등 유럽의 연료세처럼 일반회계, 즉 정부재정 전반을 위한 세수라면 단지 고유가를 이유로 인하나 폐지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도로 건설과 같은 특정 사업을 위해 도입한 한시적 세금이라면 과연 그 기능이 여전히 필요한지, 낭비되는 것은 없는지를 따져봐야 할 일이다.

환경단체들은 지난 15년간 눈덩이처럼 늘어난 교통세 덕분에 전국적으로 도로가 과잉 건설돼 산림 훼손이 증가된다고 지적해왔다. 또 2005년 국토연구원과 국회 환경노동위는 고속도로와 국도의 중복 노선 건설로 최대 10조원의 예산이 낭비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국토연구원이 내놓은 ‘도로와 환경영향 연구’란 보고서를 보면, 전국에서 국도와 고속도로가 나란히 뻗은 중복 구간은 31개로 총 연장 길이만도 751km에 이른다.

시민단체가 침묵하는 이유

교통세가 이런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환경부나 시민단체들은 정작 교통세 폐지나 감축에 대해 함구하거나 심지어 반대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은근히 ‘교통세’가 언젠가는 ‘환경세’로 전환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떡 줄 사람’의 의향과 영향력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순진한 발상이다. 도로공사와 국토해양부는 연간 11조원이 넘는 세수를 그렇게 호락호락 넘겨줄 의지도 없을뿐더러, 정부예산 의사결정 과정에서 환경부·시민단체·국회의원들쯤은 그야말로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애초 2006년이 만료 시한이었던 교통세의 20%를 환경세로 전환하려던 환경부는 결국 세수의 불과 2%를 얻고 이름에 ‘환경’을 붙여주는 대가로 교통세 3년 추가 연장에 들러리 역할만 해주었다.

도로공사나 국토해양부의 저항을 떠나 과연 교통세를 은근슬쩍 환경세로 바꾸는 것이 민주주의, 경제정의, 심지어는 환경정의에 맞는 일인지 자문해보야 한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민의 동의 없이, 그것도 환경의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방만한 도로 건설의 편의를 위해 도입한 세제를 이름만 바꿔 사용하겠다는 발상은 또 다른 편의주의일 뿐이다. 운이 좋아 편법으로 환경세를 도입했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민주주의가 발전한 우리 사회에서 그 정책이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이미 도로공사와 국토해양부는 2009년 종료되는 교통세의 연장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교통연구원의 연구용역을 통해 “향후 ‘한반도 기간교통망 구축’을 위해 405조원이 필요하며, 그 재원 확보를 위해 교통세를 2019년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애초 계획보다 일부 도로 구간을 축소했다는 미사여구가 덧붙여졌으나, 전체 예산은 70조원이나 늘었고 결국 교통세를 연장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핵심 요지다. 심지어 3년씩 연장하는 것도 더 이상 성에 차지 않은지, 이제는 노골적으로 일본을 따라 10년씩 연장하겠다는 모양새다.

두 차례나 교통세 시한을 연장한 국토해양부와 도로공사가 2009년 한 번 더 연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환경 진영에는 훨씬 더 강력한 지원군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소비자다. 교통세로 인한 불확실한 수요 감소 효과는 방만한 도로 건설로 인해 손쉽게 상쇄된다. 더욱이 최대 이해당사자인 자동차 운전자들을 앞에 두고 교통세와 같은 기초적인 경제 부조리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과연 더 고차원적인 환경세 도입을 추진하려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탄력세율 인하는 정답인가

성공적인 환경정책은 성숙한 민주주의와 함께 갈 수밖에 없다. 환경운동 스스로 기후변화 못지않게 방만한 도로 건설로 인한 국토 훼손과 산림 파괴를 우려한다면, 교통세 폐지는 더욱 시급한 과제다. 이명박 정부 역시 눈앞의 인기에 영합해 즉흥적으로 내놓는 교통세의 탄력세율 인하가 아니라, 방만한 국내 도로 건설을 축소하고 정부 재정을 건전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지난 3월 초 후쿠다 총리가 이끄는 일본 연립정부는 다수를 앞세워 중의원에서 휘발유세 잠정세율 연장안을 강행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부정적으로 나왔지만 ‘조용한 시민사회’인 일본에서는 시민단체의 뚜렷한 목소리나 견제가 없어 휘발유세 논쟁이 정치권의 적당한 타협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비록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이 일본 제도를 무분별하게 모방했다 하더라도, 한국의 시민사회는 일본보다 앞선 민주주의의 역량을 발휘해 일본의 폐단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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