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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올랐으니 GMO 먹어라?

등록 2008-03-07 00:00 수정 2020-05-03 04:25

가격 폭등 명분으로 안전성 논란 피해가기… 유전자조작 옥수수 대량 수입하는 국내 업체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국제 기름값 폭등 때문에 이제 유전자조작 농산물(GMO)을 먹어야 한다? 전분당 생산업체인 (주)대상 관계자는 “2006년 말 t당 150달러 수준이던 비GMO(Non-GMO) 옥수수 가격이 지난해 말 300달러로 두 배를 쳤고, 올 들어 43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대체에너지인 바이오에탄올을 만드는 데 옥수수가 대량 사용되면서 옥수수값이 폭등했다”며 “비GMO 옥수수 물량을 확보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상·CPK(옛 두산CPK)·삼양제넥스·신동방CP 등 전분당협회 소속업체들은 최근 전분·전분당 원료용으로 GMO 옥수수 5만여t을 오는 5월부터 들여오기로 결정했다. 이들 업체는 국내 전분·전분당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전분당은 각종 가공식품의 원료로 사용되는 포도당·과당·물엿 등을 뜻하는데, 전분·전분당은 과자와 빵, 음료수, 빙과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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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유·간장이 이미 GMO로

전분·전분당의 원료로 사용되는 옥수수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2006년과 2007년에 식용으로 수입한 옥수수 185만t과 195만t 가운데 GMO는 각각 12t, 60t에 불과했다. 수입 GMO 옥수수는 팝콘용과 중국음식점 식자재로 사용되고 있다. 그동안 업체들은 GMO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 때문에 가격이 30%가량 비싼 비GMO 옥수수만을 수입해왔으나, 5월부터는 미국에서 재배된 GMO 옥수수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전분당협회는 “비GMO 옥수수값이 폭등하고 물량을 구하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GMO 옥수수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콩은 2006년에 수입된 100만t 중 유전자 조작 콩이 88만t에 달할 정도로 수입량 대부분이 이미 GMO다. 대기업이 생산하는 식용 콩기름은 대부분 GMO 콩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옥수수의 경우, 나중에 국제시장에서 비GMO 옥수수 부족 문제가 해소된다 해도 국내 전분당업체들이 비GMO 옥수수 사용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적다. 한 전분당업체 관계자는 “5월부터 GMO 옥수수의 대량 수입이 이뤄지면, GMO 옥수수의 위해성이 당장 드러나지 않는 한 비GMO 옥수수를 수입해 쓰는 방식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환경연합 최준호 팀장은 “업체들이 이참에 국제 옥수수값 폭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GMO의 안전성 논란을 피해가면서 손쉽게 GMO 옥수수 수입을 관철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제적으로 GMO 정책은 ‘안전성’ 논란은 뒤로 빠진 채 ‘표시제’로 가고 있다.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국장은 “GMO가 상품화된 지 불과 10년 정도 지났는데, GMO가 간·신장·출산 등에 미치는 영향이 제대로 증명되려면 몇 세대가 흘러야 한다”며 “거대 GMO 생명공학업체들은 표시제조차 거부해왔는데, 광우병 파동으로 다시 GMO가 이슈화되면서 타협점을 찾은 것이 표시제 강화”라고 말했다. 결론을 내기 어려운 안전성 논란은 뒤로 미루고, GMO 제품이라는 표시제를 강화해 소비자들한테 알 권리와 선택권을 주자는 것이다.

물론 GMO는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안전성 평가 심사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만 수입·유통될 수 있다. 그러나 식용유·간장·전분·전분당은 GMO 성분 표시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돼 있다. 식약청 고시에 따르면, 콩·옥수수 등을 원료로 수입할 때는 GMO 표시를 하지만, 가공식품은 ‘제조·가공 후에도 유전자재조합 DNA 또는 외래단백질이 남아 있을 때’ GMO를 원료로 사용했다는 표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식약청 박선희 팀장(신소재식품팀)은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제품 상태에서의 검출 기준으로 GMO 함유 여부를 관리하고 있다”면서 “전분당이나 간장·식용유 등은 고열과 고압처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완제품에서 GMO 성분이 거의 검출되지 않고, 사실상 GMO 원료를 사용했는지 확인하거나 표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CJ제일제당과 사조O&F 등 대기업 브랜드 식용유 대부분이 GMO 콩을 원료로 쓰고 있지만 제품 겉면에 이를 표기하지 않고 있다.

GMO 표시는 유럽연합이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GMO 원료 농산물은 물론 그 원료로부터 생산되는 모든 최종 가공식품도 GMO 유전자의 검출 여부를 불문하고 GMO 표시를 하도록 돼 있다. 특히 유럽연합은 1998년에 “GMO가 인체와 환경에 해로울 수 있다”는 회원국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6년간 GMO 재배·유통에 관한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바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2001년부터 GMO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된장 같은 장류는 비GMO로 만들도록 돼 있다. 2001년에 기린·아사이 등 맥주회사들이 GMO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콩·옥수수 가공업계가 비GMO 원료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모두 GMO 쓰면 표시제 무의미

반면 미국은 아예 GMO 표시제조차 시행하지 않고 있다. 암젠, 몬샌토 등 미국의 거대 GMO 생명공학 독점기업들은 “GMO는 기존의 생물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이른바 ‘실질적 동등성 개념’을 주장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GMO의 위험성이 어디에서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며 각국에 GMO 구분 표시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럽이 GMO 표시제를 강화하자 대신 한국과 일본 등 콩·옥수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에 GMO를 팔아먹기 위해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미국 소비자들은 GMO의 안전성을 신뢰하는 것일까? 박상표 국장은 “GMO의 유해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 이유는 콩은 미국인들이 잘 안 먹고 옥수수도 대부분 가축사료로 쓰이기 때문”이라며 “정작 미국인들이 주로 먹는 밀은 아직 GMO 밀이 상품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구상에서 최초로 식탁에 오른 GMO는 토마토다. 1994년 칼젠사가 수확 뒤에도 오랫동안 물러터지지 않는 GMO 토마토를 개발해 최초로 상업화했다. 그 뒤 1996년에는 몬샌토사가 콩을, 노바티스사가 GMO 옥수수를 상품화했다. 그러나 저장·유통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GMO 토마토는 맛이 없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이 외면하면서 실패로 끝난 바 있다. GMO 감자도 나왔으나 맥도널드가 GMO 감자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현재 GMO 감자는 거의 생산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유전자조작 작물은 1996년 이후 10년간 재배 면적이 무려 50배 이상 늘고 품목도 면화, 호박, 파파야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2006년 미국의 GMO 작물 재배면적은 5460만ha로 전세계 GMO 작물 재배 면적의 53.5%를 차지한다. 몬샌토사가 개발한 GMO 옥수수 ‘MON863’의 경우 2003년과 2004년 각각 식품과 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에서 승인받은 바 있다.

이번처럼 전분당업체들이 모두 GMO 옥수수를 사용하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표시제 역시 무의미해진다. 시중에 판매되는 식용유·간장 등이 모두 GMO를 원료로 사용한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주)대상 관계자는 “전분당을 사용하는 과자· 음료 업체 중에서 GMO 옥수수를 원료로 한 전분당 대신 설탕을 사용하면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설탕을 쓰면 가격이 올라가겠지만…”이라고 말했다. 간장·식용유에 GMO 표시를 하더라도 일부 부유층만 유기농 간장·식용유를 사먹고 대다수는 어쩔 수 없이 GMO 간장·식용유를 써야 한다. 전분당·식용유는 각종 식품에 널리 쓰이는 원료들이라서 이번 GMO 옥수수 대량 수입을 계기로 값싼 GMO 원료들의 사용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높다.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소비되는 콩의 90%, 옥수수의 99%를 수입해야 하는 처지다. 박상표 국장은 “쇠고기가 1kg 생산될 때 소가 먹어치우는 옥수수가 14kg에 달할 정도로 소·돼지·닭의 사료로 쓰이는 곡물의 양이 엄청나다. 물론 사료는 대부분 GMO 곡물”이라며 “사람이 먹을 식량이 부족하고 곡물값도 폭등하면서 전세계적으로 GMO를 더 많이 생산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100% 비GMO는 없다?

그런데 현재 식용으로 수입되고 있는 비GMO 옥수수라 해도 ‘100% 비GMO’는 없다. GMO 옥수수의 생산·유통 규모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유통 과정에서 비의도적으로 GMO 옥수수가 비GMO 옥수수에 섞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비의도적 혼입률’ 허용치를 한국은 3%, 일본은 5%, 유럽은 0.9%, 아일랜드는 0.1%로 설정하고 있다. 이 수치를 초과하면 반드시 ‘GMO 포함’ 표시를 해야 한다. 바꿔말하면, GMO 성분이 3%를 넘지 않으면 GMO가 아닌 것으로 간주해준다. 비록 소량이라도 우리가 GMO 콩·옥수수를 이미 먹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비의도적 혼입률을 3%에서 5%로 더 완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업체가 안전성 검사까지

정부는 개발 업체가 보내온 자료를 토대로 검토할 뿐

유전자조작(GM)은 △어떤 생물의 유전자 중 일부를 제거하고 △기존 유전자 중 유용한 유전자만을 취하거나 △기존 유전자를 유용한 형태로 변형해 새로운 유전자를 만든 뒤 이를 다른 생물체에 옮겨 삽입해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GM 기술로 추위·병충해·제초제 등에 강한 성질을 가진 유전자를 식물에 삽입해 △곡물 생산 기간을 줄이고 △수확량을 늘리고 △영양가 높은 유전자조작농산물(GMO)을 생산한다.
유전생명공학업체들은 1만∼2만 개의 개체 샘플을 가지고 GM 실험에 착수해서 그중 1개라도 건지면 성공작이라고 평가한다. 어떤 유전자를 삽입·제거하느냐에 따라 수백 종의 GMO 콩이 존재할 수 있다. GMO 개발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고 기간도 오래 걸리는 탓에 거대 기업만 뛰어들고 있는데, GMO는 특허권을 통해 독점적 권리가 보호된다. 현재 전세계에서 40종이 넘는 GMO가 식탁에 오르고 있다.
GMO 식품의 ‘안전성’ 혹은 ‘위해성’은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고 있다. 상당수 생명과학자들은 “GMO든 비GMO든 단백질·지방·탄수화물 함량에 차이가 없다”며 ‘실질적 동등성’을 주장한다. 그런데 GMO의 단백질에 알레르기 물질이 있는지 등을 포함한 안전성 검사는 누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식약청 박선희 팀장은 “GMO 안전성 평가 심사를 하기 위해 실험실을 따로 두고 있는 국가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GMO를 개발한 업체가 보내온 자료를 토대로 GMO 유전자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실험 방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심사에 쓸 자료를 제대로 만들었는지 등을 검토해 안전성 평가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국장은 “정부나 제3자가 아니라 몬샌토 같은 GMO 개발업체가 스스로 독성 실험도 하고 안전성 테스트를 하는 격인데, 이런 자료를 믿을 수 있겠느냐”며 “실험 비용만 몬샌토가 대고 국가나 제3자가 독성 실험 등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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