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의 친환경 일관제철소 건설 현장…회사와 주민들의 협력 속에 지역 경제 활기
▣ 당진=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03년 11만7천 명이던 충남 당진군 인구는 2008년 1월 현재 13만9천 명에 이른다. 행정구역상 군 지역치고 인구가 해마다 4천 명 이상씩 늘고 있는 곳은 당진군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당진은 인구가 늘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속속 분양되고 있고, ‘시’ 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당진군 자동차 등록 대수는 2003년 3만8천 대에서 2007년 말 5만1900대로 늘었다. 군내 요식업소도 2003년 2876개에서 2007년 말 5273개로 대폭 증가했다. 2008년 1월 현재 당진군에 등록된 사업체는 총 573개(종사자 총 1만1600명)인데 2007년 한 해만 무려 270개가 늘었다. 573개 업체 중 철강 관련 업체는 150개(종사자 4533명)에 이른다. 당진은 지역 전체가 거대한 철강 벨트로 리모델링되고 있다. 현대제철이 2004년 10월 옛 한보철강 당진공장을 인수한 뒤부터다.
당진군청의 ‘현대제철 지원팀’
흥미롭게도 당진군청 지역경제과에는 ‘현대제철 지원팀’이 구성돼 있다. 당진군청 쪽은 “현대제철의 친환경 일관제철소 건설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의 신뢰를 확보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이 팀을 만들었다”며 “일관제철소가 완공될 때까지 가동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진 지역경제에서 현대제철이 차지하는 비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1월16일, 당진 현대제철소 기존 공장 옆에 새로 조성된 부지 곳곳에는 건축물을 지탱하는 데 쓰는 파일 수천 개가 박혀 있었다. 430만㎡(약 130만 평)에 달하는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공사 현장이다. 바다와 염전을 메워 만든 고로(철광석 원재료를 이용해 철강을 생산하는 공법) 공장 부지인데, 기존의 전기로(고철을 전기로 녹여 철판을 생산하는 공법) 공장부지까지 합치면 현대제철소 당진공장은 약 227만 평(여의도 면적의 2.5배)에 이른다. 공사 현장 여기저기서 굴착기들이 땅을 파고 덤프트럭들이 흙을 퍼나르고 있었다. 매서운 겨울 바닷바람을 타고 흙먼지가 날렸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홍보팀 이승희씨는 “저 넓은 부지에 중장비들이 다니는 길이 오늘 또 달라졌다”고 말했다. 온통 붉은 흙으로 뒤덮인 130만 평 공사 현장에 길이 따로 있을 리 없다. 공사가 진척되면서 그때그때 임시 차량도로가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이날 공사 현장에 투입된 중장비만 300여 대에 달했다. 2006년 10월에 첫 삽을 뜬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는 부지공사는 이제 거의 다 끝났고, 총 공정의 11% 정도 진행됐다.
당진 지역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철강 클러스터’다. 당진에는 현대제철을 비롯해 현대하이스코, 동부제강, 동국제강, 환영철강, 휴스틸, 기보스틸 등 굵직한 국내 철강업체들이 들어서 있다. 철강 관련 협력업체만 100개가 넘는다. 특히 철강시장이 장기 호황 사이클에 들어서면서 현대제철뿐 아니라 다른 철강업체들도 공장을 잇따라 늘리고 있다. 현대제철 옆에 자리잡은 동국제강은 지난해 조선용 후판 생산공장을 착공했고, 동부제강도 전기로 공장을 새로 짓고 있다. 현대제철 일관제철소가 완공되는 2015년이면 당진 지역 철강 생산량은 연간 2125만t으로 포항(연 1935만t), 광양(연 1810만t)을 웃돌게 된다. 당진을 오가며 열연코일(철강 제품)을 실어나르는 화물트럭이 급증하면서 서해안 고속도로 송악톨게이트의 통행요금 징수 창구도 6개로 늘었다.
쌀 생산지로 유명했던 당진에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기업이 모여드는 이유는 입지 조건 때문이다. 당진 근처에 철강을 원료로 하는 기아차 화성공장과 현대차 아산공장이 있고 시화공단도 가깝게 인접해 있다. 충남이 아니라 ‘경기도’ 당진이라고 불릴 정도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신승주 팀장은 “무게가 많이 나가는 철강은 물류 비용이 경쟁력의 관건이고, 따라서 철강 수요 업체와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며 “워낙 교통이 불편해 충남에서 가장 낙후됐던 당진이 급속히 발전하게 된 계기가 바로 현대제철”이라고 말했다.
옛 한보철강 직원 불러모으기도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공사 현장에 가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게 원료처리시설 공사 현장이다. ‘원료처리시설 부지’ 팻말이 큼지막하게 꽂혀 있는 곳은 파일 박는 공사가 끝나고 철근 구조물이 벌써 올라가고 있었다. 이 시설은 일관제철소의 여러 공장 건물 중 가장 먼저 착공됐다. 신 팀장은 “공사 중인 일관제철소는 친환경제철소 콘셉트로 짓고 있는데, 이는 지역 주민과 환경을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이라며 “일관제철소의 핵심인 고로(용광로)나 압연 라인을 건설하기 전에 원료창고 시설부터 짓는 것 자체가 친환경에 대한 회사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사실 몇 년 전 현대제철이 이곳에 고로 제철소를 추가로 짓겠다고 발표하자 인근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철광석과 유연탄 등 제철 원료 가루가 날려 지역이 오염될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현대제철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로제철소를 환경친화적으로 건설하기로 하고, ‘밀폐형 원료처리 창고’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철광석과 유연탄 등 제철 원료 보관창고를 거대한 돔 형태로 만드는 획기적인 구상을 내놓은 것이다. 제철 원료 야적장을 밀폐형으로 만들면 철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신 팀장은 “철광석 원료를 밀폐창고 안에 보관하는 철강업체는 현재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대부분 야적장에 쌓아놓고, 원료에 표면제를 쓰거나 야적장 주변에 나무를 심어 철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줄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철광석을 당진공장 앞 부두까지 실어온 뒤 밀폐형 컨테이너에 실어 밀폐 원료창고까지 그대로 옮길 생각이다.
물론 지역경제에 대한 기업의 역할 중에서 가장 큰 몫은 고용이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A지구의 철근공장은 한보철강 부도 이후에도 계속 가동되고 있었다. 그러나 철판을 만드는 A지구 열연공장은 현대제철이 인수한 뒤에야 정상화됐고, 한보철강을 부도에 빠뜨린 B지구 열연공장(코렉스 설비)도 2006년 10월 재가동됐다. 현대제철은 오랫동안 처참하게 망가져 고철 덩어리로 취급돼온 코렉스 공장을 되살렸고, 여기서 슬래브(고로에서 생산되는, 20t 정도의 사각형 철강 덩어리)를 압연해 두께 1.2mm의 철판을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7년여 동안 방치돼 있던 열연공장이 재가동되는 등 당진이 쇳물이 펄펄 끓는 철강도시로 변모하면서 고용도 늘어났다. 비록 자산인수 방식으로 한보철강을 인수했지만 현대제철은 당시에 남아 있던 한보철강 직원 600여 명을 모두 고용했다. 또 A지구 열연공장을 재가동할 때는 부도를 맞고 뿔뿔이 회사를 떠났던 옛 한보철강 직원 200여 명을 불러모아 복직시키기도 했다.
철강은 장치산업이라서 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건 아니지만 연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매우 크다. 현재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정규 종업원은 1900여 명이지만 공장에 상주하는 협력업체(18곳) 직원들만 3500여 명에 이른다. 당진 출신의 젊은 사람 중에 현대제철 협력업체에 일자리를 얻어 고향에 다시 내려온 사람도 여럿이라고 한다. 당진의 농촌 마을마다 두세 명씩 현대제철 공장에 들어가 일하고 있고, 지역 주민에게는 입사 전형 때 가산점이 부여된다. 특히 현대제철 공장에서 5km 정도 떨어진 송악면 고대리에는 ‘고대인력개발’이란 인력공급 업체가 설립돼 있다. 고대리 주민들이 차린 업체로, 현대제철에서 일감이 생기면 이 업체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고용되고 있다.
인근 8개 마을과 자매결연
지역사회공헌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현대제철은 당진에 ‘송산개미도서관’을 지었고, 저녁 때는 직원들이 개미도서관에 가서 아이들한테 과외 지도를 해주고 있다. 직원들이 주니어공학 교실을 운영하면서 직접 실습도구를 준비해 지역 학생들을 가르치고, 낙후된 마을 주택을 고쳐주기도 한다. 아름다운가게 바자회 행사도 가끔 열린다. 당진공장 이승희씨는 “군 지역에서 바자회가 열리는 일은 매우 드물다. 우리가 여는 바자회 행사는 당진의 지역문화를 바꾸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며 “지난해 당진군 4개 초등학교에 환경교실을 운영해 4개월 동안 수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고대리 등 공장 인근 8개 마을과 자매결연을 하고 있다. 이른바 ‘1팀1촌’ 자매결연인데 수확기에는 현대제철 직원들이 미곡처리장(RPC) 일을 돕고 있다. 고대2리도 자매결연을 한 마을이다. 고대2리 박상수(52) 이장은 “한보철강 부도 이후 지역경제가 망가지다시피 했다. 현대제철이 한보철강을 인수한 뒤 경제가 살아나면서 마을 주민 가운데 공장 근처에 새로 식당을 낸 사람도 많고 벌이도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서해 기름 유출 사고로 서해안 식당마다 개점 휴업 중이지만 당진의 식당들은 점심 때면 손님으로 꽉 찬다고 한다. 현대제철은 자매결연을 한 마을에 ‘장비운영권’을 주고 있다. 현대제철 공장에 굴착기 등이 동원될 때면 중장비 업체가 장비운영권 규정에 따라 수주 금액의 일부를 마을 발전기금으로 내놓고, 마을은 이 기금을 노인회관 건립 등에 쓰고 있다.
흥미롭게도 당진군에 있는 신성대학에는 제철산업학과가 개설돼 있다. 현대제철과 맺은 철강 인력 양성 협약에 따라 지난해 3월에 만들어진 학과다. 국내 유일의 제철학과로 1년 정원은 80명이다. 신성대학 김재근 교수(제철산업학과장)는 “전문대에서 바라기 어려울 정도로 신입생 입학 경쟁률이 높다. 제주도·포항·울산 등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이고 있다”며 “기계과·금속과가 다 사라지고 있는 와중에도 우리 대학은 제철학과 인기가 가장 높다”고 말했다. 이 대학 제철산업학과는 현대제철과 공동으로 교과과정을 편성하고, 현대제철 임원이 와서 강의도 하고 있다. 이날 학교에 특강 수업을 받으러 온 김주상(21·제철학과)씨는 “지금 철강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잖아요. 졸업할 때쯤이면 현대제철 일관제철소에 입사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를 듣고 입학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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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이 당진에 짓고 있는 ‘일관’(一貫)제철소 건설사업은 2단계로 나뉜다. 우선 2011년까지 5조2천억원을 투자해 연간 800만t의 쇳물을 생산하는 고로(高爐·용광로) 1·2호기를 건립할 예정이다. 이어 2단계로 2015년까지 2조2600억원을 투자해 연 400만t 생산 규모로 고로 3호기를 건설한다는 구상이다. 1·2·3호기가 모두 완공돼 가동되면 현대제철은 기존 전기로 공장까지 합쳐 연 2200만t의 조강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2011년 1단계 일관제철소 사업이 완공되면 현대제철은 조강 생산 능력에서 세계 10위권에 도약하게 되고, 3기 고로까지 완료되면 세계 6위권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현대제철 쪽은 고로제철소를 짓는 데 동원될 건설 인력만 9만여 명에 달하고, 제철소 운영 인력으로 7만8천여 명의 고용이 추가로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관제철소 체제는 고로를 이용해 철광석·유연탄 원재료에서 쇳물을 뽑아낸 뒤 최종 철강제품까지 모두 생산하는 제철소를 뜻한다. 현대제철의 당진 일관제철소가 완공되면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 일관제철소가 된다. 현재 현대제철이 쓰고 있는 전기로 공법은 고품질 철강제품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전기로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건설 자재로 쓰이는 철근이나 H형강이 대부분이다. 반면, 고로를 이용하면 철광석을 원료로 순도 높은 쇳물을 뽑아낸 다음 조선용 후판·자동차용 강판·가전용 철강에 쓰이는 고품질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현대제철에 따르면, 국내 철강산업은 상공정(쇳물을 녹여 열연코일·슬래브 등 중간 소재를 만드는 공정)과 하공정(열연코일·슬래브를 2차 가공해 냉연코일이나 후판을 만드는 공정) 간의 불균형이 커서 2007년 한 해에만 1630만t의 철강 중간 소재를 수입해 썼다. 상하 공정, 즉 일관제철소 체제를 갖춘 업체는 포스코가 유일하다. 그런데 철강산업이 장기 호황 사이클에 들어서면서 중간 소재 가격이 최종 제품 가격을 웃도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 일관제철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란 얘기다.
특히 현대제철 쪽은 “일관제철소가 가동되면 쇳물과 자동차용 열연강판을 생산해 현대하이스코에 공급하고, 현대하이스코는 이 제품을 소재로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생산·공급하는 수요-공급 라인을 갖추게 된다”며 “현대·기아차는 자동차를 생산하고 또 폐차를 처리하고, 폐차가 다시 현대제철로 들어오면 고철 스크랩을 전기로에서 재활용해 철근을 생산하는 ‘자원순환형 사업구조’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생산에서 폐차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친환경 자동차 리사이클링’ 체제가 갖춰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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