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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인, 김앤장을 벗기다

등록 2008-01-18 00:00 수정 2020-05-03 04:25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성역, 부패한 권력사슬의 핵심 고리… 그들을 파헤친 두 권의 책 속으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1월2일 란 책을 펴냈다. 일주일 뒤 무소속 임종인 의원은 을 냈다. 노 의원은 “삼성 그리고 부패한 권력사슬에 맞서 싸워온 노회찬의 보고서”라고 책에 썼다. 임 의원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성역, 김앤장을 말한다”고 썼다. 두 사람 모두 17대 국회 내내 거대 권력과 성역에 맞섰다. 앞으로도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두 거대 권력과 성역이 그대로인 탓이다. 오는 4월9일의 총선에서 두 의원이 다시 당선되면 거대 권력과 성역에겐 불편한 4년이 이어질 수 있다. 편집자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김앤장 법률사무소’(김앤장)는 억울할 수 있다. 한국 사회 최대의 부와 재력을 자랑하는 재벌과 외국 투기자본이 법적인 문제가 생길 때마다 믿고 찾아오는 곳일 뿐인데… 왜 한국 사회의 성역으로 불리는 걸까, 라고 하소연할 만하다.

임종인 의원은 많은 이들에게 이름조차 낯선 김앤장을 한마디로 “법조계의 삼성”이라고 말한다. 그는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위원장과 함께 펴낸 에서 법률사무소가 아닌 거대권력으로서 김앤장을 보여준다. 임 의원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의 불법성을 파헤치면서 자연스럽게 김앤장과 마주치게 됐다. 그는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국회의원들은) 우리 사회의 슈퍼 재벌로 등장한 삼성보다 더 조심한다”고 말했다. 그가 국정감사에서 김앤장에 대한 조사를 주장하고,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헌재 전 김앤장 고문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임 의원은 김앤장의 권력이 삼성과 비슷한 방식으로 형성·작동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경제 관료를 포함해서 고위 관료들은 퇴직 뒤 김앤장에 포진한다”며 “이렇게 먼저 들어간 자와 남은 자가 국내외 거대 자본의 이익을 위해 함께 움직이는 이른바 ‘철의 삼각동맹’(투기 자본-법률 엘리트-정부 관료) 구조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이헌재 부총리를 비롯한 재경부 출신 9명, 서영택 전 국세청장을 포함한 국세청 출신 22명, 김기인 전 관세청장을 비롯한 관세청 출신 5명, 금융감독원 출신 6명,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7명, 산업자원부 출신 6명, 노동부 출신 3명, 청와대 출신 3명, 감사원 출신 2명, 외교통상부, 문화관광부, 정보통신부, 국무조정실, 보건복지부 간부 출신들이 김앤장에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문’이란 타이틀로 활동하는 전직 장·차관급 인사와 국책연구기관 출신 인사도 20여 명이나 된다. 그 중심엔 대법관과 법무부 장관 등을 포함해 전직 판·검사 출신 변호사 79명이 있다. 김앤장은 옷을 벗은 주요 부처 공무원들이 새로 차린 또 하나의 대한민국 정부와 다름없어 보인다.

임 의원은 김앤장이 이러한 권력을 바탕으로 “합법과 불법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구체적인 사례들로 △진로그룹 대 골드만삭스 분쟁 △SK그룹 대 소버린의 경영권 분쟁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수 등에서 보인 김앤장의 행보를 든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삼성에버랜드 사건에서 김앤장의 삼성 쪽 변호다. 거대 권력 삼성과 김앤장의 만남이었다.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해 11월26일 기자회견에서 “삼성의 불법 행위, 특히 불법적인 승계와 관련한 범죄 행위에, 대부분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법률 조언자 내지 대리인의 방식으로 관여했다”고 폭로했다. ‘삼성 특검’에서 삼성과 김앤장의 공생 관계가 어떻게, 얼마나 드러날지 궁금하다.

임 의원은 글을 마무리하면서 “보이지 않는 권력과 잘못된 신화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며 “과도할 정도로 특권화돼 있는 법의 영역 역시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리에 맞도록 변화시켜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문제를 공론화한 것만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것 아니냐’고 묻자, “이제 시작”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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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삼성을 고발하다

몇 해 전 현직 대통령의 입에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나왔다. 삼성은 그 시장을 대표한다. 한 언론사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이 삼성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출 많이 하고 돈 많이 벌어들이는 기업으로서 삼성 말고 권력기관으로서 삼성은 어떤 모습일까? 노회찬 의원은 “세간에 삼성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헌법이나 법률로부터 부여받지 않은 권력임에도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에서 삼성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보여주려 했다.

그와 삼성의 불편한 ‘인연’은 2005년 8월1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 의원은 국회 법사위에서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다는 의혹을 산 검사 7인의 실명을 공개했다. 앞서 문화방송이 ‘안기부 X파일’을 공개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홍석현 사장이 불법 대선자금 제공 및 고위 검사들에 대한 떡값 로비 등을 모의하는 내용이었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는 이를 불법 도청했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됐지만 이학수·홍석현은 무혐의로 빠져나갔고, 사건을 처음 보도한 이상호 문화방송 기자만 기소됐다. 검찰은 노 의원마저도 지난해 5월22일 기소했다.

노 의원은 책에서 “‘도둑 잡아라!’라고 외친 시민더러 ‘도둑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처벌하고, 정작 도둑의 도둑질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하지 않은 셈”이라고 말했다. 그가 떡값 검사 실명을 공개한 지 2년이 지난 지난해 10월29일.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다. 노 의원은 “비리 천국 삼성 공화국을 바로잡을 절호의 찬스임을 직감했다”며 이틀 뒤 국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떡값 로비 검사 명단이 존재한다’고 공개했다. 이후 11월23일 노 의원의 주도적인 역할로 ‘삼성 특검법’이 통과됐다.

노 의원은 삼성의 ‘초헌법적’ 권력이 ‘삼성 장학생’으로 불리는 전직 고위 관료들의 영입과 그들을 통해 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메커니즘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그는 2005년 8월 삼성 계열사 사외이사 현황을 분석해, 전체 사외이사 54명 중 경제관료 출신이 24명, 법조계 출신이 7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들은 장·차관급과 1급 등 대부분이 고위 관료 출신이다. 이로 인한 문제로 노 의원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법률고문을 지낸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삼성 관련 헌법소원을 다룬 예 등을 꼽았다. 이건희 삼성 회장 아들 재용씨의 장인인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이 2002~2004년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았는데도 무사히 빠져나간 것도,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 넘도록 매듭되지 않는 것도 법조계 내 삼성의 권력 메커니즘이 작동한 거라고 노 의원은 보고 있다.

삼성 권력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노조 설립을 추진하다가 해고돼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맞서 10년 동안 싸웠으나,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되레 기소돼 3년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다. 노 의원과 이상호 기자는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노 의원에게 ‘지치지 않았냐’고 했더니, 그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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