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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은 욕심을 버려라”

등록 2007-11-23 00:00 수정 2020-05-03 04:25

의 유종일 교수…“장하준 교수는 한국 재벌의 문제를 과소평가 해”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약속 시각인 오후 2시에 조금 못 미쳐 호텔(서울 그랜드하얏트) 로비에 도착한 뒤 전화를 걸었더니 ‘그랜드 볼롬’(대회의장)으로 오란다. 안내인이 가리킨 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2007 서울국제금융컨퍼런스’라는 글귀가 보였다. 11월14~15일 이틀 동안 한국증권연구원·서울파이낸셜포럼 주관으로 열리는 국제 행사 첫날이었다.

유종일(49)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테이블에서 2명의 외국인과 환담 중이었다. 1명은 국내에 이미 많이 알려진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였다. 다른 1명은 멕시코 출신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차장을 지낸 지저스 시드 홍콩링난대 경제학부 학장이었다. 유 교수는 스티글리츠 교수와 둘이서만 한참 더 얘기를 나눴다.

행사장을 나와 호텔 1층 커피숍에 마주 앉자, 유 교수는 대뜸 “‘최병모(변호사) 삼성 특검을 기대하며’, 이렇게 했는데, 잘 한 건지 모르겠네”라고 운을 뗐다. 이튿날 발행될 칼럼에 삼성 문제를 다룰 특별검사로는 최병모 변호사 같은 사람이 적격이라는 취지로 글을 썼다는 것이다. 그와 김상조 한성대 교수, 홍종학 경원대 교수의 대화록인 (곽정수 엮음)를 실마리 삼아 만난 참인데, 역시 ‘삼성 문제’가 먼저 화제에 올랐다.

‘삼성 문제’는 경영권 승계 과정부터

왜 최병모 변호사인가?

“웬만한 사람, 제대로 할 수 있겠나.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삼성과 맞서 싸울 만큼 강직하고 카리스마를 갖춘 이는 그 사람뿐이니까.”

기왕 삼성 얘기가 나왔으니, 삼성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나? 근본 원인은 뭐라고 보는가?

“김용철 변호사가 의혹을 제기한 일련의 비자금, 불법 로비, 불법 승계 이런 게 삼성 문제인데, 제기된 의혹 하나하나의 사실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미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해 법원 판결(유죄)까지 나와 있다. 그 일의 실제 총책임자가 누구냐? 회장(이건희)부터 이학수(부회장) 등 실세 라인인데, 지금은 두 사람(허태학·박노빈 삼성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이 뒤집어쓴 형국이다.”

유 교수는 “삼성그룹이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기업집단으로서 당연히 가질 경제·사회적 영향력을 훨씬 뛰어넘어 지나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고, 그것이 국가기관, 공권력을 일정 부분 사유화하는 정도로까지 나가고 있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라며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예로 글로벌 스탠더드(국제표준)로 여겨지는 ‘금·산 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이 삼성그룹의 미래경영 전략에 따른 조직적인 로비로 완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영향력 때문에 경제 정책이 바뀌면 자원 배분의 왜곡을 넘어 국가 경제의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유 교수는 우려했다.

그는 “이런 현상은 삼성에도 위협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당장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토록 하는 게 편하고 좋겠지. 그렇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다 보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기관차’와 비슷해진다. 내부적인 ‘체크 앤 밸런스’(균형조절 장치)가 있어도 문제인데, 그렇지도 않고. ‘삼성공화국’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다 보면 무너질 수 있다.”

‘삼성 문제’가 왜 이렇게 커진 것일까?

“이재용(이건희 회장 외아들)한테 그룹 지배권을 승계하려는, 일련의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무리수를 뒀다. 그에 따라 여론이라든지, 여러 영향력 있는 기관들을 우호세력으로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게 아닌가 싶다. 법조인, 경제 관료들을 대대적으로 영입하는 작업을 벌인 게 그 때문이고.”

화제를 책 얘기로 돌렸다.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친하지 않은가?(는 일종의 ‘장하준 비판서’라고 한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서 한 질문이었다)

“친하지. 내가 1991년에 케임브리지대로 가서 강의할 때 만났다. 동료 교수였다. 장 교수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시부터 한국 경제를 보는 시각에 차이가 많았나?

“공통점이 많았다. 의기투합해서 같이 논문을 쓰기도 했다. 지금도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항상 약간의 차이는 존재한다. 최근엔 ‘재벌 문제’에서 차이가 크다. 와 (장하준·정승일 대담 모음집)의 핵심적인 차이가 재벌 문제다.”

경영권 보호? 적대적 M&A 있긴 했나

장 교수와 통하는 공통점이란 것은?

“시장만능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이다. 그 이론은 틀렸을 뿐 아니라 나쁜 결과를 낳는다. 미국은 자유무역을 얘기하면서 보이는, 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자국 산업을 육성한다. 자유무역론에 맹목적으로 끌려다니면 안 된다. 금융 부문도 그렇다. 국제화하고 서울을 국제금융센터로 만들자는 것은 좋은 주장이지만, 다국적 은행들이 국내 금융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는 건 위험하다.”

유 교수는 곧이어 장 교수와 다른 지점을 설명했다.

“나는 한편으론 시장만능주의가 옳지 않고, 또 한편으론 정부와 시민사회 같은 ‘비시장적 메커니즘’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또 한국이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을 인정한다 해도 정말로 한국 정부가 유능했고 한국 경제가 정말로 잘돼가는 경제라고 보지 않는다. 급속한 발전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점, 모순이 누적됐다. 정부 기구가 할 역할도 자꾸 변해야 하고. 정부의 역량과 신뢰성에 많은 의문을 갖고 있다.” 정부 주도의 ‘박정희식 개발독재 정책’은 1990년대 들어 그 유효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한국적 콘텍스트(배경)에서 생각하기보다 서양 경제학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국가냐, 시장이냐’ 하는 논쟁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우리나라 재벌의 문제점을 비교적 과소평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장 교수 또한 재벌을 편들거나 창업주 가족의 경영권 승계를 옹호하려는 취지는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진의가 왜곡되고 있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의 진의는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으로부터 국내 자본을 지켜내는 장치를 두자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유 교수는 여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외국 자본에 맞서 경영권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도 활발하게 하고, 고용 안정성을 꾀하자는 얘기, 연금이나 종업원 지주제 같은 걸 활용하는 방안은 (주주자본주의를 넘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필요하다. 동의한다. 문제는 현재 ‘콘텍스트’에서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적대적 M&A, 뭐가 있긴 했나? 하나도 없었다. 현재 경영권, 즉 기득권이 상속되는 상황에서 재계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얘기일 뿐이다.”

에서 ‘새판’의 핵심 내용은 뭔가?

“(책을 집어들어 뒤적이며) 한마디로 ‘경제 민주화’다.”

경제 민주화란 구체적으로 뭔가?

“얼핏 생각하듯이 부자들한테서 세금 거둬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는 그런 게 아니고, 시장경제 규칙을 합리적으로, 또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실은 기득권자들, 가진 자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는 규칙들을 공정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잃어버린 10년, 경제 민주화 못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규칙들을 일컫는 것인가?

“예컨대 하도급 거래와 관련해 말이 많지 않나. 단가를 낮추고 기술을 뺏어가고, 그런 것들이다. 굉장히 포괄적이다. 또 정부가 세금으로 연구·개발(R&D) 예산을 한해 11조원 가까이 편성하는데, 누구한테 도움을 주는가? 대기업에 많이 간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많이 버는 환경, 순환출자로 유지되는 재벌 구조도 있다. 교육 시스템도 문제다. 부모를 잘 만나야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는 현실이다. 공정한 경쟁 규칙이 없다.” 유 교수는 “누구에게나 잠재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주는 것을 사회적으로 책임지도록 하는 게 경제 민주화의 핵심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정치판에서 제기된 ‘잃어버린 10년’이 일반인들에게도 꽤 호소력 있게 들리는 것 같다.

“10년 전 나라 국고가 바닥나 국제통화기금(IMF)에 무릎 꿇고 ‘돈 좀 주쇼’ 한데서 사태가 시작된 것이다.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한다는 건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다. 웃기는 일이다. 그때 외환위기를 맞은 이후 한국 경제가 미흡했던 게 많았지만 좀더 건강해지고 건전해졌다.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좋아지고, 경쟁력이 높아진 성과를 부정할 수 없다.”

유 교수는 그럼에도 “서민들의 삶이 힘들어졌다”는 점에서 잃어버린 10년은 한편으로 맞다고 설명한다. “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성장세를 회복해 꾸준히 유지했음에도 서민들의 삶은 어려웠다. 왜? 양극화 문제다.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집값 폭등으로 좌절감과 불안감을 느낀다. 내 입장에선 ‘경제 민주화’를 못한 게 잃어버린 10년이다. 자본 축적을 극대화하는 요소투입형에서 지식경제로 전환했어야 하는데, 제대로 못했다. 그 결과 여당 후보 지지율이 10% 조금 넘는 지경에 처한 거다. 경제 민주화가 될 기회를 줬는데, 그것을 못한 데 대한 심판을 받는 것이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꼭 10년이다.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금융 시장의 불안감이 높다. 세계 경제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하나?

“경제학자는 예측을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예측하고 틀리면 나중에 경멸과 조롱을 받겠다. 세계 경제가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는 일은 없을 거라고 본다. 미국 시장의 불안감은 주택 시장에 국한된 문제다. 유럽 지역의 경제는 괜찮다. 우리나라 외환 보유고가 2500억달러다. 10년 전과 같은 외환위기는 절대 안 온다. 다만, 세계 금융시장의 ‘업&다운’(요동), 불안정은 지속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유동성 과잉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금융과 제조 분리해야

인터뷰 마무리는 다시 삼성 문제로 이어졌다. 삼성 문제의 해법은 뭘까?

“삼성이 길게 보고 금융계열사와 삼성전자를 위시한 제조업 쪽 계열사들을 분리하는 게 맞다. 그럼 박수 받고 금융전업가 육성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이재용의 경우, 운이 좋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최고 부자가 된 게 아니냐. 우리나라 법체계가 상속을 허용하고 있다. 남들한테 베풀고 행복하게 존경받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왜 ‘범죄자’가 돼야 하나. 지나친 욕심 때문이다. 비극적인 일이다. 삼성이 (경영권을 불법 승계하려고)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어떻게든 금융·비금융 하나로(뭉쳐) 가야 하고’ ‘어떻게든 이재용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해야 한다’는 두 전제를 삼성이 끝까지 끌어안고 가는 한 해법은 없다. 아마 그게 가능하지 않을 거다. 어떤 형태로든 위기가 닥칠 거다. 그런 사태를 보고 싶지 않다.”

686호 주요기사

▶이명박과 김경준의 질긴 인연 5막
▶가자 출근길, 굽이굽이쳐 가자
▶걸면 걸리는 선거법, 서러운 군소후보
▶동두천 방화 6개월, 답답해 열불나!
▶‘굴욕수진’을 넘어서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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