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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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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사건의 본질은 부패다

등록 2007-09-14 00:00 수정 2020-05-03 04:25

헐값 매각보다는 뇌물 사건이 더 불법적…대통령이 외환은행 매각 중지 명령 지시해야

▣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위원장

지난 9월3일 론스타와 HSBC은행은 외환은행의 지분매각에 합의했다. 협상을 시작한다는 소문이 들린 지 불과 2개월 만에 본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모두가 그 신속함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불과 며칠 전인 8월28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법원 판결 전에 승인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은 HSBC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천명했다. 론스타는 이를 보기 좋게 일축해버렸다. HSBC와 합의한 매각 금액도 일반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55억달러 정도로 예상됐던 매매 가격이 63억달러에 합의됐으니, 억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HSBC는 남 모르는 자신감이 있는가

론스타 펀드에는 ‘전격적’(?)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론스타는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국민은행과 맺은 외환은행 매매계약을 2006년 11월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당시는 론스타의 불법성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 막바지를 향해 가던 때였다. 우연의 일치일까? 론스타의 계약 파기가 있자 검찰 수사의 칼날은 무뎌졌다. 론스타 의혹의 핵심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에게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고, 김&장 법률사무소에는 압수수색이 아니라 정중하게 물어보는 서면질의를 하고 수사를 끝냈다. 그 뒤 12월28일 오벌린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취임식에서 “론스타에 대한 장기 수사가 외국 투자자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지 못한 인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의 전격적인 계약 체결은 무엇을 노리는 것인가? 통상 사모펀드의 투자 기간이 3∼5년이고, 론스타로서는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4년이 지났으니 차익 실현이 시급하다. 그러나 론스타가 서두르는 이유는 자신들의 불법이 자꾸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론스타에 의해 고용된 하종선 변호사는 법정에서 “외환은행 매각의 대가로 변양호 재경부 국장에게 돈을 주었다”고 진술했다. 최근에는 구조조정 회사인 윈앤윈21 강아무개 사장 등의 뇌물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이 회사 재무이사가 “강 사장은 론스타 관계자와 협의해 세무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네기로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는 미국 법이 철저히 금지하는 중범죄이다.

이번에 외환은행 인수계약을 체결한 HSBC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한국 시장에서 영업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고, 1997년 이후 네 번씩이나 국내 은행을 인수하려다 실패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현지 금융당국과 마찰을 빚으면서 은행업을 할 배짱을 가진 금융기관은 없다. 론스타와 HSBC가 외환은행 인수계약을 발표하던 당일에도 금융감독위원회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현재 외환은행 매각과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재판과 관련한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는 HSBC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검토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론스타의 전격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HSBC마저 투기자본의 ‘먹튀’를 도우면서 펀드를 닮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남모르는 자신감이 있는가? 이번에도 또다시 미국 인사들이 나섰다. 9월4일,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최근 몇 년 동안 외국 기업들이 한국의 규제 및 과세 당국으로부터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낀 몇몇 사건들이 있었다”며 “론스타가 가장 극적인 예(drastic case)”라고 국내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유죄판결 받아도 매각 가능하다는 논리

론스타와 HSBC의 계약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당국의 승인인데, 당국이 “법원 판결 전까지는 승인을 해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으니 문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론스타와 HSBC가 외국 여론을 동원하고 ‘외국자본 차별, 개방의 시험대’ 등의 논리를 내세워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오죽하면 금융 당국자가 “론스타와 HSBC가 한국 금융당국에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부담을 뒤집어씌우며 잃을 것이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했겠는가. 또 다른 분석은 ‘법원의 판결’에 주목하고 있다. 론스타가 무죄판결을 받으면 매각하는 데 아무런 걸림돌도 없어지게 된다. 문제는 유죄판결을 받아도 매각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유죄판결을 받으면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대주주 자격을 상실하게 되고, 이렇게 될 경우 6개월 이내에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하기만 하면 된다. 역설적으로 유죄판결이 울고 싶던 차에 뺨을 때려주는 격이 된다는 얘기다. 이런 법적 논리는 한편으로 보면 치밀하고 타당하지만, 철저히 론스타를 위한, 론스타의 논리에 불과하다. 또 론스타의 대리인인 김&장 법률사무소의 괴변에 불과하다.

2003년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조작하고 정체불명의 5장짜리 팩스를 근거로 60조원에 이르는 은행을 판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다. 당시 한국 관료와 공모했든, 아니면 관료들을 기만했든 불법적으로 매각 승인이 이루어진 사건에 대해 단순히 사후적으로 대주주 자격만 박탈된다면 어느 누가 불법을 저지르지 않겠는가? 불법이 실패하면 이후 매각하면 그만이고, 성공하면 정상적인 투자로 간주된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론스타에 불법이 없었다면 엘리스 쇼트 부회장을 비롯한 론스타 관계자들이 미국으로 도피할 이유가 무엇이며, 또 검찰 수사를 받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론스타와 HSBC가 이번 계약서에 명시한 두 개의 재판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일명 유회원 재판)과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일명 변양호 재판)의 결과는 본질이 아니다. 오히려 ‘하종선 105만달러 뇌물사건’이 론스타의 불법성에 직접 연결된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하종선 사건은 뺀 채 앞의 두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에 따르겠다며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론스타 사건과 관련해 법원의 진짜 판단을 받아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2003년 론스타에 대한 금감위의 승인과 관련해 지난해 감사원이 이미 ‘권유’한 대로 금감위 스스로 직권취소해야 한다. 행정법상 승인권에는 취소권도 포함되어 있으니 법원의 판결 이전에도 직권취소는 언제든 가능하다. 둘째, 투기자본감시센터가 2004년 10월에 제기한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취득 무효소송’에 대주주로서 적격 소송당사자인 수출입은행이 참가해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감사원은 2007년 3월 외환은행 헐값매각 감사 결과에서 수출입은행에 대해 “당시 이강원 행장 등 외환은행 경영진과 모건스탠리 등 관련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손해회복 방안을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이 두 방안을 취하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불법 인수를 얼마든지 원천무효화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 두 가지를 배제한채 오직 법원 판결만 쳐다보고 있는 꼴이다. 우리 정부가, 나중에 내려질 ‘법원 판결’을 계기로 론스타에 면죄부를 주려 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죄로 나오든 무죄로 나오든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이상한 논리가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왜 청와대 언질 있었다는 의혹 이나

사실 금융감독 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론스타가 이번에 HSBC와 외환은행 매각계약을 체결한 건 감독당국의 윗선, 즉 청와대 등의 언질이 있었다는 일부 언론의 추측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7월18일 청와대에서 열린 금융허브 회의에서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을 산 것은 리스크 테이킹을 한 것이고, 대가를 내놓으라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청와대가 사실상 HSBC의 외환은행 인수를 내락했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대통령 자신의 발언과 인사 스타일에 있다. 론스타의 2003년 외환은행 인수 건에 대해 직권취소를 결의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금감위 멤버나 관료들은 한결같이 론스타 관련자들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과 승인이 이루어지던 2002년 11월부터 2003년 7월까지 김&장 법률사무소의 고문이었다. 권오규 부총리는 외환은행 매각이 비밀리에 결정된 2003년 ‘조선호텔 10인 대책회의’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으며, 김석동 재경부 1차관은 외환은행 매각 당시 금감위 1국장이었다. 더구나 수출입은행은 론스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의 당사자인데, 양천식 수출입은행장은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 당시 금감위 위원이었다. 이러니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원천무효화하기 위한 소송이 과연 제기될 수 있을까?

이제 모든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금감위에는 ‘승인 직권취소’와 ‘외환은행 매각 중지 명령’을 내리도록 지시해야 한다. 또 수출입은행에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도록 지시해야 한다. 론스타 사건의 본질은 부패와 부정의 스캔들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자신 또한 ‘깜’도 안 되는 끝없는 의혹에 휩싸이게 될 것이고, 이것은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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