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업장 정규직을 비교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 특정 임금항목·복리후생비가 시정 대상인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7월1일부터 시행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없애기 위한 ‘비정규직 차별시정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8월22일 현재, 임금·상여금·복리후생 등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받았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별 시정을 지방노동위원회에 제기한 건 모두 113건이다. 사업장별로는 7곳인데 △농협중앙회 고령축산물 공판장 19건(경북지노위) △보안경비업체인 조은시스템 1건(경기지노위) △한국철도공사 45건(서울·충남지노위 등) △서울보증보험주식회사 1건(서울지노위) △한국허치슨터미널주식회사 3건(부산지노위) △한국소비자보호원 17건(서울지노위) △우리투자증권 27건(서울지노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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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 사례별로 보자. 한국철도공사의 경우 차량관리원·매표원·개집표원·전기원·시설관리원 등 다양한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비정규직 45명이 개별 접수한 것인데, 차별적 처우라고 제기한 내용은 동일하다. 비정규직에게는 성과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 철도공사 규정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이라는 것이다. 신청인 김아무개씨가 낸 신청서를 보면, 그는 철도공사에서 차량일반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기간제 근로자이다. 성과상여금은 정부투자기관이 매년 지급받아온 후불적 임금으로, 기획예산처가 정한 성과상여금 최저 기준은 기본급의 200%이다. 철도공사 전 직원은 2007년에 평균적으로 기본급의 296.3%에 해당하는 성과상여금을 받았다. 그러나 공사는 2007년 성과상여금 지급 대상자를 임원과 직원(정규직으로 한정)으로 정해 비정규직에게는 성과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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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공사는 업무상 재해 발생, 퇴직 등 평균임금 산정 사유가 발생할 때 성과상여금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성과상여금은 임금에 포함된다”며 “성과상여금은 공사가 은혜적·일시적으로 지급한 것이 아니라 정부투자기관법에 의해 지급한 임금이므로 차별 시정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신청서에서 “정규직과 함께 기획예산처의 철도공사 경영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기 위해 열심히 근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이란 이유만으로 성과상여금 지급에서 배제됐다”고 밝혔다. 김씨는 차별적 처우에 대한 근거로서 ‘잠정적 비교대상 정규직’으로 정아무개(매표 업무·근속 11년9개월·성과상여금 수급액 473만7710원)씨를 신청서에 명시했다. 또 자신과 비교 대상 정규직인 정씨의 업무 내용이 동일하다는 근거로 △공사가 정규직이 부족한 경우 수시로 비정규직을 채용해 정규직 업무에 투입해왔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채용 방법·절차는 다르지만, 동일한 작업 조건에서 동일한 내용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먼저 입사한 비정규직이 뒤에 입사한 정규직에게 업무를 가르쳐주는 경우도 많고 △대부분의 작업이 집단적으로 이뤄져 업무의 권한·책임이 다르지 않고 △휴가 사용으로 업무 공백이 발생하면 비정규직이 정규직 업무에 투입되거나 반대로 정규직이 비정규직이 수행하는 업무에 투입되기도 한다는 내용의 입증 자료를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김미양 전국철도노조 법규국장은 “차별 시정 제도가 신청을 제기한 개별 비정규직만 구제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차별 내용을 놓고 공사 소속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신청서를 접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며 “나중에 차별 시정 명령이 내려지면 노조가 공사 쪽과 교섭을 통해 차별 신청을 제기하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해 모든 비정규직이 차별 시정을 적용받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또 “소수의 몇 명만 차별 시정 신청을 제기하면 회사가 전환배치 등으로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어서 45명 정도까지 신청자를 넓혔다”고 말했다. 이 차별 시정 접수건과 관련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철도공사 쪽에 답변서 제출을 요구해둔 상태이다.
서울보증보험 사례는 계약직 노동자 손아무개씨가 △7월20일 회사가 지급한 7월분 기본급·수당 등 임금 항목 중 기간제 근로자는 지급 배제 또는 차등 지급한 것 △8월1일 회사가 정규직에게 지급한 상여금을 기간제 근로자에게는 지급하지 않은 것 △부모 칠순 경조금과 단체보험 가입을 기간제 근로자에 대해 적용 배제한 것 △회사의 취업 규칙 중 ‘임금 및 그 밖의 근로조건 등’을 기간제 근로자에게는 적용을 제한한 것 등이 차별적 처우에 해당한다고 신청한 것이다. 서울보증보험에서 채권 관리 및 회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손씨는 신청서에서 “회사가 정규직 근로자와는 달리 신청인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학력·경력·근속기간·연령 등의 연공을 반영하지 않은 기본급 지급 기준을 적용하고, 가족수당 및 업무(직책)수당, 시간외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계약인력 관리지침’을 정해 기간제 근로자에게는 취업규칙 중 ‘임금 그 밖의 근로조건’ 조항의 적용을 배제한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는 부당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손씨는 지급보험금 기준 300만원 미만 건에 대한 채권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그는 ‘잠정적 비교 대상자’로 300만원 이상 건에 대한 채권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규직 근로자 박아무개씨를 들면서 “구체적인 업무 내용은 정규직인 박씨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경수 민주노총 법률원 공인노무사는 “지난 6월 서울보증보험의 비정규직 노동자 몇 명이 찾아와 차별 시정 신청을 논의했고, 일단 손씨를 대표자로 해 신청하게 됐다”며 “서울보증보험의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교육·훈련도 똑같이 받고 채용 기준도 똑같은데, 회사 쪽이 차별적 취업규칙 등을 통해 비정규직에 대해 광범위한 차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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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 업무, 책임과 권한도 같다”
우리투자증권건은 철도공사 사례처럼 동일한 차별적 처우 내용에 대해 27명이 집단적으로 신청한 유형에 속한다. 27명 가운데 전아무개씨(기간제 업무전문직)의 신청서를 보면 △회사가 7월20일과 8월22일 지급한 기본급·수당·식대·교통비 등 임금 항목 중 기간제 근로자에게는 지급을 배제하거나 차등 지급하고, 정규직에게 제공한 개인연금 지원금을 기간제 근로자들에게는 지급하지 않은 것 △8월22일 정규직에게 지급한 정기상여금을 비정규직에게는 지급하지 않은 것 △경조금·의료비지원·주택구입자금 대여를 기간제 근로자에 대해 적용 배제 또는 차등 지급한 것 등이 차별적 처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영업점 창구직무전결표’에 의거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회사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해 교육·평가 시험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의 책임과 권한도 같다”고 밝혔다.
철도공사, 서울보증보험, 우리투자증권 사례에서 보듯 현재까지 접수된 차별 시정의 쟁점은 △같은 사업장에 근무하는 정규직을 비교 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체계가 다른 경우 특정한 임금 항목을 차별적 처우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 △단체협약상 복리후생비가 차별 시정 대상인 근로조건에 포함되는지 여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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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별시정제도란? |
비정규직 관련 법은 ‘차별적 처우’를 ‘임금 및 그 밖의 근로조건 등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그 밖의 근로조건’에는 근로시간·휴일·휴가·안전보건·재해보상 등 근로기준법,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 등에 의한 근로조건이 포함된다. ‘합리적 이유’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는 “취업기간, 단기고용의 특성, 업무의 범위가 다른 경우, 업무의 권한·책임이 다른 경우, 노동생산성이 객관적으로 낮은 경우 등에 의한 차별은 합리적 이유가 인정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차별시정제도는 ‘비정규직임을 이유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므로, 비정규직 고용 형태와 차별적 처우 간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차별 판단을 위해서는 비교 대상 근로자가 존재해야 하고, 또 비교 대상 근로자 선정이 타당한지에 대한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 차별 시정 신청권자는 개별 기간제·단시간·파견노동자이다. 노동조합은 배제된다. 물론 차별 시정 신청을 이유로 사용자가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하면 처벌받게 된다. 사용자가 차별 행위를 했을 당시 기간제·단시간 노동자였는데 퇴사 혹은 고용 형태 전환 등으로 신청할 때는 기간제·단시간 노동자가 아닌 경우에도 차별 시정 신청권자가 될 수 있다. 차별적 처우에 대한 시정 신청은 법 시행(7월1일) 이후에 발생한 차별적 처우만을 대상으로 하고, 그 이전에 발생한 차별적 처우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또 차별적 처우가 있은 날(계속되는 차별적 처우는 그 종료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다.
차별 시정 신청서가 전국 각 지방노동위원회에 접수되면 노동위원회는 당사자 서면·출석·현지조사 등을 거친 뒤 노동자, 사용자, 증인, 참고인 등이 참석하는 심문회의를 열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판단을 한다. 노동자는 차별적 처우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주장하면 되고, 사용자는 차별하지 않았다거나 차별에 대한 합리적 이유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차별 관련 입증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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