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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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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회공헌 현장①- KT] “자, 오늘은 컴퓨터 배우는 날”

등록 2007-08-17 00:00 수정 2020-05-03 04:25

소외계층에 정보기술 가르치는 KT의 ‘IT 서포터즈’…8년간 봉사한 홍 과장의 행복

대기업 사회공헌 현장① K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8월8일 오후,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있는 영란여자중학교 앞. 학교 담장 옆 주택가 골목길에 자리잡은 낡은 2층 건물에서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바깥으로 퍼진다. 친구와 뒹굴며 장난치다가 추적추적 여름비 내리는 골목길로 맨발로 뛰어나오는 꼬맹이도 보인다. 여름방학 중에 이 건물 1층 ‘솔로몬공부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망우동 지역 아이들이다. 공부방으로 들어가는 미닫이 문에 달린 방충망은 군데군데 찢겨져 얼기설기 바느질하듯 실로 꿰맨 자리가 눈에 띈다.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봉사활동 조직

공부방에 들어서자 초등학생 8명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뭔가를 하고 있다. “자, 오늘은 뭘 만드는 날이지? 여기 선생님 쪽 스크린을 한번 봐. 오늘 파워포인트로 시간표를 만들 건데, 알아야 될 게 뭘까?” KT 강북본부에 근무하는 홍성오(47) 과장이 오늘 컴퓨터 공부 시간 선생님이다. 아이들이 홍 과장의 도움을 받아 자기 앞 컴퓨터에 시간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유빈이, 지난번 수업을 빠지니까 오늘 잘 안 되지?” “선생님 표 크기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요?” “마우스 오른쪽을 눌러봐.” “아, 맞아. ‘그룹화’ 이걸 선택하면 되는 거죠?”

공부방 한쪽 벽에 붙은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IT 서포터즈가 해결해드립니다. IT 활용·IT 교육·IT 성능, KT 서포터즈가 무료로 지원하고 가르치고 진단해드립니다.’ 홍 과장은 이른바 ‘IT 서포터즈’다. KT는 지난 2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정보기술(IT) 소외 계층의 IT 활용 능력 향상을 위해 KT 직원으로 구성된 IT 분야 전담 봉사활동 조직(IT 서포터즈)을 구성해 활동에 들어갔다. IT 서포터즈는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컴퓨터, 인터넷 그리고 각종 IT 기기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KT의 새로운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KT는 전국적으로 26개 지역에 400명의 IT 서포터즈를 배치해 운영하고 있다.

“은혜야, 시간표를 하나씩 그릴 것이 아니고 한꺼번에 그려야지.” “아, 선생님 그러면 망친다고요.” 배불뚝이 모니터 앞에 앉은 은혜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안 망치도록 도와줄게. 은혜가 그동안 잘했는데 오늘은 왜 이래?” 홍 과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떼의 아이들이 컴퓨터 공부방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컴퓨터 공부방과 벽을 사이에 둔 옆방에서는 이 동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20여 명이 수학책을 펴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한 명이 자리를 뜨자 다들 뒤따라서 책을 내팽개치고 컴퓨터 공부방으로 건너온 것이다.

솔로몬공부방은 솔로몬지역아동센터가 운영하는 방과후 공부방으로, 공부방에 와 있는 아이들은 저소득층·결식아동·기초생활수급자 자녀 등이 대부분이다. 물론 교육비는 따로 받지 않고, 점심과 저녁 식사도 공부방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방학 중인 아이들은 집에서 아침을 먹은 뒤 이곳으로 와 저녁 늦게까지 하루를 보낸다. 홍 과장은 지난 5월부터 이곳 솔로몬공부방에 와 아이들한테 컴퓨터 활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공부방에 와서 컴퓨터를 가르치는데, 이제는 공부방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훤히 꿰고 있다. “편부모나 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여느 어린이처럼 방과후에 일반 학원 수강을 하기도 어렵고, 컴퓨터를 제대로 배우기도 어려운 아이들이죠.” 홍 과장은 IT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이 공부방에 평면 모니터 4대를 지원하고, 기존 컴퓨터도 핵심 부품을 교체해 성능을 업그레이드해놓았다.

베트남 여성들도 학생으로

솔로몬공부방 출입문에는 ‘KT 사랑의 사회봉사단’이란 마크가 붙어 있다. 이 공부방은 사랑의 봉사단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KT 사내 봉사 모임인 ‘사랑의 사회봉사단’은 2000년에 만들어졌다. 사회봉사 활동에 뜻이 있는 KT 직원들이 스스로 만든 모임으로, 홍 과장은 사회봉사단이 만들어질 때부터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공부방 어린이들이나 동네 독거노인에게 경제적인 도움도 주고, 집수리를 해줄 때도 있습니다. 봉사단 멤버들이 독거노인 집에 찾아가 세탁도 해주고 쌀이나 연탄도 제공하죠. 겨울철이면 연탄은행을 운영해 신내동 같은 동네 어귀에 연탄을 쌓아놓고 배달하는 일도 우리 봉사단이 해온 활동 중 하나입니다.” 홍 과장은 중랑구 망우동 일대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주중에는 회사 업무를 보고, 주말에 홍 과장을 비롯한 봉사단 회원들이 다 같이 시간을 내 독거노인 돕기 활동을 해왔다. 대학생인 아들과 같이, 때로는 아내와 손을 잡고 홍 과장 가족이 다 함께 독거노인 집을 방문한 적도 여러 번이다. “우리 아들이 아주 좋아해요. 경제적으로 충족하게 벌어다주지 못해도 아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아들도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죠.”

솔로몬공부방 외에 망우동에 사는 베트남 출신 기혼여성들에게 컴퓨터 활용법을 가르쳐주는 일도 요즘 IT 서포터즈로서 홍 과장의 일이다. “제가 IT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 동네 주민이 ‘베트남 출신 여성이 한 명 있는데 컴퓨터 좀 가르쳐주면 좋겠다’고 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교육 첫날 그 집에 가서 만나보니 망우동 지역에 사는 베트남 출신 기혼여성들의 모임이 따로 있더군요.” 결국 망우동에 사는 베트남 출신 기혼여성 5명이 홍 과장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학생’이 되었다. 모두 한국에 시집온 지 2∼3년 된 여성들이다.

이들은 지난 5월부터 쭝외이따(26)의 집에 모여 홍 과장한테서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다. 비록 홍 과장과 일주일에 한 번 만나지만, 지난 석 달간 홍 과장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컴퓨터 쓰는 법을 초보적인 수준이나마 터득했다. 람디깜홍(22)은 남편한테 자신의 컴퓨터 실력을 보여주면서 자랑하고, 황디엔피(24)는 인터넷으로 고향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고, 긴티유옥모츨(24)은 메신저로 베트남의 가족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쭝외이따는 ‘사랑한다’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보내는 법을 홍 과장에게 배웠는데, 남편으로부터 ‘나도 사랑해’라는 답신을 받아 즐겁다. “저한테 도움을 받은 뒤 야후 메신저를 써서 고국에 있는 친구·가족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을 가장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지금 5명의 베트남 여성은 포토숍과 무비메이커 활용법을 한창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여기에 가족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 베트남에 있는 부모님이 자신의 한국 생활을 볼 수 있게 할 생각이다. 람디깜홍은 “홍 과장님이 도와줘서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이 베트남 PC방에 가서 저와 컴퓨터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어요. 우리 집에 3살짜리 아기가 있는데 홍 과장님한테 컴퓨터를 잘 배워서 나중에 내가 직접 아기한테 컴퓨터를 가르쳐줄 거예요.” 그냥 ‘홍’으로 불리는 람디깜홍의 목소리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사고방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홍 과장은 최근 이 베트남 여성들과 경기도 양평으로 바깥 나들이를 다녀왔다. 자기 아내들이 홍 과장에게 컴퓨터 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남편들도 나들이 모임에 참석했다고 한다. “바깥으로 다니고 싶은 한창 젊은 나이에 한국에 시집왔잖아요. 제가 IT 서포터즈로 이들을 만나면서 바뀐 게 한 가지 있어요. 동네 사람들이 베트남 여성들에 대해 어떤 거부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저한테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어요.”

‘어느 날 회사가 문득 나한테 물었다. 살면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는가?’ 홍 과장이 직접 제작해 노트북에 저장해둔 사회봉사단 활동 동영상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8년간 사회봉사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사고방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독거노인들을 찾아가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고 저희한테 요구르트 한 병이라도 보답하려고 해요. 어려운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배려하면서 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전화(1577-0080)와 인터넷 홈페이지(www.itsupporters.com)를 통해 신청하면 누구나 KT 서포터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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