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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감, 세계 시장에 전염되나

등록 2007-08-17 00:00 수정 2020-05-03 04:25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촉발된 신용경색, 유럽·아시아 경제에도 위기감 감돌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촉발된 금융시장 충격이 전세계로 번지고 있다. 잠잠해지는 듯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신용경색 우려는 지난 8월9일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파리바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자산유동화증권(ABS)에 투자한 3개 펀드의 환매와 가치 산정을 일시 중단하면서 다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BNP파리바는 “미국 신용경색 우려가 확산되면서 이 펀드들의 자산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밝혔다. BNP파리바 쇼크로 미국과 유럽 증시는 급락했다. 국내 금융시장도 당장 혼란에 빠져들었다. 8월10일 코스피지수는 1828.49로 거래를 마쳐 전날보다 80.19포인트(4.20%) 폭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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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낙관론, 이틀 만에 반전

이틀 전만 해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는 금리를 인하하지 않고 기준금리를 5.25%로 동결하면서 “주택대출 부실화에 따른 신용경색 우려가 심각한 수준이 아니고, 그 영향도 제한적”이라며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연준의 발표로 국제 금융시장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만에 BNP파리바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지면서 위기감은 극도로 고조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장이 미국을 넘어 유럽 시장에까지 전염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한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과 미 FRB, 캐나다은행은 신용경색 확산을 막기 위해 긴급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ECB는 8월9일 유로머니 마켓에서 리보금리가 BNP파리바 충격으로 인해 6년 만의 최고치(5.86%)로 치솟자 950억유로를 풀어 시장에 긴급 지원했다. 연준도 금융시장에 초단기 자금 120억달러를 추가로 공급했다. 중앙은행들의 이런 이례적인 조치에 대해 투자자들은 “신용경색 위기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지난 3월 초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처음 제기될 때는 미국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됐다. 물론 BNP파리바는 부실 기준을 미국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하고, ECB가 타깃 금리를 유지하기 위해 싼 자금을 구제금융으로 공급한 측면은 있지만, 이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미국을 넘어 글로벌 투자자들의 문제라는 점이 유럽을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미국 모기지업체들은 주택 가격 하락세 속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자들의 연체율이 17% 안팎에 이르자 최근 몇 개월 동안 문을 닫고 상품 판매를 중단한 채 파산보호를 요청하고 있다. 파산보호를 신청한 미국의 모기지업체는 50여 곳인데, 뉴센트리파이낸셜은 지난 4월 청산에 들어갔고 아메리칸홈도 최근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특히 아메리칸홈은 비우량(서브프라임)과 우량(프라임) 사이의 ‘알트A’ 등급 모기지를 전문으로 해왔기 때문에 주택금융 부실이 우량 모기지에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6월 기존 주택 판매가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주택 차압도 늘고 있다.

미국발 신용시장 경색이 예상외로 심각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유럽·아시아 경제에도 위기감이 돌고 있다. 네덜란드의 한 투자은행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로 1억89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혔고, 오스트레일리아의 매쿼리 은행도 고수익 펀드에서 투자 자산의 최고 25%까지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대만의 최대 보험사인 캐세이파이낸셜도 4500만달러의 평가 손실을 입었다고 공개했다. 미국은 물론 유럽·아시아 금융시장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권에 들어간 것이다.

전세계 헤지펀드와 투자은행까지 덮쳐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헤지펀드들은 줄줄이 위기를 맞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운용하는 노스 아메리칸 에퀴티오퍼튜니티펀드는 7월에만 11%의 손실을 입어 자산을 매각했고, 골드만삭스의 최대 헤지펀드인 글로벌알파펀드마저 일부 포지션의 청산 압력을 받고 있다는 루머가 돌면서 뒤숭숭한 모습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미국 모기지 대출업체뿐 아니라 전세계 헤지펀드, 나아가 사모펀드와 우량한 투자은행에까지 덮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주식시장과 모기지 관련 채권(CDO)뿐만 아니라 삽시간에 글로벌 신용시장 전반에 퍼지면서 투자자들을 더욱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1998년 전세계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했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악몽을 떠올리기도 한다. 러시아에 대대적으로 베팅했던 대형 헤지펀드 LTCM은 러시아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에 직면하면서 루블화가 폭락하자 그대로 무너져버렸고, 전세계적인 위기를 불러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미국 전체 모기지론 시장의 12%, 미국 전체 금융 자산의 1% 미만이다. 연준 의장 벤 버냉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1천억달러(연체율 15%로 가정)로 추정하면서 경제적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규모는 아직도 제대로 드러난 상태가 아니다. 소재용 하나대투증권 금융경제팀장은 “미국 주택시장이 계속 나빠지면서 서브프라임 문제는 잠재적 불안 요소로 계속 돌출될 것”이라며 “80년대 미국의 저축대부조합(S&L) 연쇄 파산과 98년 롱텀캐피탈 사태에 비해 위험 수준이 낮긴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파생상품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부실이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특히 전세계 투자은행들이 보유한 미국 모기지 자산유동화증권의 규모가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이고, 투자은행들이 사들인 모기지 자산유동화증권(서브프라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 등급이 높은 알트A 또는 프라임모기지)까지 부실의 불길이 옮겨붙게 되면 모기지 부실은 놀라운 규모로 증가하게 된다. 중앙은행들의 긴급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서브프라임 부실이 쉽사리 꺼지지 않는 불씨로 작용하면서 상당 기간 지속될 공산이 높다는 뜻이다.

세계 금융시장에 드리운 ‘딜레마’

각국 금융당국은 “냉정해야 한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아직 건강하다” “자산가격 위험의 재평가는 조정 과정일 뿐”이라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성향은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고, 위험자산을 버리고 안전자산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미국 재무부채권은 수요가 몰리면서 채권 가격이 급등하고 수익률은 급락했다. 신용 리스크가 확산되면서 투자 심리는 급속하게 얼어붙고, 유동성 확보 차원의 펀드 환매 요청 등 자금 회수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김세중 팀장은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규모도 관심사이지만, 이로 인한 금융시장 충격이 실물에까지 영향을 미쳐 민간 소비가 크게 위축될 것인지가 미국 경제와 전세계 경제의 관건”이라며 “하지만 미국 경제가 이로 인해 급속히 하강 국면으로 빠져들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미국 경제주간지 는 “지난 97년 세계경제를 위험에 빠뜨린 ‘아시아 독감’(Asian Flu·아시아 외환위기)이 있었다면, 지금은 미국발 악재에 아시아가 전염되는 ‘미국 독감’(American Flu)이 우려된다”면서 이번 사태가 이머징 마켓에 옮겨붙을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금융권도 미국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은 8억4천만달러의 미국 주택 관련 채권을 보유하고 있고, 이 가운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은 약 2억5천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률을 17∼18%라고 추정하면 국내 금융회사들의 손실 규모는 4천만달러를 넘어선다. 이와 관련해 재정경제부는 8월9일 콜금리를 올려 시중 통화를 흡수할 정도로 국내 유동성이 풍부한 상태이고,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4.9%(전년 동기 대비)를 기록하는 등 국내 경기가 빠르게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로 인한 자금조달 어려움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신용경색이 확산되면 금리가 급등하고 미국 등의 경기가 침체되면 수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헤지펀드 블랙메사는 8월8일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정상적인 상황이, 우리 전략에도 없는 이상한 일들이 시장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표현했다. 전세계적인 저금리 물결 속에서 글로벌 유동성은 넘치는데도 갑작스럽게 신용경색 현상이 퍼지고 있는, 어떤 ‘딜레마’가 전세계 금융시장을 덮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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