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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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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소싱 업체들의 달콤한 여름

등록 2007-07-20 00:00 수정 2020-05-03 04:25

새로운 이슈로 떠오른 외주용역화…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기업들 앞다퉈 시행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이랜드 사태가 보여주듯 7월1일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기업들은 기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거 외주용역화(아웃소싱)하고 있다. 기업들이 그동안 직접 고용해 활용했던 기간제(계약직) 비정규직을 간접고용으로 바꾸는 현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간접고용은 고용계약을 해지한 뒤 동일한 업무를 제3의 인력공급 업체에 외주로 돌리는 것으로, 이는 비정규직법 시행에 대한 기업들의 가장 흔한 대응 방식이 되고 있다.

이랜드, 현대백화점, 하나은행…

기업들이 외주용역화를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정규직법의 ‘2년 근로 이후 정규직화’와 ‘비정규직 차별시정 제도’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다. 외주화는 해당 비정규직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외주 노동자를 활용하는 기업은 노사관계의 당사자가 더 이상 아니고, 따라서 고용과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의무를 외주 기업한테 떠넘길 수 있다. 현행 비정규직법은 직접고용 기간제·단시간근로자 그리고 파견근로자의 고용에 관한 내용만 규율하고 있을 뿐 외주용역 노동자의 고용과 노동조건을 규율하는 장치는 전혀 없다.

이랜드는 인력 아웃소싱을 선도하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랜드 뉴코아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직접고용하고 있던 매장의 비정규직 계산원을 전원 계약 해지하고 외주용역으로 돌렸다. 이랜드로부터 뉴코아 계산원 업무를 외주받은 대표적인 업체는 뷰티플휴먼이라는 인력공급 업체다. 2005년에 법인 설립한 뷰티플휴먼의 임원은 주로 이랜드그룹 출신인데, 하아무개 대표이사는 이랜드그룹에 있을 때 이사를 지냈고, 김아무개 전략기획실장은 이랜드에서 인사팀장을 지낸 바 있다. 뷰티플휴먼은 법인 설립 직후부터 이랜드그룹의 뉴코아·홈에버·아울렛 매장의 판매 서비스 업무를 상당 부분 위탁받아 대행하고 있다. 즉, 뷰티플휴먼이 고용한 비정규직 판매 인력을 이랜드 매장에 보내 계산원 등의 업무에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뷰티플휴먼은 중국에 진출한 이랜드 매장의 고객만족 컨설팅도 맡고 있을 정도로 이랜드그룹과 밀접한 거래관계를 맺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랜드노동조합은 “이랜드가 비정규직 법안 시행에 대비해 정규직화 부담 등을 피하기 위해 일찌감치 별도의 인력공급 업체를 그룹 바깥에 두고 외주용역화를 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랜드는 특히 7월 말 개점 예정인 홈에버 광주 유동점의 계산원과 신선매장 판매 인력 전원을 (주)세루넷코리아라는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할 예정이다.

현대백화점도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계산원 업무를 전면 외주화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그동안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인 채 매장 계산 업무를 수행해왔는데, 기존 정규직 계산원 500여 명은 다른 부서로 전환 배치하고 비정규직 계산원 100여 명은 외주 업체로 고용관계를 바꿔 용역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백화점노동조합 관계자는 “회사 쪽이 계산원 업무의 전면 외주화를 제기했을 때 처음에 노동조합은 이를 비정규직법의 차별 시정 조치를 회피하기 위한 의도라고 보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조합원 신분의 정규직 계산원 노동자들이 다른 직무로 전환을 요구했고, 이를 노동조합이 반영하면서 결국 남은 비정규직 계산원은 외주용역으로 전환하기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최근 비어 있던 비정규직 자리에 새로운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해 사용하지 않고, 대신 인력파견 업체인 유니에스로부터 21명을 아웃소싱하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계약 기간이 끝나서 비게 되는 비정규직 일자리는 대부분 외주용역 직원으로 채워넣을 계획이다. 인력을 간접고용으로 외주화하게 된 과정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비정규직법을 회피하고 노사관계 당사자로서의 책임을 비켜가기 위한 의도라는 점에서는 이랜드, 현대백화점, 하나은행 모두 똑같다.

‘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500일 가까이 파업 중인 KTX 승무원 사태 역시 핵심 문제는 간접고용이다. 철도공사는 2004년 KTX 운행을 시작할 때부터 공사의 자회사인 철도유통에 승무 업무를 외주위탁했다. 공공부문에서조차 외주화 양상이 빠르게 확산돼온 것이다. 그러나 KTX 승무원들은 철도유통이라는 자회사에 업무가 위탁돼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1년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손지혜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상황실장은 “당시 철도유통과 근로계약서를 쓸 때 대부분 사인만 했을 뿐 실질적 고용은 철도공사가 책임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공사는 ‘승무 업무를 이미 외주(현재는 ‘KTX 관광레저’가 위탁업체)로 돌렸기 때문에 직접고용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맞장구치듯 외주용역화 활성화

사실 업무의 외주용역화는 외환위기 이후 단순 경비·청소 용역에서부터 텔레마케팅, 유통, 물류 그리고 재무회계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 산업에 걸쳐 폭넓게 이뤄져왔다. 한국아웃소싱기업협회와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에서 활동 중인 아웃소싱 업체는 대략 2천여 곳에 이른다. 대부분 인력 아웃소싱 업체들인데, ㅅ개발 등 메이저 업체의 매출은 연간 1천억원 이상이라고 한다. 한국아웃소싱기업협회 조경행 회장은 “주식시장 상장을 대기하고 있는 업체도 여럿 있을 정도로 아웃소싱 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웃소싱기업협회가 주관하는 민간자격시험인 아웃소싱지도사 자격증 제도까지 있고, 협회는 아웃소싱특별법 제정까지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정부 역시 서비스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목에서 (인력) 아웃소싱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산업자원부는 현재 아웃소싱 활성화 방안 연구용역을 외부에 맡긴 상태다. 기업들은 외주용역화를 통해 비정규직법을 피해가려 하고, 정부 역시 맞장구치듯 외주용역화 활성화를 꾀하면서 바야흐로 아웃소싱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어느 아웃소싱 컨설팅 업체의 홈페이지는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역사상 최대의 아웃소싱 업체 성장 기회가 도래했다. 많은 기업들이 아웃소싱을 검토하고 있다. 가장 많은 오더 물량이 쏟아져나올 이 시기에 영업전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물론 업무든 인력이든 아웃소싱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인력 외주용역화는 법의 취지를 무력화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저임금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외주용역화’가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우리나라 비정규직 문제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그들에겐 너무 먼 차별 시정 제도

외주용역·분리직군 노동자들이 제도 활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

비정규직법은 기간제 근로자 및 단시간 근로자와 계약을 체결할 때 △근로계약 기간 △근로시간·휴게사항 △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지급방법 △휴일·휴가 △취업 장소와 종사해야 할 업무 △근로일 및 근로일별 근로시간(단시간 근로자)을 반드시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근로조건과 관련해 비정규직법은 차별 시정 제도를 두고 있다. 즉, 법안 제8조 ‘차별적 처우의 금지’는 “사용자는 기간제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차별적 처우란 ‘임금 그 밖의 근로조건 등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을 말한다.
차별적 처우에 대한 시정은 차별적 처우가 있는 날로부터 3개월 안에 개별 노동자가 지방노동위원회에 신청할 수 있다. 차별적 처우를 둘러싼 분쟁에서 입증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 즉, 차별적 처우를 하지 않았음을 사용자 쪽이 입증하지 못하면 차별적 처우를 한 것으로 인정된다. 노동위원회는 조사 등을 거쳐 차별적 처우에 해당한다고 판정하면 사용자에게 시정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이때 시정 명령의 내용과 이행기간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시정 명령에 불복할 경우 당사자는 10일 안에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고, 중노위 재심 결정에 대해 다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비정규직법은 또 차별적 처우의 시정 신청을 이유로 해당 노동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확정된 시정 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하지 않으면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린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차별 시정 절차가 복잡하고 사용자 쪽이 계속 재심을 제기하면서 질질 끌 가능성도 있다. 특히 외주용역 노동자 또는 우리은행처럼 분리직군제 형태의 ‘반쪽’ 정규직 노동자는 차별시정 제도를 활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당 사업장의 직접고용 정규직 노동자들을 차별적 처우의 비교 대상 노동자로 볼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되기 때문이다. 회사 쪽이 “근로계약 당사자가 전혀 다르고, 수행하는 업무도 정규직과 질적으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차별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울 경우 외주용역 노동자나 분리직군 노동자들이 이를 반박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외주화하거나 분리직군으로 바꾸는 것도 이 점을 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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