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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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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성장 대신 행복으로

등록 2007-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행복경제학의 전도사 조승헌 소장…행복의 요소들 실증 분석…한국에선 나이에 따라 변화, 40대 초·중반에 바닥 치고 그 상태로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경제학에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란 딱지를 붙인 이는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1795~1881)이었다. 칼라일은 맬서스의 을 읽은 뒤 ‘경제학은 극단적인 비관론을 펴는 학문’이라는 뜻에서 그런 낙인을 찍었다고 전한다.

경제학에 조롱을 보낸 유명인사의 대열에는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해리 트루먼도 끼어 있었다. 트루먼은 “외팔이 경제학자는 어디 없느냐”고 투덜대곤 했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를 처음 설치했고,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중시했던 트루먼은 “한편으론(on the one hand), 다른 한편으론(on the other hand)” 하는 소리에 질려 했다고 한다.

현실 문제의 해결 능력은 고사하고 명쾌한 설명력조차 없는 ‘무력한 학문’이란 비아냥 섞인 감정은 역사 속의 유명인사들뿐 아니라 오늘의 일반인들도 공통으로 갖고 있지 않을까? 주류 경제학의 정의대로라면 ‘경제학’은 그런 조롱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어려운 숙명을 안고 있다. 유한한 자원을 이리저리 조합하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무한한 인간의 욕구를 도대체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원을 어떻게 조합하느냐는 선택에 따라 효용(만족도)을 얼마간 높일 순 있어도 무한수(인간의 욕구)로 나뉘는 순간 곧바로 영(0)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적어도 전통적인 정의에 따른다면 경제학은 이처럼 인간의 행복을 높이는 데는 무력한 것으로 보임에도 둘을 결합한 ‘행복경제학’을 주창하는 목소리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행복경제학의 이름을 단 서적이 잇따라 출간되고, 각종 학회에서 행복경제학 분야의 논문이 발표되기도 한다. 지난 2월14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국경제학회에서 발표된 ‘행복경제학 개념을 적용한 환경만족도 상승의 화폐가치 상당액 추정’도 그런 예다. 이 논문 발표자인 조승헌 ‘생명과 평화를 위한 환경연구소’ 소장은 국내에 행복경제학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인 경제 분야의 한국 사회 대안 모델 연구도 그에겐 행복경제학 공부의 하나다. 행복경제학을 혁신적 대안 모델로 여기는 조 소장으로부터 행복경제학이 뭔지, 지금의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를 띠는 것인지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2월20일 한겨레신문사 옥상 정원에서 이뤄졌다.

기본적으로 ‘선진국 학문’이다

우울한 학문이라는 경제학과 행복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행복경제학은 뭔가?

“행복은 마음, 곧 주관의 문제인 반면 경제학은 사실 그와 대립되는 객관적이고 드라이(건조)한 것이다. 그걸 합쳐놓은 행복경제학은 기본적으로 학제 간 연구다. 어떻게 보면 잡학이다. 심리학, 경제학, 사회학을 포함한다.”

행복경제학은 돈 또는 경제라는 객관적인 조건과 각 개인의 심리는 어떻게 관련되는지, 또 사회적인 제도와는 어떻게 접맥되는지를 연구하는 분야라고 보면 된다는 설명이다.

행복경제학은 1974년에 나온,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의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비롯된 개념이라고 조 소장은 들려줬다. “당시 논문은 2차 대전 이후 일본과 미국, 유럽 국가들의 실질소득 증가와 행복만족도 데이터를 비교해 그래프로 그린 내용이었다. 결과는? 실질소득은 2~3배 올랐는데, 행복 그래프는 약간만 오르는 데 그쳤다. 일본이 (증가세가) 가장 미미했고, 유럽도 조금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행복의 역설’이란 용어가 나오게 됐다고 한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선 효용(만족도)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게 돈이고, 돈을 많이 벌었으면(실질소득 증가) 그에 따라 행복감 또한 적당히 올라가는 게 정상인데 실제론 달랐기 때문이다.

조 소장은 “행복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선진국 학문’”이라고 덧붙였다. 물질적으로 궁핍한 후진 사회에선 돈은 곧 행복으로 연결되다가 어느 수준에 이르면 돈이 행복에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미미하거나 불확실해진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같은 선진국 안에서도 일본과 유럽 나라들은 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 조 소장은 이를 ‘문화적인 현상’으로 분석한다. “일본은 집단주의 문화인 반면, 서양은 개인주의 사회다. 행복의 메커니즘을 보면 기대치와 실제 이뤄진 것 사이의 간격에서 영향을 크게 받는다. 집단·유교주의 문화권에선 가치관의 잣대가 자기 내면보다 사회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것에 달려 있다. 반면, 서양에선 개인 나름의 독특한 기준이 있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게 더 강한 편이다.”

행복경제학은 결국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통상적인 얘기를 하려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돈 욕심을 자제하라는 인생론이나 행복론과 뭐가 다른가?

“(행복경제학은) 행복 전도사가 아니다. ‘웃으면 복이 와요’ 같은 게 아니다. 행복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나눠 실증 분석을 하는 것이다.” 돈·건강·결혼 여부·주거 지역 등 객관적 조건과, 설문조사 방식으로 뽑아낸 주관적 행복감의 관계를 연구한다는 것이다. “서구 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행복의 50%가량은 유전적·고정적인 게 좌우한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낙관·비관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나머지 절반이 돈, 건강 같은 것들이다. 행복경제학의 관심사는 이 부분을 어떻게 건드려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개인적·제도적인 차원의 해법을 모색

행복경제학으로 사회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가?

“아직 버겁다. 행복 정책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극소수다. 행복경제학을 다룬 책은 나와 있어도 대부분 번역서이고, 처세술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조 소장은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행복 실상(행복감의 수준과 그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관련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조 소장이 이미 분석한 자료 중에는 서울·서울 근교·지방 등 사는 지역에 따른 행복감의 차이, 종교 유무, 나이 등에 따른 행복도의 차이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재미있게 나타나는 결과는 나이 수준에 따른 행복도의 변화 흐름이라고 한다. 행복 그래프의 변화는 통상 40대 초·중반에서 바닥을 치고 다시 서서히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에선 바닥을 친 다음 올라가지 않고 생애 막판까지 거의 정지돼 있는 것으로 조사된다는 설명이다. 왜 그럴까? “처음 직장에 들어가면 이사가 되고 싶고, 최고경영자(CEO)도 되고 싶어한다. 그러다 안 되는 걸 알면 거기에 적응하면서 가족과 친하게 지내는 식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끝까지 욕심을 거두지 않거나 아예 완전히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분위기가 강한 문화에선 행복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라면 심리적·철학적 처방 외에 어떤 해법이 있을 수 있는가?

“행복경제학은 아직 행복 정책을 제시할 만큼 정치하게 논리적으로 발전된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돈, 건강, 종교 같은 행복 결정인자들 가운데 어디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더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하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한 정도다.”

행복경제학이 우리 국민들의 행복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돈만으로 행복해지려는 사회 풍조는 어리석다는 걸 자료와 실상을 통해 말하고, 정책에 반영시키려고 한다. 아직은 역부족이지만 사회 발전 단계상 행복이란 단어를 학문적으로 진지하게 다루는 시기가 머지않아 올 것이다.” 조 소장은 이와 관련해 “행복연구팀을 꾸리고 행복학회를 만드는 걸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웃으면 행복 와요’ 하는 이들도 참여하고, 과학적·논리적인 사람들도 들어와 돈 안 들이고 경쟁 덜 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개인적·제도적인 차원의 해법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 분위기에서 이는 절실한 과제라는 게 조 소장의 주장이다. “우리 역사를 생각해볼 때 전쟁 같은 난국을 뺀 평상시에 이렇게 물질에 탐닉한 시기가 유사 이래 없었다. 외환위기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국가 부도 상황에서 믿을 건 나밖에 없고, 결국 돈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내렸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국민들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 정부에서 제도적으로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게 조 소장의 설명이다.

소득계층별로 차별적인 정책 필요

현실 경제에서 가장 큰 과제는 시장만능주의(신자유주의)에 따른 양극화, 빈곤화가 꼽힌다. 행복경제학이 이 문제와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진보, 보수 양쪽 다 ‘성장동력’을 말한다. 이게 신자유주의와 다를 게 뭔가? 성장동력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현재 성장률은 절대 부족하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다. 사실 우리 경제 수준에서 4% 성장은 정상이다.” 성장을 목표로 삼을 게 아니라 행복을 목표로 삼는 담론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돈 버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추가로 더 벌이들이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성장이 아닌) 행복을 잣대로 삼으면 다른 행동이 나올 수 있다.”

행복경제학에는 위험 요소도 아울러 숨어 있다고 조 소장은 경계했다. 사회·경제 분야의 불평불만을 억제하는 보수적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돈과 행복은 무관하니 가난한 이들은 돈 없다고 불평불만을 하지 말라’는 식의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거꾸로 부유층에 압박을 가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게 조 소장의 설명이다. “돈을 추가로 갖는 게 행복과 무관하다는 논리는 부유세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결국 행복경제학의 시사점은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최종적인 목표 아래 소득계층별로 차별적인 정책을 펴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 여가 시설을 만들 때나 중앙정부에서 교육·육아 정책 등을 펼 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 소장은 말했다.



산에 오르며 깨달음을 얻다

환경정책에서 행복으로 연구분야 바꾼 조승헌 소장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조승헌 ‘생명과 평화를 위한 환경연구소’ 소장은 1980년대 말 입사한 삼성전자를 1년 만에 그만두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들어갔다. ‘하루 세 끼 라면을 먹어도 마음 편히 살자’는 뜻에서였다고 한다. 경실련 시절 그는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과 함께 경제부정고발센터에서 일했다.
미국 조지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엔 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서 일하며 굵직굵직한 환경 이슈에 매달렸다. ‘새만금 재판’에서 법정 증언을 하고, 북한산·천성산 터널 공사와 관련한 노선 검토 작업에 깊숙이 개입했던 게 그런 예다.
환경 갈등 이슈에 지친 그는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을 떠나 2004년 따로 독립 연구소를 차리게 된다. 이즈음 6개월 동안 북한산에 오르면서 평범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내가 옳다 생각하고 그게 진리라고 해도 그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람이 있구나!’ 말도 안 되는 엉터리 논리에 분개하며 글을 쓰고 호응을 얻으면서 그게 세상 일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느꼈다.
그가 행복경제학을 접한 건 2000년께이며, 2005년 초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환경 문제에 매달리는 이들은 많지만, 행복경제학은 미개척 분야라는 판단에서였다.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 중인 경제 분야 한국 사회의 대안 모델에 대한 성과물이 나오는 올 9월쯤이면 그가 그리는 좀더 구체적인 행복경제학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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