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기업은행 등 2000년대 이후 새로운‘기업이미지 통합’의 진화…글로벌화 추세에 따라 영문으로, 감성적·여성적 이미지 강조 위해 소문자로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2월14일 한국도로공사는 새로운 CI(Corporate Identity·기업이미지 통합)를 내놓았다. 도로공사의 새 얼굴은 핵심 업무영역인 ‘Expressway’를 간결하고 힘있게 표현한 약자로, 고속도로를 모티브로 E와 X가 서로 연결되고 교차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고속도로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기존의 심벌과 달리 영문 문자를 심벌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슬로건도 기존의 ‘행복을 이어주는 사람들’과 더불어 새로운 영문 슬로건 ‘The Way ToMorrow’를 쓰기로 했다. 과거의 무거운 이미지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다.
기업은행 역시 지난 1월4일 새로운 CI를 선포했다. 기업은행 쪽은 “새로운 CI인 IBK는 나(I)의 성공 날개”라며 “3인칭 ‘고객’이란 말을 없앴는데 이는 고객을 영업의 객체로 보던 기존의 인식을 과감히 떨쳐내겠다는 경영 철학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설명했다. 또 나의 성공 날개를 달아주는 은행이란 뜻의 ‘Win-Wing’이 애칭으로 붙여졌다고 한다. IBK는 기업은행의 영문 표기(Industrial Bank of Korea)의 약자인데 ‘B’를 거대한 새의 날개로 형상화했다. 그동안 번개가 그려진 화약기업 이미지를 강하게 갖고 있던 한화그룹은 지난해 11월 ‘한화 트라이서클(TRIcircle)’이라는 새 CI를 공개했다. 대한생명 인수 등으로 그룹의 사업영역이 다소 바뀐 한화그룹은 이번 CI 개편을 통해 화약 냄새를 탈피하고, 그룹의 3개 사업부문(금융, 제조·건설, 유통·레저)이 상호 시너지 효과를 형성한다는 비전을 담았다. 한화 쪽은 “그동안 정적이고 보수적이고 안정추구적인 그룹 이미지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업으로 동적이고 진취적인 브랜드로 나아가는 뜻을 표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는 한국화약그룹의 영문표기(Korea Explosives Group)가 자칫 테러집단으로 오해받을 수 있고 군수업체로 연상된다는 지적에 따라 1992년 ‘한화’로 CI를 전면 교체한 바 있다.
새로운 이미지를 담아 변신을 알려라
시대 변화에 맞춰 기업들의 CI 교체가 유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기업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와 비전을 응축해 기업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CI는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면서 갈수록 진화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기업 인수·합병, 계열 분리 등에 따른 사업내용 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이미지 구축, 글로벌 시장을 향한 이미지 변신,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 탈피를 위한 시도 등이 CI를 새로 바꾸는 주요 목적이다. 기존 CI의 리뉴얼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바꾸기도 한다.
2000년대 이후 새로운 CI의 특징을 보면 우선 기업 이름을 축소해 새롭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나타내는 경향이 강하다. 포스코는 ‘포항종합제철’이란 이름이 갖는 지역성을 탈피하기 위해 지난 2002년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POSCO’로 CI를 바꿨고, 같은 해에 한국통신도 ‘KT’로, 한국담배인삼공사도 ‘KT&G’로 이름을 바꿨다. 기업 이름이 길수록 인지도와 기억력은 급속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포스코, KT, KT&G가 보여주듯, 글로벌화 추세에 따라 영문 서체로 기업 이름을 바꾸는 사례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4년 3월 증권예탁원에 따르면, 1999∼2003년에 상장·등록사 1553곳 중에서 408곳(26%)이 회사 이름을 바꿨다. 바뀐 이름은 CJ(제일제당), 삼성SDI(삼성전관) 등 영어식 약자 표기가 대부분이었다.
거대 공장 이미지 탈피하려 소문자 ‘워드마크’
영문 서체 중에서도 소문자 표기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젊고 감성적인 기업 이미지로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다. 부천대 정소영 교수(광고디자인과)는 “과거에 기업들은 영문을 사용할 때 대문자로 표기해 견실함, 위엄, 강인함, 거대함 같은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다”며 “그러나 이메일 주소가 소문자로 구성되는 등 소문자에 익숙한 인터넷이 확산되고, 감성적인 분위기가 소비 시장을 주도하면서 기업 영문 이름도 소문자로 표기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경우 강인한 철강과 거대한 공장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소문자로 표기된 ‘워드마크’(상자기사 참조)를 새로운 CI로 내세웠다. 하이닉스도 투박한 남성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영문 소문자 스타일을 적용해 부드러운 곡선으로 날렵한 느낌을 줬다. 자유롭게 손으로 쓴 필기체 기업 이름도 늘고 있다. 국민은행의 CI는 고급스러운 별 모양의 심벌에다 부드러운 필체로 쓴 소문자 ‘b’를 넣어 무거운 느낌을 없애고 친근함을 보여준다. 서울시의 CI인 ‘하이 서울’도 관료적이고 딱딱한 경향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1993년에 제2의 창업 선언과 함께 CI를 바꾼 삼성(SAMSUNG)과 1994년에 바꾼 기아(KIA)는 둘 다 이름 속에 들어 있는 ‘A’ 자의 가로획을 과감히 생략했다. 안정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특히 이름에 타원형을 가미해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세계로 나아가는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표상했다고 한다.
최근 CI의 가장 큰 특징은 심벌마크 대신 워드마크를 사용하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심벌마크의 경우 상징성은 크지만 세계를 무대로 빨리 인지도를 높이려면 기업 이름 자체를 마크화(워드마크)해 가독성을 높이는 것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 기업이 다양한 업종에 걸쳐 사업을 벌이는 경우 모든 계열사들을 공통적으로 상징하는 심벌을 형상화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심벌마크가 미적 감각에서는 앞서지만, 코카콜라나 소니가 보여주듯 심벌을 빼고 단지 이름만으로 CI를 만든 워드마크도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정소영 교수는 “과거에는 심벌과 로고타이프가 정확히 나뉘었고 로고타이프는 심벌 보조수단에 불과했다”며 “그러나 심벌만으로 정확히 기업을 알리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심벌과 로고타이프를 하나로 통합하는 워드마크가 주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워드마크를 사용할 경우 기업 인지도는 높아지겠지만 상징 이미지 없이 문자만으로 기업의 개성을 드러내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회사 이름의 배경이나 위 아래 등에 선을 넣거나 단순한 그림을 넣는 등 부가적인 요소를 이용해 변형된 워드마크로 기업의 개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기업의 CI에 흔히 타원형을 넣어 역동성과 세계화를 상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평균화된 상품에 관건은 기업의 이미지
사실 경제가 성숙하고 경쟁 기업들 사이의 기술 수준이 비슷해져 제품이 평균화되면 기업의 이미지가 소비자의 구매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소영 교수는 “기업 CI가 남성적이고 하드웨어적인 요소를 강조하던 데서 벗어나 21세기에는 감성적, 여성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기업 이미지 형성은 요즘 기업의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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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CI를 구성하는 요소로는 △심벌마크 △로고타이프 △컬러 △시그너처를 들 수 있다. 심벌마크(Symbol Mark)는 상징성이 높은 형태로 디자인된 전형적인 심벌마크, 그리고 기업 이름에 그래픽 요소를 부가해 시각적 인지도를 높인 ‘워드마크’(Word Mark)로 나뉜다. 최근에는 전세계적으로 워드마크를 많이 사용하는 추세다. 기업 심벌은 기업의 경영이념, 업무영역을 시각적으로 상징화한 것인데 추상성이 강하게 흐를 경우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기업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다. 반면, 로고타이프(Logotype)는 회사 이름을 시각적으로 독특하고 개성 있게 디자인한 것을 말한다. 기업 이름이나 제품 이름을 독창적인 서체로 표현한 것으로, 과거에는 심벌을 보조하는 기능으로 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 이미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목적에서 로고타이프가 심벌의 기능까지 대신하는 경향이 강하다. 심벌의 추상성만으로는 기업 이미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워드마크’가 확산되는 추세와 맥락을 같이 한다. 물론 기업 이름만을 이용한 워드마크는 흥미감이 떨어진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컬러(Corporate Color)는 기업 이미지를 색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특정 기업을 떠올렸을 때 감성적으로 바로 연상되는 색깔을 뜻한다. 주색과 보조색으로 나뉘며, 주색은 심벌과 로고타이프에 적용되고 보조색은 그래픽 모티브, 사인, 유니폼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기업의 이미지와 잘 연결시켜 활용해야 하는 CI의 중요한 요소이다. 시그너처(Signature) 시스템은 심벌마크와 로고타이프의 배열 방식, 비율, 사이의 거리 등을 조합한 디자인 형태인데 상하 조합, 좌우 조합, 변형 조합의 형태로 만들어진다. 시그너처가 잘 조합되어야 각종 서식류나 매체에 다양하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일관성 있는 심벌과 로고타이프를 이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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