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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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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을 흔드는 트렌드 ‘스마트 욕망’

등록 2007-01-04 00:00 수정 2020-05-03 04:24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이 진단하는 사회·경제의 새로운 흐름… 디지털 시대의 복잡성에 지친 한국인들은 단순하고 실용적인 상품 선택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07년은 60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 돼지띠 해’다. 재물이 넘치는 대길의 해라고 한다. 원화 강세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는 첫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말에 대통령 선거도 치러진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한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소비 트렌드는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법칙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상품을 생산해 소비자들한테 파는 시장 구조는 저문 지 이미 오래다.

은 10년 넘게 한국인의 트렌드를 집중 연구해오고 있는 한국트렌드연구소 김경훈 소장을 만나 ‘한국인 트렌드’에 대해 들어보았다. 김 소장은 등 한국인 트렌드 3부작을 펴낸 바 있다. 그는 “리모컨도 따로 수납함이 필요할 정도로 많아졌고, 각종 전자 기기 사용설명서가 책장 한 곳을 차지할 정도로 디지털 시대의 복잡성이 한층 더해지고 있다”며 “‘기술 피로’를 느끼는 한국인들 사이에 여기서 탈출하고 복잡성을 제거하려는 영리한 욕망, 즉 ‘스마트 욕망’이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화와 실용주의화

‘트렌드’와 ‘유행’은 뭐가 다른가?

= 포장마차 안주를 보자. 몇 개월 반짝하다 바뀌는 안주도 있고 몇 년, 10년씩 지속되는 안주 목록도 있다. 훌라후프의 경우 시장에 나온 지 불과 2년도 안 돼 미국의 거의 모든 가정에 보급될 정도로 엄청난 선풍을 끌었다. 그러나 어느새 창고에 처박아두는 상태가 돼버렸다. 20세기 초에 손목시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반짝하는 ‘패드’(fad·일시적 유행)에 그칠 것으로 보았다. 손목시계가, 당시 양복에 차고 다니던 회중시계를 대체할 것으로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예상은 틀렸다. 어떤 현상이 등장했을 때 그것이 유행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장기적인 트렌드가 될 것인지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에 ‘다중인격장애’ 증상이 보고된 사례가 거의 없다가 어느 순간부터 유행처럼 수천 건씩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지금 다중인격장애는 영화에서나 즐기는 코드가 되고 말았다. 의료계조차도 유행에 현혹되었던 것이다. “여름에 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린다”는 말은 짧은 유행이고, 트렌드는 ‘예측 가능한 미래’로서 호황과 불황을 크게 타지 않는 어떤 추세를 뜻하는 것이다.

기업의 상품 전략이 ‘유행’에 그치면 안 되고 트렌드를 읽어야 한다는 뜻인가?

= 격동기를 거치면서 한국인들이 일시적 유행을 좇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제 사회가 안정화되고 성숙하면서 ‘예측’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유행 이면에 존재하는 어떤 중장기적 트렌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재테크 관련 책을 보면, 예전에는 대박 또는 단기 차익에 몰두한 재테크가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10년, 20년 장기 투자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연구소마다 유행을 예측하는 현상 추수적인 전망들을 내놓고 있는데, 기업의 상품 전략은 예측 가능하고 인과관계가 확실한 ‘트렌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실 속의 작은 조짐에서 중장기 트렌드를 읽어내는 눈을 키워야 한다.

한국인의 트렌드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체면, 명분,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경계선이 불분명해 고무줄 같은 특징을 보여왔다. 월드컵 때 순식간에 전부 붉은악마로 변했다가도 얼마 안 있어 개인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는가. 그런데 1990년대 이후 한국인의 트렌드를 지배하는 두 축은 ‘개인화’와 ‘실용주의화’이다. 이 두 축의 중심에 자기 표현이라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세계화와 만나면서 체면과 명분을 깨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제 한국인들이 스스로 경계선을 갖고 자기를 표현하는 주체로 등장했다. 이런 트렌드는 디지털 도구의 급증과 맞물려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인터넷의 번성도 다양한 자기 표현의 수단이란 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자기 욕망 표현이란 트렌드와 상품 소비 트렌드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 과거에는 권위와 권력이 질서를 부여하고 가족·지역·학연이 소속감을 줬으나, 이제는 권위가 사라지고 개인과 개인이 만나 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 선배한테 배우는 것도 아니고, 갈등하고 협상하면서 새로운 수평적 네트워크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불신·증오가 나타나고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자신이 욕망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적극 표현한다는 건 ‘개인화’인 동시에 ‘실용주의적’이란 뜻이다. 이제 한국인들은 자기 삶의 수준을 표현하기 위해 ‘작은 사치’도 과감하게 부린다. 예전에는 문화·교육·여가 등에 골고루 나눠 소비했다면 이제는 정말 이건 내가 좋아하는 것이야 하는 것이 나타나면 과감하게 쏜다. 지름신이 강림하는 것이다.

2007년 한국인 트렌드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면?

= 트렌드는 지속되는 것이다. 2006년, 2007년으로 구분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퓨전이란 현상을 보면, 공간적으로 음식에서 먼저 나타났는데 패션 등 다른 라이프스타일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이처럼 트렌드는 성장하는 시장을 만들어낸다. 중요한 건 트렌드가 지금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기기의 융합, 즉 컨버전스 흐름을 보자. 한국 사회 전체가 매우 복잡화되고 있다. 리모컨은 20세기 최대 발명품인데, 이제는 통합 리모컨도 나오고 수납함이 필요할 정도로 많아졌다. 각종 디지털 기기가 복잡해지면서 사용설명서가 책장 한 곳을 따로 차지할 정도가 됐다. 한국인들은 디지털 시대에 ‘기술 피로’를 느끼고 있고, 여기서 탈출하려는 욕망이 새로운 욕구로 자라고 있다. 복잡성을 제거하고 단순화하는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것인데, 나는 이것을 소비자들의 영리한 욕망, 즉 ‘스마트 욕망’이라고 부른다.

스마트 테크, 실용적인 기술

스마트 욕망은 전혀 새로운 소비자들의 욕구인가?

= 휴대전화 벨소리를 보면 128화음, 256화음도 나왔지만 인간이 구분할 수 있는 화음 능력의 한계는 24화음이라고 한다. 휴대전화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얼리어답터라면서 사람들이 따라갔지만, 과연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영리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대두하고 있다. 변화를 무작정 따라가다가 문득 ‘남의 물건만 괜히 계속 사준 건 아닌지’ 뒤돌아보는 실용주의적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이테크보다는 소비자에게 친절한 적정 수준의 기술(스마트 테크)이 각광받는 트렌드가 자리잡고 있다. 예컨대 TV를 보는 중에 진공청소기를 돌려야 한다면, 소음을 줄여주는 진공청소기는 영리한 스마트 테크가 될 것이다. 가사노동 아웃소싱 시장이나, 여러 가지 장보는 일을 한곳에서 모아 처리해주는 올인원 상품 서비스도 편리하고 단순한 것을 추구하는 트렌드의 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순한 소주가 2006년 대표적인 히트 상품으로 꼽히는데, 여기에도 어떤 트렌드가 있는가?

= 저도수 술의 히트를 단순히 여성에게 맞는 부드러운 술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건 한계가 있다. 한국인들은 술을 친교 관계를 위해 또는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마셔왔다. 그런데 이제는 스트레스 푸는 방식이 운동, 명상 등 혼자 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먹고 취하는 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순한 소주에도 이런 트렌드가 숨어 있다.

7080세대의 감성, 뉴올드 문화

2007년에 복고풍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분석이 많은데….

= 복고는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하나의 ‘유행’이다. 7080 세대의 부각을 단순히 복고풍으로 보면 안 된다. 이들은 한국의 주력 소비계층으로 새롭게 부상했다. 1956년부터 1975년까지 해마다 100만 명 이상 태어났는데 이들이 현재 40대 중반으로 최대 소비층이다. 요즘의 부동산 열기도 많은 7080 세대가 집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면서도 70, 80년대의 청소년기 감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2006년에 음식점 창업 중 잘된 것이 ‘감자탕집’이라고 하는데 7080 코드에 맞는 음식이다. 7080 세대의 감성은 문화·패션 등 다른 라이프스타일에도 접목되어 삶의 양식화가 돼가고 있다. 나는 이것을 ‘뉴올드’(New Old) 문화라고 부른다.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 열풍은 트렌드 측면에서 어떻게 보는지?

= 웹2.0, UCC는 대표적인 개인의 표현 도구다. 한국인들은 소비는 물론 생산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DIY(Do It Yourself)의 확산을 보자. 2006년 ‘빼빼로데이’ 때 스스로 상품을 선택해 선물을 구성하도록 한 것이 히트를 쳤다. 집안 인테리어 도구들을 고객이 직접 맞출 수 있도록 따로 DIY 매장을 두는 할인점도 많아졌다. 자신이 직접 공방에 찾아가서 가구를 제작하고, 퇴출됐던 재봉틀이 집안에 다시 들어오고 있다. UCC 열풍은 반제품을 구입해서 자기만의 상품을 직접 만드는 DIY 트렌드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디자인 경영’ ‘디자인 소비’는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인가?

= 디자인은 상품을 꾸미는 단계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일상의 재발견’인 셈인데, 지금은 사회를 바꾸는 시대가 아니고, 일상의 시대이다. 즉, 자신의 일상적 삶을 더 잘 꾸미고 표현해서 삶의 질을 높이려고 한다. 디자인 개념은 고급 브랜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닿는 모든 것에 들어가고 있다. 심지어 노란 고무줄 하나에도 다양한 디자인이 들어간다. ‘저렴한 멋’이라고 할까. 특히 ‘유니버설 디자인’ 트렌드에 주목해야 한다. 키 작은 어린이나 구부정한 노인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기울인 세탁기’, 높낮이가 조절되는 세면기 등이 대표적인 유니버설 디자인 상품이다.



복고, 우울, 롱테일

2007년 소비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


2007년 소비 트렌드의 키워드는 ‘복고’ ‘우울’ ‘롱테일’로 집약할 수 있다. 트렌트워치 전문기업인 (주)아이에프네트워크는 2007년 메가 트렌드와 히트품 전략으로 ‘추억을 상품화하라’(Analogia)와 ‘우울한 세대’(Gloomy generation)를 꼽았다. 최근까지 인간적 감성을 담은 첨단기술 제품이 주요 트렌드였다면 2007년에는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은 상품이 떠오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이에프네트워크는 2005년 최고의 음반으로 꼽히는 SG워너비의 , 70년대 영화를 리메이크해 흥행에 성공한 , 복고 드라마 의 인기가 아날로그 열풍을 예고하는 징후라고 설명했다. 특히 대중 속에서 우울함 자체를 즐기는 ‘우울한 세대’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끈다. 최근 안아주기 운동(프리 허그·Free Hugs)이 유행할 정도로 현대인들은 우울한데, 이제는 우울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즐기는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있어 옆자리 눈치를 볼 필요 없는 1인용 식탁이 점차 늘어나고, 우울함을 느낄 때마다 식탁의 한 조각만 떼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4등분되는 4인용 식탁’이 출시되고, 창가 테이블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공간을 배려하는 스타벅스가 인기를 끄는 것을 우울한 세대의 트렌드로 꼽을 수 있다.
한편, LG경제연구원은 웹2.0이나 UCC를 사례로 들면서, 소수의 상위 고객 못지않게 긴 꼬리에 숨은 다수의 소액 구매 고객을 중시하는 ‘롱테일’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마다 개성을 지닌 다수의 공급자와 다수의 소비자가 만나 매출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온라인 서점 아마존이나 국내 온라인 장터인 G마켓의 성공은 롱테일 시장의 성장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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