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보장+투자+보험료 조정 등 다양한 기능 추가…보험을 구분하는 두 축인 종신과 연금이 합쳐지는 단계까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종신, CI(Critical Illness), 변액, 유니버셜, 변액종신, 변액CI, 유니버셜종신, 유니버셜CI, 변액유니버셜종신…. 보험은 얼핏 이름만 들어도 굉장히 복잡한 금융상품이다. 그런데 최근 ‘퓨전형’ 보험상품이 대거 출시되면서 알 듯 모를 듯 이름도 더 길어지고 고르기도 쉽지 않다.
종신→CI→투자→퓨전
보험상품은 원론적으로 저축성 보험이냐, 보장성 보험이냐로 구분된다. 가입자의 노후 보장을 중심으로 한 저축성 보험의 대표 격이 ‘연금보험’이라면, 가입자 사망·1급 장해에 따른 가족 보장을 중심으로 한 보장성 보험의 대표 격이 ‘종신보험’이다. 최근 국내 보험상품은 연금보험과 종신보험을 두 축으로 하고, 여기에 고객 요구에 따라 여러 기능을 붙인 ‘변액○○’과 ‘유니버셜○○’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변액은 고객이 낸 보험료로 펀드를 조성해 채권·수익증권 등에 투자한 뒤 운용실적에 따라 추가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유니버셜은 보험료를 자유롭게 납입하거나 보험료 적립금을 중도 인출할 수 있는 상품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 급여가 확대되면서 보험 소비자들의 요구도 바뀌기 시작했다. 몇십만원의 보험금을 자주 받는 것보다는 큰 질병에 걸렸을 때 한번에 고액을 보장받는 보험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01년부터 종신보험이 최고의 인기를 누려오다가 2003년부터 CI보험(치명적 질병보험)이 새로운 주력상품으로 떠올랐다. 그 뒤 보험의 본래 기능인 보장성에 ‘투자’ 개념을 접목한 변액종신·변액CI로 다시 업그레이드됐는데, 2004년부터 보장과 투자뿐 아니라 보험료 자유 조정까지 가능한 ‘유니버셜보험’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종신 또는 CI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변액과 유니버셜이 결합된 ‘일석삼조’ 상품이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한 것이다. 각각 분리돼 있던 보험상품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추세는 이미 2003년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보험상품이 변신을 거듭하면서 최근에는 또 다른 형태의 퓨전 보험상품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보장 또는 저축+투자+보험료 조정’이라는 기존 퓨전 방식에다 노후 건강연금을 추가로 주는 상품이 등장했는가 하면, 보험의 근본적인 두 축인 연금보험(저축)과 종신보험(보장)을 아예 합친 상품도 출시됐다. 소비자들은 어떤 상품을 고를까, 고민을 많이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축성과 보장성에다 투자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다목적 보험’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잘 고르면 상품 하나로 자신과 가족의 ‘불확실성과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최근에 교보생명이 내놓은 ‘교보큰사랑종신보험’과 ‘교보큰사랑CI보험’은 대표적인 퓨전형이다. 교보큰사랑CI보험은 은퇴 이후 노후설계와 건강관리를 CI보험에 결합한 상품으로, 노후 건강연금을 지급하는 국내 최초의 CI보험상품이다. CI보험은 중대한 암, 중대한 뇌졸중, 중대한 급성심근경색증 등 치명적 질병이 발병할 경우 고액의 보험금을 제공하는 상품인데, 2003년 우리나라 사람이 80살까지 암·뇌졸중 등 치명적 질병에 걸릴 확률은 57%, 사망할 확률은 79%에 이른다. 교보큰사랑CI보험은 치명적 질병이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보험금이 나오고, 60살 이후부터는 건강연금을 받는다.
사망보험금 연단위로 변동
예컨대 35살 남자가 주계약 1억원으로 가입할 경우 60살 전에 사망하면 1억원의 보험금을 받게 되고 60살 이후부터는 80살까지 매년 100만원의 건강연금을 받을 수 있다. 또 65, 70, 75, 80살에는 5년마다 300만원씩 건강축하금도 지급된다. 이런 조건의 경우 20년간 매월 25만5천원의 보험료를 내면 된다. 80살 전에 치명적 질병이 발생하면 치료자금과 생활자금을 미리 받아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물론 건강연금을 받지 않고 적립해놓으면 공시이율로 이자가 붙어 연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적립금이 더 커진다. 목돈이 필요하면 적립금을 중도 인출(유니버셜 기능)해 쓸 수도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과거에는 사망보험금 보장이 가장 큰 관심사였지만, 성장한 자녀들이 어느 정도 살 만한 소득 수준에 이르면서 이제는 본인이 사망한 뒤 남은 배우자와 자녀들이 얼마를 받는가(종신보험금)보다는 자신의 노후 건강자금에 활용하겠다는 쪽으로 고객들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수명과 생애 패턴이 변하면서 보험상품도 이에 맞춰 바뀌고 있는 것이다. 교보생명 쪽은 “예전부터 퓨전 보험상품이 등장했으나 저축성 연금보험 또는 보장성 종신보험에 ‘투자 수익’ 등 약간 다른 개념을 섞은 것에 불과했는데, 요즘 나오는 퓨전 상품은 서로 합치기 어려운 성격의 기능들까지 혼합되는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이 지난 11월 보험업계 최초로 선보인 종신보험-연금보험 일체형 상품인 ‘프리미어 재정설계플랜 삼성생명연금보험’은 연금을 기본으로 하고 종신보험을 특약 형태로 부가한 상품이다. 보험상품을 구분하는 근본 두 축인 종신과 연금을 합치는 단계까지 진화가 이뤄진 것이다. 삼성생명 쪽은 “보험 한 건 가입으로 인생의 2대 리스크인 노후보장과 가족보장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며 “종신과 연금보험을 따로 가입할 때보다 보험료를 훨씬 줄일 수 있는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상품은 특히 국내 최초로 사망보험금을 자유롭게 변동시킬 수 있는 ‘자유설계형 종신특약’(프리미어종신사망 특약)을 도입해서 사망보험금 보장에 필요한 보험료를 줄일 수 있도록 했다. 고객의 인생주기와 경제 사정에 따라 사망보험금을 연간 단위로 변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삼성생명 쪽은 “기존 종신보험은 향후에 필요한 보장 금액보다는 현재의 경제 여건을 기반으로 사망보장 금액을 설계하다 보니, 자녀 학자금·주택 구입 등 필요자금이 많아지는 40∼50대에는 보장금액 규모가 부족하고, 60살 이후에는 과도한 보장금액을 갖도록 설계되는 단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예컨대 종신보험의 사망보장 보험료를 견줘보면, 35살 남자를 기준으로 기존 삼성유니버셜종신보험은 2억원 보장 때 월 39만원인 반면, 이 상품은 50살까지 3억원으로, 65살 이후에는 1억원으로 보장금을 조정하면 보험료가 월 28만원으로 줄어든다. 또 의무 납입기간(5년)을 채운 뒤에는 3회 또는 5회까지 최대 1년간 보험료 납입을 일시 중지할 수 있다. 물론 보험료 납입 유예기간 중에도 사망보장금은 받을 수 있다.
매년 미래설계자금 지급하기도
대한생명이 지난 10월부터 팔고 있는 ‘My Life플랜보험’은 보험 가입 뒤 2년이 경과하면 매년 미래설계자금으로 80만원을 지급하는 퓨전형 보험상품이다. 재해사망과 장해를 중점 보장하는 상해보험에다 매년 80만원의 중도급부 재테크 기능을 부가한 것인데, 미래설계자금을 받지 않으면 저축처럼 적립(연복리 4.0%)돼 목돈이 된다. 대한생명 관계자는 “퓨전형 보험은 종신과 연금을 결합한 상품도 있고, 연금보험 또는 상해보험에 투자 수익성을 갖춘 것도 있다. 안정성과 수익성이 여러 형태로 혼합되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파생상품을 활용한 연금보험도 등장했다. 대한생명의 ‘프리미어덱스연금보험’은 코스피 200지수 연계 옵션에 투자해 수익을 낸다. 지수가 오를 때는 물론 내릴 때에도 일정한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고객이 상승형과 하락형을 선택하면 된다. 매월 코스피지수의 등락을 비교해 맞히면 높은 이자율을, 틀리면 1% 정도의 낮은 이자율을 적용받는다. 상승형과 하락형을 중간에 바꿔 갈아탈 수도 있다.
금호생명의 ‘빅보너스 유니버셜연금보험’은 기존 연금보험에 보험료 중도 인출, 보험료 자유 납입 등 유니버셜 기능을 섞었다. 가입 후 2년 뒤에 갑자기 사정이 생겨 더 이상 보험료를 못 내도 보험이 유지된다. 여유가 있을 때 추가 납입해 채워넣으면 되고, 보험료 추가 납입도 가능하다. 유니버셜은 적립된 보험료를 중도에 찾아 쓸 수도 있다. 약관대출(계약자가 가입한 보험 해약환급금의 70∼80%의 범위에서 수시로 대출받을 수 있는 제도) 때는 대출 이자와 상환 부담이 있지만, 유니버셜 보험의 중도 인출(보험 보장 유지에 필요한 최소 보험료를 빼고 해약환급금의 일정 범위 안에서 1년 수차례 긴급자금으로 활용)은 대출 이자나 상환 의무가 없다. ‘유니버셜종신보험’은 2년 전부터 기존 종신보험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새로운 주력상품으로 떠올랐다.
원래 종신보험은 사망진단서가 있어야 사망보험금이 지급되는데, 대다수 생명보험 상품은 ‘사망보험금 선지급’을 도입하고 있다. 잔여수명이 12개월 이내라는 의사의 판단이 나오면 사망보험금의 50%를 5천만원 또는 1억원 한도에서 미리 지급해 생활자금·치료자금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변액보험이 1980∼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는데 한국은 2001년에 도입됐다”며 “주식시장 등 보험과 연계되는 금융상품 시장이 발달하는 정도에 따라 보험상품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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