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수백% 고리업이 판치는 가운데 법무부의 이자율제한법 부활 논란 … 급전이 필요한 서민에게 오히려 피해를 줄 것이라는 주장 근거 있나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해 3월 갑자기 급전 100만원이 필요했던 안아무개(36·여)씨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채업자를 찾아갔다. 남편 몰래 사업을 하다 실패했는데, 생활비가 쪼들리자 급한 대로 보름 정도만 융통하고 곧 변제할 요량이었다. 100만원이 필요했지만 사채업자는 그 자리에서 선이자로 30만원을 뗐고, 안씨 손에는 70만원만 쥐어졌다. 이자율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보름만 쓰고 갚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름이 지나도 안씨는 원리금을 다 갚을 수 없었고, 그때부터 ‘채무 노예’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애초에 열흘 단위로 원금과 이자를 내기로 약속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연체이자가 불어나면서 올 2월까지 1년간 이자만 700만원을 사채업자한테 줘야 했다. 무려 연리 685%의 고리였다. 날마다 사채업자의 협박에 시달리던 안씨는 결국 사채업자를 금융당국에 신고했다.
제2금융권 타격 심각하지 않을 것
2002년에는 한 주부가 사채업자로부터 100만원을 꿨는데, 이자가 15일에 20%(연리 440%), 그것도 복리여서 1년 뒤 원리금이 5천만원으로 늘었고, 끝내 사채업자한테 집까지 넘겨준 일도 있었다. 사채업자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실제로 이런 일이 있나,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목숨이 오늘내일 할 정도로 급한 사정이 생긴, 게다가 신용상태가 아주 낮은 사람이 사채업자한테 돈을 빌릴 때는 그 자리에서 선이자로 50%를 떼고 대출받는 일도 흔하다. 민법 103조가 ‘당사자의 궁박, 경솔, 무경험을 이용해서 폭리를 취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남의 궁박한 사정을 이용해 등쳐먹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게 마련이다.
법무부가 최근 ‘이자제한법’을 올해 안에 부활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채 이자율을 예전처럼 연 40% 이내로 다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1962년에 제정된 이자제한법은 외환위기 직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폐지됐다. 이자제한법이 부활하면 40% 이상 고리의 사채는 법적으로 무효가 된다. 법무부는 “이자제한법이 폐지되기 전에 이자율 상한이 40%였고, 경험에 비춰볼 때 40% 이자율 때문에 피해를 본 국민도, 크게 불편을 느낀 국민도 없기 때문에 상한선을 40%로 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실 이자제한법이 폐지된 뒤 사채업자들이 버젓이 설치면서 100%, 300% 고리업을 하고, 300% 이자를 안 갚으면 당당하게(?) 협박하는 양상도 벌어졌다. 폭리가 ‘합법화’된 셈인데, 1999년에는 “연 300%의 살인적인 이자라도 고리대를 제한할 법적 장치가 없는 한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연 수백%의 대출금리를 받는 미등록 사금융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약탈적 고금리 대출시장이 급격히 팽창했다. 금리를 자유시장에 맡겨놓은 뒤 에 등장하는 현대판 고리대금업자 ‘샤일록’들이 판친 것이다.
이자율 상한을 40%로 다시 묶을 경우 대부업과 제2금융권(캐피털·저축은행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우선 연 40%의 이자제한법에 걸리는 상품들을 취급해왔던 일부 지방 저축은행들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방 중소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상품을 보면, 전남·천안·전북의 일부 저축은행들은 연 38~60%의 직장인 신용대출을 운용하고 있다. 취급 수수료가 연 5%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고 65%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상호저축은행중앙회 양희원 기획조사부장은 “300만원 이하 소액 신용대출을 취급하는 저축은행이 전국적으로 5군데 정도 되는데, 이자율을 24%에서부터 36%, 46%, 50%, 60%를 적용하는 곳도 있다”며 “이자제한법이 막상 시행되면 신용이 낮은 서민들은 상당수가 저축은행 대출심사에서 탈락하게 될 것이고 사채시장으로 더 몰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40% 이상의 이율로 대출을 받았던 사람들도 이제 저축은행을 떠나 사채업체로 가야 할 상황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전체 저축은행들의 소액 신용대출 잔액은 1조4344억원(올 3월 말)으로, 저축은행 총여신액(37조원)을 감안하면 비중은 아주 낮은 편이다. 또 대형 저축은행에서 취급하는 신용대출 금리는 연 15~40%선이라서 이자제한법의 직접적인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업법 시행 뒤 사채금리 폭등
신용카드와 캐피털 등 여신금융사들도 이자제한법 부활에 따른 피해가 당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 업계 카드사들의 현금서비스 이자율은 대체로 취급 수수료를 포함해 연 31.4%를 넘지 않는다. 반면 캐피털 업체들은 신용대출 금리가 15∼45% 범위에서 적용되고 있다. 중소 캐피털 업체 관계자는 “캐피털에서 40∼49.9%의 이율을 적용받는 고객은 신용등급 10등급 중 5∼6등급에 해당하는 사람들로, 전체 신용인구 중 20∼30%”라면서 “40% 이자 제한이 소급 적용되지 않더라도 이자율을 낮춰달라는 요구가 빗발치면서 시장에 일대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자제한법 부활에 가장 복잡한 반응을 보이는 곳은 대부업계다. 제2금융기관에서 이탈하는 저신용 고객을 흡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 ‘호재’라면, 대부업의 법정 최고 이자율(현행 연 66%)도 낮춰질 수 있다는 ‘잠재적 악재’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업체에는 이자제한법이 적용되지 않고 대신 현행대로 대부업법이 시장을 규율하게 된다. 따라서 이자제한법으로 대출금리 40~60%대의 중간 상품들이 제2금융권에서 사라지게 되면 대부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그러나 법무부 쪽은 “이자제한법이 시행되는 만큼 우리(법무부)가 재정경제부에 대부업법 이자율을 하향 조정하도록 권고하겠다”고 말했다. 한 대부업체 관계자는 “이자제한법은 당장은 호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결국 옆집의 불이 옮겨붙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캐피털 업체 등은 “이자제한법이 부활되면 그동안 제2금융권을 이용해왔던 고객들이 신용대출을 받지 못해 대부업체나 불법 사채업자로 이동하게 된다”며 “법의 취지와는 다른 역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폭리를 제한하면 사채시장이 더욱 음성화돼 암시장을 형성하고 고리사채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이자제한법이 급전이 필요한 서민에게 오히려 피해를 주게 된다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사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 쪽도 “이자제한법을 부활하면 급전이 필요한 서민층이 무등록 사금융업체로 갈 우려가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부업체는 1998년 이전에 3천여 개에서 현재는 3만5천여 개(무등록 2만5천여 개)로, 사채금리는 연 24~36%에서 연 223%(등록 164%, 무등록 282%)로 폭등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부업법으로 이자를 제한한 뒤 사채시장 금리가 오히려 높아지는 아이러니가 생기고 있다”며 “이자율 제한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시장원리’에 따라 정해지는 이자율을 과도하게 제한하면 서민들을 사채시장으로 내몰고 급전을 꾸는 것조차 어렵게 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연리 300%의 터무니없는 이자는 탐욕이 빚어낸 폭리일 뿐 시장원리에 의해 정해진 가격이라고 할 수 없다.
‘급전’은 약일까 독일까
만약 이자제한법 시행 이후 사채업자가 “당신처럼 변변한 담보물도 없고 상습 연체자인 사람한테 이자율 40%로는 도저히 돈을 빌려줄 수 없다”면서 급전을 융통하러 온 서민을 내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과연 이자제한법이 서민에게 더 피해를 주게 될까? 고율의 이자를 물고라도 사채업자한테서 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더 나을까? 급전이 당장의 진통제가 될 수는 있어도 수백%의 채무 빚더미에 눌리는 고통이 진통 효과보다 훨씬 크다. 그를 영원히 채무 노예로 만들어 평생을 고통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다산인권센터 김칠준 변호사는 “50%, 100% 이상의 고리를 부담시키면서 서민들한테 대출을 해준다고 그것이 구제책이 되는 건 아니다. 폭리는 채무자를 경제적 궁핍에 머물지 않고 물리적 폭력과 협박이 수반되는 ‘온갖 궁핍한 상황’으로 내몰게 된다”고 말했다. 이자율을 제한해 ‘샤일록의 피 묻은 칼’을 빼앗아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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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최고금리를 연 40% 이하로 묶는 이자제한법이 부활될 경우 연체 금리·대출 취급수수료·만기연장 수수료 등 ‘부대비용’은 어떻게 될까? 법무부 쪽은 “원금 이외에 추가적으로 물리는 이자는 어떤 명목으로 붙이든지 ‘이자’로 봐야 한다”며 “이런 내용이 이자율제한법 시행령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을 일으킬 때 드는 명백한 ‘비용’만 빼고, 나머지 부대비용들을 포괄적인 이자로 보는 ‘간주이자’ 개념을 적용한다는 얘기다.
사실 법정 최고금리 속에 이런 부대비용들을 포함시키지 않으면, 대출금리는 40% 이하로 하더라도 취급수수료·이용수수료 등 부대비용을 대폭 높여 받는 편법이 횡행할 수 있다. 연리 100%, 300% 같은 폭리가 여전히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대비용까지 최고 법정금리에 포함되면 실제 대출금리는 40%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 만약 연체이자율이 25%로 적용된다면, 통상적으로 대출 원금에다 정상 이자까지 연체에 가산되기 때문에 실질 연체이자율은 5~10%포인트가량 더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한 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연체까지 감안해 이자율을 40% 미만으로 맞추려면 대출이자율은 최소 30% 미만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특별법에 상한 이자율을 40%로 못박아놓고, 구체적으로 시행령(대통령령)에서는 상한 이자율을 25%로 책정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1962년 이자제한법이 제정된 뒤 시행령에 정한 이자율 최고한도는 연 36.5%, 25%, 40%, 25%(1983∼1997) 등이었다.
한편, 취급수수료의 경우 자금을 조기 상환하면 최고이율 40%를 넘길 가능성이 커진다. 예컨대 연리 12%에 취급수수료 10%가 적용되는 대출이 있다고 하자. 1년 계약으로 100억원을 대출받은 뒤 석 달 만에 상환했다면 석 달분 이자 3억원과 10억원의 취급수수료를 지불하면 된다. 이렇게 3개월간의 총비용(13억원)을 1년으로 단순 환산하면 52억원이 되어 원금의 40%를 초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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