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우리은행이 “한국인 과반소유 ·경영 은행 키우기” 깃발 들자 논란 확산
단기 수익보다 기업대출 강화 등 공공성을 위해선 신중한 민영화 전략 필요</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은 지난 12월12일 월례조회에서 “한국인이 과반수를 소유하고 경영도 한국인이 해야 토종은행”이라며 “외국 금융자본과 경쟁에서 이기려면 토종은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계기로 국내 은행권에 ‘토종은행’ 논란이 불붙고 있다.
“그럼 삼성전자도 외국기업이냐”
주요 시중은행들의 지분 구성을 보면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은 100% 외국자본이고, 외환은행은 외국계 지분이 74%이고 경영권도 외국인이 갖고 있다. 국민은행(85.8%)·신한지주(60.06%)·하나지주(72.70%)의 경우 외국자본이 경영권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지분의 절반 이상이 외국자본이다. 오직 우리은행만이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로서 지분의 78%를 가진 토종은행이라고 할 수 있다.
졸지에 토종이 아닌 외국계(?)로 몰려버린 국민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 쪽은 “단순히 외국인 지분율만 따져 토종이냐 아니냐를 가른다면 삼성전자 등 외국인 지분 50%를 넘는 수많은 국내기업이 모두 외국기업이 돼버린다”며 “금융권의 무한경쟁 속에서 외국계나 토종이냐는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국내 은행권 대립 구도가 ‘(유일한) 토종은행 대 외국계’로 짜일 경우 영업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토종 여부를 구분짓는 선이 명확하게 그어지고, 토종은행론이 이슈로 부각될 경우 외국계 지분이 많은 은행들은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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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을 비롯한 다른 9개 시중은행 쪽과 우리은행은 이미 지난 4월부터 은행 이름을 둘러싸고 대립을 빚고 있다. 9개 시중은행들이 우리은행을 상대로 ‘우리은행’ 행명에 대한 상표등록 무효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우리’라는 은행명을 사용하고 있어 은행 이용자와 다른 은행들의 내부회의 때 불편이 많다”는 게 이유였다. “한국에서 너희만 ‘우리’은행이고, 다른 은행들은 그럼 ‘우리’은행이 아니란 말이냐?”는 이의 제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요즘 광고에서 “우리금융의 주인은 대한민국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토종은행을 우리은행 이미지의 주요 콘셉트로 잡고 대대적인 이미지 광고에 들어간 셈이다. 우리은행 쪽은 신년 초에 ‘토종은행의 할 일’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또 토종은행론을 전담할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실무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황 행장의 토종은행 차별화 전략이 내년에 있을 우리은행 정부지분 매각(민영화)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조성권 공보팀장은 “우리나라 은행 소비자들은 금리 차이보다는 이미지에 따라 은행을 선택한다”며 “토종은행론은 영업 마케팅 전략일 뿐”이라고 말했다. 황 행장은 월례조회에서 “우리은행과 거래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개인고객은 물론 공기업이나 일반 기업고객이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금융을 외국의 손에 넘기면 안 된다는 여론이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은행과 거래해달라고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에 대한 외자 지배가 심화되면서 기업금융이 축소된 반면 무분별한 가계대출 확대로 은행이 부동산 투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확산됐는데, 외국자본의 이런 폐해에 분노하는 국민적 정서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뜻이다. 우리은행 쪽은 “토종은행인 우리은행에 수수료를 내면 88%가 국민에게 돌아가지만 다른 은행에 내면 외국인 지분만큼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 국민경제의 보루 역할
실제로 기업대출을 줄이고 가계대출을 선호하는 경향은 수익성을 중시하는 외국계 은행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내국계 은행(국민은행 제외)의 총여신 대비 기업대출 비중은 1999년 말 73%에서 지난 6월 50%로 떨어졌는데, 같은 기간에 외국계 은행의 기업대출 비중은 70%에서 33%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가계대출 비중은 내국계 은행의 경우 1999년 23%에서 지난 6월 48%로 확대된 반면, 외국계 은행은 같은 기간에 23%에서 65%로 대폭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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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은행이라고 해서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다른 은행에 비해 눈에 띄게 높은 것도 아니고, 가계대출 비중이 훨씬 낮은 것도 아니다. 우리은행의 기업 운전자금 대출은 2003년 29조2천억원, 2004년 29조7천억원, 올해 3분기 30조5천억원으로 조금씩 늘고 있는데, 가계자금 대출 역시 2003년 27조2천억원, 지난해 29조2천억원, 올 3분기 34조5천억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상업·한일은행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은행은, 부실화되긴 했지만, 전통적으로 기업대출 위주의 장사를 해오면서 상당한 정도의 기업금융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거래하는 기업의 폭도 가장 넓은 은행에 속한다. 2004년 말 현재 기업대출 자금을 보면, 우리은행은 총여신 78조원 가운데 33조원인 반면, 국민은행은 총여신 112조원 중 37조원에 불과하다. 한밭대학교 조복현 교수(경제학)는 “현실적으로 ‘은행 전쟁’이 벌어지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토종은행에 외국계보다 ‘더 많은 중소기업 대출’을 하라고 요구하기 쉽지 않다”며 “그러나 우리은행의 기업대출 노하우를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토종은행론은 ‘국방·치안론’으로 이어지면서 이제 ‘국민경제를 고민하는 은행’으로 발전한다. 조성권 팀장은 “은행은 경제에서 국방·치안과 다름없다. 평화로울 때는 중요성을 잘 모르지만 위기가 닥쳐올 때 경제 안정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LG카드 사태 당시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자금 지원을 거부하자 정부가 주채권은행 역할을 우리은행에 맡겼고, 우리은행이 긴급 자금지원에 나섰을 때 외국계 은행과 외국계 지분이 많은 국민·신한은행은 한때 대책회의에도 나오지 않았다.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불참 이유였다. 우리금융그룹 이원철 부부장은 “토종은행론은 금융소비자들한테 인기를 얻으려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며 “중소기업 살리기 등 경제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데 토종은행으로서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 표명”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소유 시나리오라는 의혹도
총자산 135조원으로 국민은행(199조원)에 이어 자산기준 시중은행 2위인 우리은행은 대규모 구조조정과 공적자금(우리금융지주에 총 12조4천억원) 투입에 따라 신용카드 및 기업 부문 부실이 정리돼 수익성이 대폭 개선되고 있다. 우리은행의 올해 3분기 말 당기순이익은 1조3천억원으로 국민은행(1조8천억원)에 이어 2위다. 우리은행은 2004년 1조9천억원, 2003년 1조3천억원이라는 놀라운 순이익을 냈고, 올해 3분기 총자산이익률(ROA)은 1.47%로 미국 상업은행(1.3%대) 수준보다 더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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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토종은행론은 단순한 영업전략 차원을 넘어선다. 토종은행 캐치프레이즈 전략이 어떤 형태로든 내년으로 예정된 우리은행 민영화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 지배와 대형화 흐름 속에서 형성된, 왜곡된 은행 영업 행태(단기 수익성 위주 및 주주가치 극대화 경영에 따른 중소기업·서민금융 위축)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우리은행 시가총액은 무려 16조원으로 삼성전자·국민은행·한국전력 등에 이어 국내 6∼7위 수준이다. 금융산업노동조합 산하 금융경제연구소는 “우리은행을 특정한 외자나 국내외 사모펀드, 또는 전략적 투자자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넘기는 식으로 매각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우리은행이 수년간 막대한 순이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지분 매각과 관련해 정부가 여러 가지 선택 대안을 검토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매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연기금을 활용하거나 국내 금융기관·국내기업·종업원·개인투자자에 의한 광범위한 분산 소유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한편 황 행장이 삼성전자·삼성생명을 거쳐 삼성증권 사장을 지낸 이력을 갖고 있는 터라, 민영화를 앞둔 이번 토종은행론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분리’라는 벽을 국민적 정서를 앞세워 뛰어넘으려는 포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삼성의 은행 소유 시나리오와 맞물려 있다는 의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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