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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중앙회는 무엇으로 살찌나

등록 2005-10-20 00:00 수정 2020-05-03 04:24

농민을 위한 경제사업은 뒷전이고 정책지원 받는 신용사업만 확대
신·경 분리안에 천문학적 공적 자금 투입 들먹이며 무력화 시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농업과 농민은 쇠퇴하는데 농협중앙회만 날로 번성하고 있다? 지난 5월 농협중앙회는 하나안진회계법인과 ‘농협중앙회 장기 발전 방안’ 연구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신·경 분리) 전후에 농협중앙회가 농민과 회원 지역농협에 주는 실익, 구체적인 신·경 분리 전제조건 달성 방안 등이 연구 범위다.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은 금융 분야를, 경제사업은 농산물 판매·유통·생산 분야를 일컫는다. 농림부는 지난해 12월 개정된 농협법 부칙에 ‘농협중앙회는 2006년 6월30일까지 신·경 분리에 관한 세부계획을 작성해 농림부 장관한테 제출하라’고 명시한 바 있고, 이에 따라 농협중앙회가 세부계획 마련을 위한 용역과제를 맡긴 것이다.

중앙회 점포 늘고 지역농협 부실화

농협중앙회는 임직원이 1만7천명에 이르고, 금융쪽만 보면 총자산 129조원, 수신 규모 99조9천억원, 점포 890개로 국민은행에 이어 국내 2위의 특수금융기관이다. 그러나 농업‘협동조합’은 본질적으로 금융기관이 아니라 ‘생산자단체’다. ‘거대 공룡’ 농협중앙회 개혁은 지난 10여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술대 위에 올랐다. 대표적인 개혁과제가 신·경 분리다. 농협중앙회가 신용사업에만 치중한 탓에 임직원들 스스로 ‘금융인’이라고 여기고 본연의 업무인 경제사업은 소홀히 해왔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됐고, 이에 대한 처방으로 신·경 분리 방안이 나온 것이다. 신·경 분리는 중앙회 조직을 나눠 3개의 별도 법인을 설립하는 구상인데, 신용사업쪽은 ‘협동조합은행’을 따로 설립하고, 경제사업쪽은 농산물 유통·판매 법인을, 그리고 중앙회는 전국 1300여개 지역농협에 대한 교육·지도 등 비사업적 기능을 맡는 형태가 큰 그림이다.

농업협동조합은 본래 농산물 출하 조절·공동판매, 농자재 공동구매를 통해 상인과 자본의 횡포에 대항하면서 농산물 가격을 보장받고 안정시키기 위한 조직이다. 농협의 신용사업은 애초 농민들의 고리채 부담을 덜어주고 저리의 상호금융을 통해 ‘생산·판매’를 돕는다는 목적에서 허용된 것인데, 이제는 거꾸로 경제사업은 뒷전에 밀리고 신용사업 위주가 되고 말았다.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 치중은 몇 가지 수치를 보면 한눈에 나타난다. 2003년 말 현재 농협중앙회 총자본금 5조원 중 경제사업 자본금은 2715억원으로 5.4%에 불과하다. 농협중앙회 인력의 85%가 신용사업에 배치돼 있고, 중앙회 노동조합도 ‘금융산업’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다.

중앙회의 경제사업이 위축되면서 농산물 판매·유통망 구축이 제대로 안 되고, 이에 따라 농산물 가격이 하락해 농협의 주인이자 조합원인 농민들의 이익은 외면당하고 지역농협도 부실화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1300여개 일선 지역농협(전국 3700여개 점포, 자산 170조원)이 1조7천억원을 출자해 설립된 조직이다. 농민 조합원들이 투표로 지역농협 조합장을 선출하고 지역 조합장들이 모여 중앙회장을 선출한다. 이렇듯 중앙회는 지역농협과 조합원들이 만든 ‘농민의 조직’인데도 농민이나 회원조합과는 무관한 일반 도시민들을 상대로 한 은행업무로 덩치를 키워왔다.

중앙회는 신용사업으로 연간 5천억원대의 수익을 내지만, 경제사업에서는 2000년 -1112억원, 2003년 -1837억원 등 해마다 적자를 내고 있다. 특히 개별 농민들이 부채를 갚지 못해 파산하고 농민들한테 영농자금을 빌려준 지역농협마저 부실화되자 중앙회가 ‘개혁’을 명분으로 지역농협 축소를 추진하고 있는데, 오히려 중앙회는 전국적으로 점포를 늘려 몸집을 불리고 있다. 중앙회가 금융 점포를 늘리면서 도시 근교 30여개 지역에서는 기존의 지역농협과 사업이 중복돼 경합을 벌이는 양상까지 나타났다. 게다가 중앙회는 이미 은행·보험·카드·선물·투신·자산관리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증권사 인수를 추진하는 등 스스로 ‘금융 종합그룹’을 표방하고 있다. 충남대 박진도 교수(농업경제학)는 “중앙회에서 사업 규모 8조원에 이르는 경제사업이 만성 적자를 못 벗어나는 건 경제사업이 하나의 사업체로 독립하지 못하고 신용사업에 종속돼 운영되기 때문”이라며 “2003년에 중앙회가 신용사업에서 경제사업에 빌려준 돈이 2조8천억원인데, 당시 중앙회 평균 대출 이자율이 6.83%인데도 경제사업에는 더 높은 7.21%를 적용해 경제사업에서 2076억원의 대부이자를 받았다”고 말했다.

“자금 지원 끊겠다고 지역농협 협박”

농협중앙회가 해마다 올리는 큰 폭의 신용사업 수익 가운데 상당 부분은 ‘농업’과 ‘농민’의 이름으로 정책적·사회적으로 보호받기 때문에 가능하다. 농협중앙회의 예수금(약 100조원)을 살펴보면, 중앙회 시·군 지부는 각 지방자치단체 시·군 금고로서 공공예금을 받고 있다. 2004년에 중앙회의 공공예금은 32조원으로 총수신의 35%에 이른다. 이에 따른 공공금고 운용수익은 2002년에 5345억원으로 중앙회 총수익의 30%에 이른다. 중앙회는 또 농림부의 농민 정책자금 대출창구 역할을 하면서 연간 20조원 정도의 수신고를 올리고 있다. 정책자금을 중앙회가 독식하면서 손쉽게 수익을 내는 것이다. 농협중앙회쪽은 “정책자금 운용에서 나오는 수익은 거의 없고 볼펜값도 안 나온다”고 불평하지만, 사실은 거의 제로금리로 받은 막대한 정책자금을 운용해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농협중앙회가 자체 점포를 통해 유치한 농민·도시민의 순수예금은 중앙회 총수신의 40% 정도에 그친다.

농협중앙회가 농민 조합원의 삶의 질 향상은 외면한 채 신용사업쪽의 돈벌이만 추구하고 있고, 출자한 지역농협에 배당으로 수익을 환원해주기는커녕 불평등 계약을 맺어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중앙회가 지역농협들과 맺은 지방세 금고 대행업무 계약을 보면, 지역농협이 ‘무료로’ 지방세를 대리 수납하도록 해 연간 254억원의 수납 비용을 지역농협에 전가하고 있다. 중앙회의 상호금융특별회계도 돈을 맡긴 지역농협에는 이익을 돌려주지 않고 중앙회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상호금융특별회계는 지역농협이 예수금 중 여윳돈을 농협중앙회에 예치한 것인데 2004년 말 37조원에 이른다. 이 특별회계 약정서는 ‘특별회계 사업에 드는 비용을 제외하고 운용 손익은 모두 지역농협에 귀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쪽은 “그동안 운용수익이 났다는 명목으로 지역농협에 배당해준 사례는 단 한번도 없다”며 “이에 대해 중앙회쪽은 ‘그 대신 우리가 지역농협에 무이자로 대출자금을 지원해주고 있지 않느냐’고 하는데 중앙회와 지역농협은 모두 한 식구인데도 운용 손실을 지역농협에 전가하고 있고, 여윳돈을 중앙회에 예치하지 않으면 무이자 대출자금 지원을 끊겠다고 지역농협을 협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민동욱 정치국장은 “경제사업을 잘하고 있는 지역농협 모범사례들을 중앙회가 다른 회원들한테 알리고 전파하는 역할은 않고, 경제사업도 수익이 빤히 보이는 지역에는 지역농협을 제쳐두고 하나로마트를 지어 직접 돈벌이하면서 이익을 독차지하고 있다”며 “중앙회쪽은 신용사업에서 돈을 벌어 경제사업 적자를 메워주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돈장사하는 신용사업이 중앙회의 설립 목적이냐?”고 꼬집었다.

신·경 분리와 관련해 농협중앙회 김진우 홍보실장은 “현재 신·경 분리 방침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분리한다면 어떤 절차와 시기를 따를 것인지 등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며 “그러나 농협중앙회의 조직력·정보력·자본력이 모두 파워인데 신·경 분리로 힘이 분산되면 농협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떨어질 것이고, 신용과 경제 사업이 분리되면 흑자를 내는 신용사업으로부터의 자금 차입이 더 어려워져 경제사업 위축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경 분리로 인해 농민 조합원들이 이익은커녕 손해를 볼 공산이 크다는 주장이다. 중앙회는 신·경 분리 개혁과제가 이슈로 등장할 때마다 신·경 분리에 필요한 자본금 규모를 계속 부풀려 발표해왔다.

회계법인 용역은 신·경 분리 무산 의도?

지난 2000년에는 7조9천억원이라고 했다가 2003년 말에는 12조8천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농협중앙회 자본금 5조원을 감안하면 추가로 7조8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자본을 확충해야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10.66%를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쪽은 “기득권 세력화한 농협중앙회가 엄청난 공적자금 투입을 핑계로 신·경 분리 개혁을 백지화시키려 하고 있다”며 “하나안진회계법인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이나 성격을 잘 모르는 곳인데, 중앙회가 이곳에 용역과제를 맡긴 것은 신·경 분리에 반대하는 용역 결과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고 결국 신·경 분리를 또다시 무산시키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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