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부동산은 왜 자꾸 흔들리는가

등록 2005-06-22 00:00 수정 2020-05-03 04:24

사후조치는 계속 쏟아지지만 정부 정책에 힘과 뚜렷한 목표가 없어
보유세를 확실하게 올리는 ‘정공법’ 없이는 시장을 꺾을 수 없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판교발 아파트값 급등 양상이 확산되면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 물에 떠내려갈 위기에 처했다. 최근 강남과 분당을 넘어 용인·동탄·평촌까지 불어닥친 부동산 투기 열풍의 진원지는 판교다. 판교 개발은 애초 ‘강남 대체지’로서 수요 분산을 통해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분양값 상한제에 따라 중·대형 아파트 분양가가 평당 1500만원을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면서 ‘판교보다 못할 게 없다’고 주장하고 나선 분당·용인·평촌 지역 집값을 잇따라 끌어올렸다. 이처럼 ‘로또복권’이 된 판교 개발이 오히려 집값 폭등과 투기 조장의 주범으로 꼽히면서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물론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위기론이 과장됐다거나 아파트값과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두터운 집단(주택건설업체·부동산중개업자·난립 중인 부동산정보 제공업체·부동산시세표를 싣고 있는 언론 등)이 불순한 의도에서 부동산 정책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부동산 기득권 세력이 벌떼같이 일어나 ‘부동산 대책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때때로 아파트값이 급등하고 있는 건 현실이고, 따라서 “정부 대책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광고

판교발 투기 열풍 확산되며 궁지에 몰리다

참여정부가 출범 때부터 “강남 불패라면 대통령도 부동산에 관한 한 불패”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온갖 처방을 내놓고 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열린우리당에서는 “부동산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말까지 꺼내고 있다. 이참에 서울시도 끼어들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군청 수준”이라고 폄하하고 나섰다. 건설교통부가 “서울시는 동사무소 수준”이라고 맞대응했지만, 입씨름할 상황이 아니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섣불리 규정하긴 어렵지만, 뭔가 고장났거나 적어도 신통치 못한 것으로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청와대쪽은 “참여정부는 일관성 있게 부동산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다른 정부 같았으면 경기 부양 명분으로 진작에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돌아섰을 것이다”고 말한다. 참여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 의지’라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건 분명하다. 대통령 주재 부동산 대책 회의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후속 조처들도 수시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의지와 달리 이를 비웃듯 집값은 때때로, 여기저기서 뛰고 있다. 어디서 무엇이 꼬이고 있는 것일까?

참여정부의 집값 안정 의지와 강도 높은 시장개입을 옹호해온 전문가들은 “정책에 ‘힘’과 ‘뚜렷한 목표’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단국대 조명래 교수(도시·지역계획학)는 “보유세 강화라는 정부 방침은 좋지만 투기꾼들이 발호하는 시장 흐름을 바꿀 만한 강력한 효과를 가진 ‘근본적 시장개입’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정공법을 피하고 대신 우회적 대책들만 쏟아내 시장을 안정시키려 했는데, 이제 그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가톨릭대 전강수 교수(경제통상학부)는 “토지 보유세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게 정공법이다”며 “부동산시장 개혁안이 분명한 목표를 갖고 효율적으로 추진될 때는 저항이 생겨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 못할 때 저항은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또 “(먼 훗날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 임기 안에 보유세 실효세율(부동산 시가 대비 보유세 비율)을 1%로 올린다는 등의 뚜렷한 목표가 설정되지 못하니까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이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정책의 첫 출발과 방향은 좋아도 실제로 법제화 및 정책화되는 과정에서 크게 퇴색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고

청와대 “장기전에서 승리할 것”

부동산시장 ‘안정’이란 모호한 말만 있을 뿐 목표가 뚜렷이 서 있지 않다 보니 특정 지역에서 집값이 급등하면 후속 조처를 내놓고, 그래도 시장이 가라앉지 않으면 눈치 보다가 조금 더 센 조치를 내놓는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다. 강남 재건축에서 문제가 터지면 개발이익환수제로, 판교가 시끄러워지면 분양값 상한제로, 주상복합이 골칫거리로 등장하면 분양권 전매 금지로…. 참여정부는 터진 문제들을 막는 데만 급급해왔다. 정부를 믿고 행동해온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투기꾼들은 여전히 여기저기서 부동산으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벌어들이는 상황에서 시장참여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참여정부를 ‘양치기 소년’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책이 나오기 전에 투기판에 들어갔다가 치고 빠지는, 닳고 닳은 부동산꾼들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의지는 있지만 현실적 힘이 미약하다’는 점을 이미 간파한 것은 아닐까?

청와대쪽은 “참여정부 부동산 대책은 ‘장기주의’”라고 강조한다. 투기꾼들이 발호할 수 없도록 여러 부동산 세제 수단들을 제도적으로 촘촘히 짜놓았기 때문에 정권이 바뀐다 해도 허물어뜨릴 수 없는 체계를 갖췄다는 것이다. 이제 골격을 거의 다 마련했으므로 ‘장기적으로’ 집값이 안정되는 틀을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투기와의 전쟁’ 속에서도 부동산을 돈벌이로 삼는 게임은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정부는 “아파트 공급 물량이 증가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전셋값은 안정적인 추세를 보이는 것을 감안할 때 투기세력이 빠져나가면 부동산 가격이 곧 폭락하게 될 것”이라며 투기와 집값 급등은 ‘국지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단기 ‘전투’, 즉 일부 지역에서 집값이 급등하더라도 장기 ‘전쟁’에서는 참여정부가 결국 이길 수 있다는 것일까?

광고

하지만 굳이 장기주의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거품은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부동산 대책은 약발이 당장 먹힐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지금 상태에서 거품이 더 낀다면 나중에 결국 파열될 거품의 충격은 그만큼 더 커지게 된다. 조명래 교수는 “참여정부가 경제지표가 나빠지는 것에 민감하게 생각하고, 부동산 정책도 과도하게 건설경기 등 시장 상황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대책 따로 시장 따로 노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금리는 중앙은행의 몫이긴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지금보다 더 커진 뒤 나중에 터질 것을 생각한다면 거시경제와 내수 회복 차원에서도 저금리 기조를 바꾸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세 저항 걱정해 보유세 완화해야 하나

근본적인 시장개입이 미약하다 보니 자꾸 공급 확대 등 다른 쪽에서 해법을 찾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정부가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부동산 기득권층에 속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강수 교수는 “공급 부족을 핑계로 신도시를 몇개 더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속셈을 들여다보면 집값 안정을 위한 게 아니라 투기적 가수요에 멍석을 깔아달라는 것인데, 정부가 여기에 말려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토지정의시민연대 남기업 국장도 “공급 확대 정책은 기존에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은 세력들한테 전혀 타격을 주지 않고, 오히려 또 다른 투기 대상을 찾아 돌아다니는 세력들을 도와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 ‘풍선효과’만 낳고 있다고 말한다. 세금을 동원한 투기 억제와 단속 강화 등 여러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한쪽을 누르면 다른 지역에서 집값이 뛰는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왜 그럴까? 부동산 투기꾼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과 세무조사 발표는 있어도 투기에 손댔다가 국세청에 걸려서 패가망신한 큰손은 본 적이 없다. 주택거래신고제가 투기 지역에만 적용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시세차익은 탈세를 해도 좋다고 인정해주는 것밖에 안 된다. 1가구1주택 비과세 특혜도 마찬가지다. 예외없이 세금을 물리고 대신 일정 가액 이하는 세율을 낮게 해주는 안을 검토해 볼만도 한데, 정부는 주택구매와 건설경기 위축을 앞세워 1가구1주택에 대해서는 불로소득을 법으로 용인하고 있다.

정부는 주택거래신고제 일부 적용에 대해 “수십년 동안 지속돼온 부동산매매 이중계약서 관행을 한꺼번에 바꾸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공법을 안 쓰고 근본적 시장개입을 피하다 보니 메가톤급 비장의 대책을 내놓는다 해도 집값 불안은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는 10·29 대책에서 “부동산 세금을 획기적으로 높일 테니 다주택자는 세금 부담이 늘기 전에 유예기간 동안 매물을 내놓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천명했지만 그 뒤 전혀 매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유는 뭘까? 정권이 바뀌면 원점으로 후퇴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겠지만, “그 정도 보유세는 충분히 견딜 만하다”고 투기꾼들이 속으로 웃은 건 아닐까?

그렇다면 ‘정공법’은 무엇이고, ‘뚜렷한 목표’는 어떻게 세워야 할까? 정부의 지난 5·4 부동산 대책은 보유세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올리도록 짜놓았다. 조세 저항에 대한 걱정 때문인데, 보유세 실효세율을 현행 0.15%(미국·영국 등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에서 단계적으로 올려 2017년에 1%에 도달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실효세율 1%면 10억원짜리 아파트의 경우 연간 보유세가 1천만원이 된다. 경북대 김윤상 교수는 “2017년 1%는 너무 멀고 미흡하다. 이래서는 정부의 보유세 강화가 제대로 실행될 것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 토지 불로소득 완전 환수를 보유세의 목표로 천명하고, 실효세율 1%를 참여정부 임기 안에 달성하고 장기적으로 3% 정도까지 높여야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보유세 목표치를 법률에 명확히 못박아야 시장참여자들의 ‘기대 불로소득’을 원천 차단해 집값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윤상 교수는 “보유세로는 투기를 잡을 수 없다는 말이 시장에서 나오는 것도 사실은 정부가 목표를 미흡한 수준에 맞춰놓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근본적으로 접근해 불로소득 기대를 꺾지 않는 한 시장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 역사에 남을 정책을 내놓을 때”

“참여정부도 별수 없구나. 저러다 끝날 것이다”라는 생각이 시장에 퍼지는 건 경제 관료들이 불로소득을 전부 환수하는 수준으로 보유세를 강화하겠다는 말은 안 하고, 대신 세 부담이 급증할 사람들의 조세 저항만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대 불로소득’은 있는 사람뿐 아니라 없는 사람들까지 돈 빌려 불로소득 투기 대열에 뛰어들게 해 수많은 국민을 ‘잠재적 투기자’로 만든다. 조명래 교수는 “부동산 정책에서 여러 제도적 틀을 거의 갖춰놓았다면, 이제 참여정부가 역사에 남을 정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저항이 있더라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근본적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