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협력업체 윈윈모델’ 장려나선 정부
단기수익 확보 쫓는 처지에선 쉽지 않아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경기도 화성에 본사를 두고 있는 (주)우진의 주력제품 ‘프로브’는 제철소의 고로나 전기로에서 쇳물의 온도를 측정하고 시료(시험·분석 재료)를 뽑아내는 장치다. 쉽게 말해 쇳물 온도계인 셈이다. (주)우진 프로브 제품의 대표격인 ‘메인 슬리브’는 백금으로 만들어지며 1800℃까지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포스코 인건비 절감한 기술로 2억여원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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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에 프로브를 공급하는 (주)우진은 지난 4월27일 포스코로부터 1억9천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포항제철소 스테인리스 3제강공장 정련로의 용강 온도 측정과 시료 채취를 자동화하는 ‘베네피트 셰어링’(성과공유)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포스코의 인건비를 줄였다는 공적에 따른 것이다.
고철을 녹여서 쇳물을 만드는 전기로인 스테인리스 정련로에선 많은 쇳물 찌꺼기(슬래그)가 생겨난다. 제철 과정에서는 이 찌꺼기를 없애기 위해 전기로 밑에 공기를 강하게 불어넣어 쇳물을 출렁거리게 만든다. 이 때문에 측정 지점을 정하기 어려워 쇳물 온도 측정은 사람이 직접 할 수밖에 없고, 사고 위험과 인건비 부담이 큰 편이다.
(주)우진은 포스코와 공동으로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숙제에 매달려 마침내 자동화를 이뤄냈다. 프로브에 여과기를 붙여 쇳물 찌꺼기의 유입을 막고, 측정 지점을 센서(감지기)로 표준화한 것이다. 포스코는 이를 통해 4명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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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자재구매실의 최유식 과장은 “4명의 인건비는 2억원을 약간 웃도는데, 재료비 상승분을 뺀 나머지 절감액을 모두 성과금으로 (주)우진에 지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성과공유제에 따라 첫해는 인건비 절감액의 100%를, 2·3년차에는 50%를 (주)우진에 지급하게 된다. 박성일 (주)우진 계측기영업팀 차장은 “성과공유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쪽은 기술력을 높였을 뿐 아니라 3년 동안 계약관계를 보장받는 효과까지 거뒀다”고 말했다.
포스코에 기계부품을 공급하는 대동중공업(주)도 비슷한 사례다. 대동중공업은 전남 광양 연주공장에 쓰이는 ‘가이드롤러’ 제작 방법을 개선하는 성과공유 과제를 수행해 포스코 제품의 수명을 늘리고 외주 수리비를 대폭 절감한 것으로 평가됐다. 가이드롤러는 연속주조기로 강판을 만들 때 열을 식히면서 옮기는 구실을 하는 롤러로 900℃까지 견뎌야 하는 조건에서 쓰이는 주요 설비다. 대동중공업은 기존 일체형 구조를 3분할 구조로 바꿔 수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4억6천만원의 성과 보상금을 받았다.
포스코가 지난해 7월 국내 처음으로 도입한 성과공유제는 협력업체와 공동으로 혁신활동을 벌여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생(윈윈)을 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금까지 21개 협력업체와 61개에 이르는 성과공유 과제를 공동으로 수행해왔으며, 지난달까지 (주)우진을 비롯한 5개사의 11개 과제를 매듭짓고 성과보상까지 마쳤다.
공기업 표준계약서 개발 나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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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의 성과공유제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맺음의 본보기로 평가돼 5월16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대책회의’ 때 정부추진 과제로 꼽혔다. 산업자원부는 이날 성과공유제를 확산시키기 위해 공기업부터 시범도입하고 성과공유 표준계약서와 업종별 모델을 개발한다는 계획까지 밝혔다. 이 제도를 먼저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포스코에는 한국전력을 비롯한 공기업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포스코는 올 하반기에 15개 협렵업체의 40개 과제를 성과공유제 대상으로 추가로 선정할 예정인 등 성과공유제를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다. 협력업체에 대한 시혜 차원에서가 아니라 포스코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포스코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의 경쟁력은 곧 포스코의 경쟁력입니다. 공급사의 업무개선 아이디어와 포스코의 기술력을 합치면 서로 득을 볼 수 있다는 게 성과공유제의 출발입니다.”(최유식 포스코 과장) 권력 관계에서 강자인 포스코쪽의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하니,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낳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희망대로 성과공유제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돼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하청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를 푸는 일반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조영삼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성과공유제의) 취지는 대단히 좋고 소망스럽지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고 진단한다. 조 위원은 “대기업에서 공급사를 키워내야 할 절박성이 크지 않다면 자칫 앞으로 주고 뒤로 빼갈 개연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일반적인 대기업들이 맞닥뜨려 있는 국제적인 경쟁환경이 독점기업 성격의 포스코의 그것과 같지 않다는 겁니다. 현재 대기업들은 단기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전략을 쓰도록 압박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태에선 ‘성과공유’가 ‘위험전가’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 관계가 ‘개방형’이 아닌 ‘전속 배타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보탠다. 중소기업이 거래를 이쪽저쪽으로 자유롭게 옮겨다닐 수 있는 이동경로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양쪽의 지속적인 호혜관계는 제약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 위원은 “중소기업을 포함해 우리 산업 전체가 글로벌 소싱 체제에 적응해서 위너(승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고, 그 속에서 호혜적 분업의 고리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하청기업을 국내 대기업과의 관련성에서만 볼 게 아니라 세계 시장과의 관련성 속에서 파악해 글로벌 소싱 체제에 뛰어드는 기업들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방안이 절실하다는 게 조 위원의 진단이다.
사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상생·협력을 얘기할 때 헤택은 주로 ‘가만 놔둬도 잘 굴러가는’ 1차 협력사에 돌아가는 경우가 많고, 2·3차 협력사는 마냥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쪽의 자체 필요에 따라 ‘어차피 지원을 해주게 돼 있는’ 곳에 엉뚱하게 정부 돈이 흘러들어갈 수 있다.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도리어 공정거래 질서 흔들릴라
또 하나 지적할 대목은, 상생·협력이란 구호를 빌미로 공정거래 질서를 지키려는 정부 당국의 의지가 희미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 질서 유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호혜적 협력 관계를 위한 필수 장치임에도 공정거래위원회 기능이 시장과 경쟁을 억압하는 것쯤으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일상적인 공정위 활동에 대해서까지 ‘상생·협력하자며 왜 기업(물론 대기업)을 못살게 구느냐’는 눈흘김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선 상생의 기초인 건강한 시장질서가 바로 서기 어렵고, 상생·협력은 애초 구호와 달리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성과공유제는 장기적인 경쟁력을 위해 공급사를 키우는 게 필수적이라는 대기업쪽의 각성과 의지에 따라 추진될 수 있는 것이지,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다. 간접적인 유도조차 극히 제한된 효과만을 거둘 수 있을 뿐 전반적인 하청 문제의 해법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의 역할으로서 시장의 공정한 감시자 기능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기본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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