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서울 중구청만 인생역전?

등록 2005-04-20 00:00 수정 2020-05-03 04:24

로또복권 주민세는 국민은행 본점 관할지로 들어가야 하나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대구 동구 신암1동에 사는 홍길동씨가 로또복권 1등에 당첨돼 10억원을 받게 됐다. 여기에 붙는 세금은 얼마이고, 어디로 흘러갈까?

복권 당첨금에 붙는 세금은 소득세(국세)와 주민세(지방세) 두 가지인데, 5억원까지는 22%(소득세 20%와 소득세의 10%에 해당하는 주민세), 5억원 초과분에는 33%(30%+3%)의 세금이 붙는다. 따라서 전체 세액은 2억7500만원(국세 2억5천만원+지방세 2500만원)에 이르며 국민은행은 이를 미리 떼고 당첨금을 지급하게 된다.

대구 동구청, 총대 매고 나서다

여기서 문제 한 가지. 소득세는 국세이니 국세청에 납부될 텐데, 지방세인 주민세는 어디로 들어갈까? 홍씨 거주지를 관할하는 대구 동구청일까? 정답은 서울 중구청이다. 로또복권 1등 당첨금을 지급하는 국민은행 본점이 서울 중구청 관할지인 남대문로2가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대구·경북지역 로또복권 1등 당첨자 19명이 낸 주민세가 17억원을 웃돌았는데, 전부 서울 중구청에 납부됐다. 그 밖의 다른 지역 1등 당첨자의 주민세도 모두 서울 중구청에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서울 중구청은 지난해 로또복권 1등 당첨에 따른 주민세로만 대략 180억원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서울 중구청의 예산(일반회계 기준) 1880억원의 약 10%에 이르는 수준이다.

언뜻 불합리해 보이는 이 납세제도를 고치겠다고 대구 동구청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복권 당첨 뒤 내는 주민세를 은행 본점 소재지가 아닌 당첨자 거주지 지방자치단체에 내도록 해야 한다고 행정자치부에 제도 개선을 최근 건의한 것. 행자부는 이번 건의를 다른 세제 개편 건의안들과 함께 지방자치단체간 토론에 붙여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면 개선을 추진할 수 있다는 태도다.

세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봐도 주민세는 당첨자의 거주지 지자체에 내는 게 원리상으론 옳다는 쪽이다. 안종석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세는 지역 주민에 대한 세금이니 해당 지역 지자체로 가는 게 맞다”고 했고, 최영태 회계사(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도 “주민세는 당첨자의 거주지역으로 가는 게 합당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청을 빼고는 다른 지자체들 모두 제도를 바꾸는 것을 원할 테고, 행자부도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태도인데다 세제 전문가들까지 힘을 실어주니 제도 개선은 따놓은 당상일 법한데, 실제론 어떨까?

로또복권 1등 당첨금에 붙는 주민세를 서울 중구청이 독식할 수 있는 근거는 지방세법 175조다. 이 조항에는 이자소득·배당소득 등에 대한 소득세의 원천징수 사무를 본점이나 주사무소에서 일괄 처리하는 경우 그 소득에 대한 소득세할(주민세)은 그 소득의 ‘지급지’(로또복권 1등 당첨금의 경우 국민은행 본점)를 관할하는 시·군·구에 납부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대구 동구청의 비원(?)이 성사되려면 해당 지방세법 조항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전반적인 주민세 체계를 뒤흔드는 결과가 빚어질 뿐 아니라 다른 명목의 주민세와 형평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게 행자부의 설명이다.

법 고치면 주민세 체계 흔들릴 수도

예컨대 근로소득에도 주민세가 붙는데 이 또한 노동자의 거주지가 아닌 근로소득 지급지 지자체에 납부된다는 것이다. 실제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사람이 서울 종로구에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그의 근로소득 일부에서 떼는 주민세는 남양주시청이 아닌 종로구청으로 들어간다. 직장에서 원천징수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대구 동구청 주장대로라면 로또복권 1등 당첨금에만 예외를 두는 것으로, 주민세 납세 체계를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로또복권 주민세 문제는 세제상의 문제라기보다 1등 당첨금을 본점에서만 지급하고 있는 은행의 방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을 바꾸지 않더라도 국민은행이 당첨자 거주지의 영업점에서 당첨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겠는데, 이 또한 쉽사리 성사되지 않을 것 같다. 1등 로또복권의 위조 문제와 1등 당첨자의 실명 유출 등을 걱정하는 국민은행이 지급지를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본점을 대구 동구청으로 옮길 리도 만무하고. 이래저래 로또복권이 화제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