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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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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고 화장실 갈 권리를 달라”

등록 2005-04-20 00:00 수정 2020-05-03 04:24

건설플랜트 일용직 노동자들의 쓸쓸한 파업…조합원 신분 확인되면 바로 해고당해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우리 노동자들의 활동이 더러는 지나침이 있습니다. 시민에게 불편함을 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이해해주십시오. 우리는 너무나 오랜 세월 인간답게 대접받지 못해왔습니다. …우리 또한 울산의 시민입니다. 힘없는 시민이지요.” 지난 3월 말 ‘울산지역 건설플랜트노동조합’(위원장 박해욱)에서 내건 ‘대시민 호소문’이다. 파업 집회가 대개 사업장 안에서 이뤄지지만, 울산지역 건설플랜트 일용직 노동자들은 작업장 출입을 봉쇄당해 파업도 길거리에서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울산 시민들한테 호소문까지 냈다.

“원청업체들이 압력 넣고 있다”

1800여명의 조합원 평균 나이는 50살. 예순을 바라보는 노동자도 간혹 있다. 조합원 김아무개(58)씨는 ‘노가다’ 건설플랜트 작업장에서 일한 지 37년째다. “솔직히 나는 근로기준법을 모릅니다. 밥알보다 모래를 더 씹어야 하는 게 우리의 점심 도시락입니다. 공장 담벼락에 숨어서 도둑놈처럼 작업복을 갈아입어야 합니다.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좀더 인간답게 대우받고 일하고 싶은 겁니다.”

울산의 건설플랜트 일용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1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평생 일만 하던 사람들이었다. 조합원들은 배관·용접·기계 등 직종으로, 석유화학공장·발전소·조선소 등에서 건설·유지·보수를 담당한다. SK(주)·삼성정밀화학 등 원청 대기업으로부터 공사를 수주한 중소 전문건설업체들이 소속 회사인데, 이들 교섭 대상 하청업체는 가야공영(주) 등 58개사다.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14차례나 교섭을 요구했지만 업체들은 지금껏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결국 3월18일 파업에 돌입했다. 지난 4월8일 울산시청 항의방문 때는 825명이 경찰에 무더기로 연행됐다. 울산 건설플랜트노조 김태경 국장은 “밥 먹는 것 개선해달라는 건데 그것조차 못해주겠다니…. 교섭 거부에 대해 노동부는 나서는 척만 하고 있고 경찰은 우리를 때려잡을 궁리만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청업체들은 애초 “우리 업체에는 조합원이 없기 때문에 교섭 대상이 아니다”라며 교섭을 거부하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조합원이 진짜로 있다면 어디 명단을 내놔봐라”고 요구했다. 만약 조합원 이름을 알려주면 일용직이라서 곧바로 고용계약이 해지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업체들을 교섭 자리로 불러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부와 10여개 업체에 일부 조합원 명단을 통보했다. 우려는 현실로 바뀌었다. 이름이 통보된 조합원들 대다수가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받거나 즉각 해고되고 말았다. 소속 노동자가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뒤에도 업체들은 입장을 바꿔 “그전에는 우리 회사 소속이었더라도 어제 날짜로 해고됐기 때문에 더 이상 교섭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지방노동사무소가 중재자로 나서 ‘조합원 존재 확인작업’까지 했지만, 사용자들은 오히려 이를 악용했고 노동부도 손을 놓다시피 했다.

노조쪽은, 뒤에서 SK(주)·삼성정밀화학 등 원청 대기업이 하청업체들에게 교섭에 응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고 주장한다. 건설산업노조연맹쪽은 “길거리 파업 노동자들에게 도시락 식사를 대주는 업체에도 SK쪽에서 압력을 행사해 도시락 공급을 끊어버리는 짓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원청업체들이 ‘조합원 탈퇴확인서’를 받아와야 취업과 공장출입이 가능하다고 요구해, 노조에 탈퇴확인서를 받으러오는 노동자들까지 생기고 있다. 예전에는 취업할 때 이력서조차 없었는데, 파업이 터진 이후부터 업체들이 꼬박꼬박 이력서를 받고 있다. 이력서 사진과 대조해 조합원인지 아닌지 판별하기 위해서다.

‘포괄임금제’로 법정수당 못 받아

노동조합이 요구하고 있는 건 △하루 8시간 노동, 유급휴일 및 주·월차수당 확보 △불법 다단계 재하청 금지 △작업장 안전장구 지급 △식사 제공, 탈의실·휴게실·샤워장·식당 설치 등이다. 31년째 배관공으로 일해온 조합원 정아무개(53)씨는 “화장실도 하나 없어서 숨어서 노상 방뇨해야 하고, 추우나 더우나 바람 먼지구덩이 속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하고, 비가 와도 피할 곳이 없어서 손으로 비를 가린 채 빗물에 밥을 말아먹어야 한다”며 “무거운 쇳덩이를 끌어올릴 때 크레인 중장비도 지원해주지 않아서 로프로 올리거나 몸에 둘러매고 올라가야 한다”고 한탄했다. 다른 조합원 김아무개씨는 “새벽밥 먹고 현장에 와서 옷 갈아입을 컨테이너 하나 없어 도로에서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쇳가루·시멘트가루 날리는 난장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절어도 손 씻을 세면장, 샤워장 하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내일모레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모래바람 없이 도시락 한번 먹어보자는 겁니다. 화장실 한번 당당하게 가보자는 겁니다.”

한겨울에도 작업장 여기저기 차가운 바닥에 쪼그려앉아 밥을 먹어야 하고, 직영 노동자들이 쓰는 샤워실을 잠깐 사용할라치면 “더러운 먼지투성이로 여기 오느냐”며 막는다고 한다. 건설산업노조연맹 최명선 부장은 “겉으로 보면, 공사가 있을 때 채용하고 공사가 끝나면 고용관계가 해지되지만, 일용직이라도 하루 일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대규모 플랜트 공장들이 매년 셧다운(공장가동 중지) 시기에 정기적으로 보수·점검한다”며 “따라서 고용이 반복·지속되므로 공정 투입기간 중에 식당·세면장 등을 충분히 설치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플랜트 일용직 노동자들한테는 ‘포괄임금제’라는 허울 좋은 임금체계가 적용되면서 시간외·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 수당 같은 법정수당이 전혀 지급되지 않고 있다. 점심도 제공되지 않는다. 업체쪽은 “근로계약 때부터 1시간 연장근로(하루 9시간 노동), 주·월차 수당을 하루 일당에 모두 포함시키는 포괄임금제를 적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태경 국장은 “채용 때 근로계약서 본인 서명란에 이름만 쓰고 가라. 나머지는 회사쪽에서 작성하겠다. 쓰기 싫으면 그만둬라는 식”이라며 “임금도 구두상으로 반장한테서 얼마 받게 된다는 얘기를 들을 뿐”이라고 말했다. 작업 도중에 철근 파동으로 자재 공급이 달려 일을 못하게 될 경우 자신들의 귀책 사유가 전혀 없는데도 법정 휴업수당을 전혀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물론 산업재해와 임금체불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한다. 김태경 국장은 “화학공장에서 우리는 일반 마스크 쓰고, 직영들은 가스 마스크 쓰고 작업한다”며 “화학 저장탱크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서로 눈치 보고 먼저 안 들어가려고 하는데, 탱크 안에 들어갔다가 쓰러지는 동료를 보고 건지러 갈 엄두도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안전장비도 지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장을 정비하는 셧다운 시기에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감수하다 보니 질식하거나 중독되는 노동자도 흔히 발생한다. 가스 누출 폭발사고가 났을 때 불길이 번지는 위험한 상황에서 작업을 기피하면 “더 나올 생각 말라”는 해고 통보를 받아야 한다.

산재처리 되는 일은 거의 없어

산재보험에 가입됐더라도 산재처리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산재가 발생하면 건설 수주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업체들이 무조건 산재를 은폐하려 들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도 나돌아다닌다. 산재가 발생했거나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의 명단을 업체들끼리 공유하면서 다른 사업장에서도 취업을 못하게 막는 것이다.

이런 산재와 저임금은 일상적인 다단계 하청구조가 원인이다. 도급이 밑으로 내려갈수록 공사금액이 줄어들고 임금도 낮아지게 된다. 또 무리하게 공사기간을 단축해 일을 ‘훌치는’(서두르는) 게 잦아지는데, 이 과정에서 사고가 빈발하게 된다. “불법 다단계 재하청 때문에 공사를 빨리 끝내야 하고, 이럴 때 자기도 모르게 (작업 도중) 자기 손을 찍고 있기도 해요.” 하루하루 일당으로 먹고사는 일용직 노동자인데, 변변한 파업투쟁 기금도 없기 때문에 노조가 파업기간 중 조합원 생계를 도와줄 수도 없다. 건설플랜트 일용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벌써 한달째로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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