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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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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FTA 바람

등록 2004-12-17 00:00 수정 2020-05-03 04:23

중국과 일본의 각축전으로 위상이 강화되고 있는 아세안

▣ 최배근/ 건국대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지난 1994년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을 계기로 지구상에 불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 바람이 거세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지난 6월 지역간 무역협정 208건이 발효됐다. 지역간 무역협정 중에는 FTA가 142건으로 가장 많다. 7월 이후에도 FTA는 11월까지 6개가 추가로 타결됐다.

중·일 견제 위해 한국·인도 끌어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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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은 FTA를 통해 한편으로는 해외시장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WTO 도하개발어젠다(DDA) 다자협상의 타결 이전에 다양한 FTA를 체결함으로써 시장 개방의 충격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30여개의 무역협정이 체결된 아시아 FTA 바람의 중심에 아세안이 있다. 현재 아세안은 중국·일본·인도·한국·오스트레일리아 등 주변국들과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특히 인구 5억5천만여명의 아세안 시장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간에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중국은 아세안과 지난 11월26일 상품양허협상을 타결해 내년부터 무관세 수출이 가능하게 됐고, 싱가포르·필리핀·타이·말레이시아와 FTA를 타결한 일본 역시 아세안과 FTA 타결을 위해 우호협력조약(TAC)에도 서명했다. 동남아에서 중국과 일본의 리더십 경쟁을 활용해 아세안은 자신의 협상력을 높이고 위상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세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과 인도를 끌어들이고 있다. 아세안을 무대로 벌어지는 중국과 일본의 각축에서 소외되고 중국에 대한 의존이 점차 증대하는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처지를 활용하여 한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한편,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차세대 세계 경제의 패권을 놓고 중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인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그동안 주변부로 간과됐던 동남아가 자신의 전략적 위상을 높이면서 동아시아 시대의 중심적 위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아세안과의 FTA 추진을 적극 희망하는 오스트레일리아에게는 우호협력조약 체결을 요구함으로써 미국 부시 정권의 대테러 정책에 적극 협조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하워드 정권의 동남아 지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이나 내정간섭의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려 하고 있다.

한국은 이번 ‘아세안+3’ 정상회담에서 내년 초부터 아세안과 FTA를 체결하기 위한 정부간 협상을 개시, 2007년 발효 계획으로 아세안과 FTA 추진을 합의했다. 그러나 아세안의 위상이 높아지고 인도가 부상하면서 한국이 제창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빛을 보기 어렵게 됐다. 현재 한국은 일본·미국과 FTA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일본과의 FTA 추진은 국내 기업의 수출 증대 효과는 미미한 반면 대일 의존도 심화, 국내 시장 잠식, 중저가 생산기지로 고착화, 국내 기술기반 위축 등의 우려가 나오듯이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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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경제 네트워크’ 필요성 제기

스크린쿼터, 저작권 보호 등에 대한 이견으로 2000년 한-미 투자협정(BIT) 체결이 무산된 뒤 BIT보다 더 포괄적인 통상협정인 FTA 관련 논의를 진행시키지 못했던 미국과의 FTA는 지난 10월25일(현지시각) 미국쪽이 농업통상 현안과 함께 FTA 추진을 공식 제안한 이후 내년 초부터 FTA 추진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협의를 벌이기로 최근(12월9일)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FTA 추진은 쌀 시장을 비롯해 스크린쿼터와 지적재산권 등의 문제와 반미 정서로 쉽지 않다. 중국과의 FTA 추진 역시 농산물 분야의 수입 개방에 따른 부담과 중국산 중저가 공산품의 상당한 수입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에 간단치 않다. 따라서 한국은 러시아가 중심이 된 동북아 에너지 네트워크나 ‘아세안+3’이 주축이 되는 동아시아 지역 경제 통합체 구상을 넘어 중앙아시아-인도-오스트레일리아-아세안을 잇는 ‘아시아 경제 네트워크’의 건설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구촌경제'를 연재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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