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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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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호] “직장은 공부하는 곳이다”

등록 2004-12-10 00:00 수정 2020-05-03 04:23

뉴 패러다임 현장 확산의 주역인 신봉호 교수… “업종 불문하고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모델”

▣ 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뉴 패러다임의 전도사라면, 신봉호(50)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부)는 뉴 패러다임을 현장에 확산시키는 실무 주역이다. 신 교수는 뉴 패러다임 정책개발 및 제도 개선을 위한 대통령 자문 ‘사람입국 신경쟁력특위’(위원장 문국현) 위원인 동시에 시범사업을 벌이는 뉴 패러다임 센터의 소장이다. 뉴 패러다임 확산을 위한 손발 조직의 중심으로, 손발을 두뇌와 원활하게 연결하는 고리인 셈이다.

신 소장은 과 만나 “예비 학습조 편성으로 근로자가 배울 시간을 확보함으로써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혁신을 이룰 수 있다”며 “이런 뉴 패러다임은 경영자의 사고의 틀만 바뀌면 업종 불문하고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모델”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터뷰는 10월3일 서울시립대 상경관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과로 체제에 미래는 없다

-뉴 패러다임(새 경영방식)을 좀 쉽게 설명한다면.
=올드 패러다임(옛 경영방식)과 대비시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올드 패러다임은 ‘과로 체제’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렇다. 근로자, 최고경영자(CEO), 관료, 기자, 프로듀서(PD) 할 것 없이 모두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건강이 망가져 40대 조기 퇴직, 각종 산업재해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저임금 성장모델에서 온 것이다. 월급이 적으니 초과수당을 위해 특근을 해야 하고, 몸이 망가진다. 이런 과로 체제에선 미래가 없다. 혁신을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과로한 상태에선 다람쥐 쳇바퀴 돌듯 겨우 먹고사는 체제에 머문다. 중국의 부상을 감안하면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그래서 살기 위해선 과로 체제를 혁신·학습 체제로 바꿔야 한다. 교육을 위해선 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과로 체제를 학습 체제로 바꾸는 것이 뉴 패러다임이다. 직장을 ‘일하는 곳, 돈 버는 곳’에서 ‘공부하는 캠퍼스’로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생학습 체제로 바꿔야 한다. (뉴 패러다임의 뿌리인) 유한킴벌리 모델에 대한 오해가 있다. 4조2교대 또는 3교대로 24시간 연속 근무하는 직장에서만 가능한 모델이란 게 그것이다. 뉴 패러다임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4조3교대 근무 사업장은 265곳이나 된다. 삼성전자, 한국타이어 등. 4조3교대는 뉴 패러다임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활주로일 뿐 그 자체가 생산성 향상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핵심은 학습이다. 직원들의 현장 학습, 교육이 핵심이다. 유한킴벌리의 학습은 교육 콘텐츠(내용)보다 직원들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데 뜻이 있다. 1천여 직원의 반 이상이 강사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종의 ‘지식 교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강사료는 여행 티켓 같은 걸로 지급한다. 90년대 초 대전공장부터 시작해 3년 뒤부터 서서히 성과가 높아졌다. 지금은 실제 시행으로 이어지는 (사업장 혁신) 제안이 1인당 연간 10건으로, 일본 도요타자동차 수준이다.

성공 사례 계속 만들어 모델 제시할 것

>-예비조를 편성해 교육시간을 확보해야 가능한데, 그러기 위해선 인력을 늘려야 하는 것 아닌가. 경영자들이 부담을 느낄 것 같다.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 ‘마이카 시대’가 아니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때는 주차장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데 놀려두는 불필요한 공간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주차장 없는 건물은 얼마나 불편한가? 주차공간이 없는 건물은 생산성이 떨어진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다. 이노베이션(혁신) 사이클이 짧아 학습은 필수적이다. ‘학습 주차장’을 만들어야 한다. 임대료를 포기하고 어떻게 주차장을 지을 수 있느냐고 따지는 것은, 당장 먹고살 돈도 없는데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느냐고 하는 것과 같다.

-사람을 더 뽑아야 하기 때문에 당장 어려운 업체는 여전히 채택하기 힘든 것 아닌가.
=모두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기회를 많이 줘서 한국을 끌고 갈 업체들을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데를 예로 들어보자. 밤에도 찾을 사람이 많이 있는데 남들 출퇴근할 때 똑같이 출근하고, 또 시간에 맞춰 퇴근한다. 패러다임을 바꾸면 고객을 얼마든지 끌 수 있다. 다만, 뉴패러다임을 채택하는 것은 개혁의 수술대에 오르는 것이다. 수술을 받으려면 기초체력은 있어야 할 것이다. 당장 부도 위기에 몰린 기업이라면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다.

-재계쪽 반응을 들어보면 냉소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모든 기업들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모델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하다.
=모든 이들에게 강요할 모델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업종 불문하고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보편적이라고 본다. 많은 이들이 제조업, 그것도 거대 장치산업에 덧붙여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같은 뛰어난 최고경영자(CEO)가 결합돼야 성공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 장치산업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지만, 강남의 UIC시카고치과병원이 컨설팅을 끝내고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병상 350개 규모의 굿모닝병원도 컨설팅을 받고 있다. 컨설팅을 받기로 결정한 자체가 이미 70% 이상 진행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컨설팅 수수료는 무료지만, 뉴 패러다임 센터 컨설턴트 2명과 함께 해당 사업장의 직원 3~4명이 태스크포스(TF)팀에 들어가 한주에 두번 반나절씩 3~4개월 공동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뉴 패러다임에 대해선 경영진뿐 아니라 노조쪽에서도 일부 회의적 반응이 있다고 들었다.
=노조에서는 사용자 입장에서 교육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들을 한다. 그 부분은 우리의 역할이 크다. 노조쪽과 실제 얘기를 해보면, 흔쾌히 받아들인다. 경영진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다. 그동안 센터에서는 홍보를 별로 안 했다. 경영진은 사례를 믿는 사람들이다. 계속 성공사례를 만들어, 사람입국 발전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뉴 패러다임으로 부가가치 높여야

-뉴 패러다임 추진 경과와 앞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달라.
=지난해 9월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으로 근무할 때 문국현 사장이 찾아왔더라. 문 사장은 이미 그 전에 6개월 이상 고건 당시 총리와 여러 장관들을 만나면서 뉴 패러다임에 대한 설명을 하러 다니고 있던 터였다. 김영호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이 관심을 보였는데, 경질되는 바람에 무산됐고, 다른 장관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제가 볼 때는 ‘보석’ 같더라. 이원덕 당시 노동연구원장(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김장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등과 함께 문 사장의 구상을 다듬어 12월 대통령에 보고하게 됐다. 올해 3월에는 센터도 개설해 본격적인 체제를 갖췄다.

현재 국가 경제가 위기 상태다. 위기의 요인은 여러 가지이나, 중국이 떠오르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국가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비교우위 영역이 축소되는 게 큰 원인 중 하나다. 중국 같은 나라의 임금 수준은 우리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저임금에 바탕을 둔 원가 줄이기로는 승부를 낼 수 없다. 미국의 임금은 우리보다 3배나 비싼데도 잘산다. 해결책은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뉴 패러다임으로 그런 기업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까지 각 기업의 교육은 연구개발 부서와 엘리트 직원에 한정돼왔다. 이제 그런 교육만으로는 안 되고, 전 사원을 교육시켜야 한다. 연구개발 부서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현장에서 채택되지 않으면 헛일이다. 현장의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게 해야 한다. 그래야 불량률이 낮아지고, 혁신이 일어나게 된다. 회사에 대한 애정도 그렇게 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신 소장은 ‘김대중 정부 경제철학’(DJ노믹스)의 산실로 통하는 이른바 ‘중경회’(中經會) 출신이며, 김대중 정부 초기인 대통령 비서실 건설교통비서관, 정책3비서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또 노무현 정부 들어선 정무기획비서관, 정책기획조정비서관, 정책조정비서관으로 일하는 등 두 정부에 걸쳐 잇달아 경제정책 수립과 집행에 깊숙이 관여했다. 전남 고흥 출신으로, 광주일고·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워싱턴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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