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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온실가스 배출권

등록 2004-11-18 00:00 수정 2020-05-03 04:23

[지구촌경제]

교토의정서 발효 앞두고 기업들의 온실가스 시장 확보 경쟁 활발

▣ 최배근/ 건국대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내년 2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도록 강제하는 교토의정서 발효를 앞두고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의정서 발효를 위해서는 1990년 기준으로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5%를 차지하는 55개국 이상이 서명해야 하는데, 지난 11월5일 17.4%를 점하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배출량 61%가 돼 발효 조건을 충족하게 된 것이다.

미국도 거래량 급증 추세

현재 일본, 유럽연합(EU), 러시아 등 1차 공약기간(2008~12년)에 감축 의무를 갖고 있는 국가들은 기간 내에 1990년 대비 평균 5.2%를 줄여야 하는데 2002년까지 6.3%가 감축됐다. 그러나 실상은 동구권 국가들의 계획경제 붕괴로 배출량이 39.8% 감축된 데 기인한 것이고 이들을 제외할 경우 오히려 8.4% 증가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 나온 게 바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다. 할당된 온실가스 총량까지 국가나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이 허용되고, 허용치보다 적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은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권을 팔 수 있고 반대의 경우는 배출권을 사들여야 한다. 이미 환경설비가 어느 정도 갖춰진 선진국에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금 더 줄이려면 큰 돈이 들지만 이런 시설이 없는 개발도상국에는 조금만 투자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개도국 환경개선 사업에 투자하는 대신 일정량의 온실가스 배출권을 얻는 것이다. 의정서가 본격 발효되는 2008년에는 이 시장 규모가 1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향후 선진국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권의 80%를 자국이 아닌 외국에서 조달해야 할 처지이기 때문에 배출권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배출 규제를 받게 될 선진국 기업들이 앞다퉈 배출권 확보 경쟁에 나선 것이다.

일부에서는 온실가스의 최대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이 대상에서 제외됨에 따라 의정서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일본과 EU 등이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세계 전체 배출량 감소 목표치의 2%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교토의정서에서 이탈한 미국 역시 공식적인 시장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출범한 시카고기후거래소는 미국 정부의 비준에 대비해 온실가스 배출권을 미리 사두려는 기업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거래량도 전달 대비 60% 이상 급증했다. 그 결과 가격 역시 크레디트(이산화탄소 배출권 단위)당 1.50달러로 60% 가까이 폭등했다.

한국의 에너지 정책 괜찮은가

교토의정서 발효가 당장 한국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의정서에서 한국은 중국, 인도 등과 마찬가지로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는 개도국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개도국 지위와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다. 한국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8%를 차지해 세계 9위이며,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9.2t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유럽국가(7.6t), 일본(8.9t)보다 높다. 사실 문제는 교토의정서 다음이다. 현재 2013년부터 적용될 새로운 의정서 협상에서 개도국 참여론이 대두될 전망이다.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려는 미국뿐 아니라 미국을 끌어들여 온실가스 저감의 부담을 줄이려는 일본과 EU 등 다른 산업화된 국가들도 미국이 강력하게 주장해온 개도국 참여론에 동조하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중국·인도 등 개도국보다는 한국·멕시코 등 후발 OECD 국가에 상대적으로 큰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매듭지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멕시코는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한국의 5분의 2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국의 처지는 멕시코와 또 다르다. 현재 정부와 기업의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 아직 우리에게는 먼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둘러 에너지 효율 향상과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를 두 축으로 하는 에너지 정책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는 온실가스 저감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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