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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춘추전국시대 오는가

등록 2004-11-11 00:00 수정 2020-05-03 04:23

독보적 권력 누리던 전낙원 파라다이스그룹 회장 사망 뒤 영업장 신규 허가 등 둘러싸고 논란



카지노 업계의 ‘대부’로 군림해오던 전낙원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카지노 업계는 영업장 신규 허가 등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들썩인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11월3일 세상을 뜬 ‘카지노 대부’ 전낙원(77)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이 카지노 업계에 입문한 것은 1967년이었다. 국내 첫 카지노였던 인천 오림포스호텔 총지배인으로 이 바닥에 발을 들여놓은 전 회장은 이듬해 서울 워커힐카지노 운영권을 움켜쥔 뒤 30여년 동안 흔들림 없는 카지노 업계 1인자로 군림했다. 전 회장은 워커힐카지노를 바탕으로 제주, 부산, 도고, 인천, 아프리카 케냐 등에 파라다이스호텔을 설립하고 부산과 제주, 인천에 카지노를 개장해 호텔과 카지노 업계에서 막강한 재력을 쌓았다.

“관광객 증가, 신규 허가 당연”

지난해 매출액 기준 국내 외국인 전용 13개 카지노 업체 가운데 파라다이스그룹 소속 4개사의 비중은 78%(3140억5400만원)에 이른다. 워커힐카지노 1곳의 매출만 해도 2230억2600만원으로 업계 전체(3984억7700만원)의 56%를 차지한다. 외국 관광객이 많은 찾는 서울에 유일한 카지노를 갖고 있는 데 따라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독보적 ‘권력’의 전 회장이었기에 그의 죽음은 업계 안팎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권력 공백으로 ‘카지노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카지노 업계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독점 구조의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로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 파라다이스그룹을 중심으로 한 기존 업계의 진입 장벽, 즉 기득권 구조가 약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방침에 따라 11월 중 서울 2곳, 부산 1곳 등 3곳에 카지노 영업장 신규 허가가 날 예정이라는 점은 이런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정부로부터 외국인 카지노 사업권을 받은 한국관광공사는 11월1일 공고한 입찰 기준에 따라 8~9일 참여 신청서를 받아 제안서 평가와 현장 실사를 거쳐 17일 영업장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실제 카지노 영업은 내년 하반기로 예정돼 있다.

업계 안팎에선 서울 영업장 후보로 롯데호텔, 리츠칼튼, 그랜드힐튼, 한무컨벤션(코엑스 운영) 등을 꼽고 있으며, 부산에서는 부산롯데호텔, 그랜드, 메리어트, 웨스틴조선, 벡스코(부산전시컨벤션센터) 등이 영업장 신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부산 지역에서 각각 36년, 26년씩 독점적으로 카지노 영업을 해온 파라다이스그룹의 아성에 구멍이 뚫리는 셈이다.

독점 구조의 기득권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니 바람직한 현상으로 봐야 할까?

한국레저산업연구소의 서천범 소장은 “외국 관광객의 증가로 서울·부산 지역에는 새로 영업장을 만들 필요가 있었는데, 특혜 시비에 휘말릴 것을 걱정한 정부 당국자들이 몸을 사려왔다”며 “이번에 신규 허가를 내주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관광업계도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조용장 서울동방관광 회장은 지난 6월 펴낸 에서 “워커힐카지노 개장 당시 서울 방문 관광객은 10여만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한해 450만명을 웃돌고 있다”며 “수요에 걸맞게 카지노 숫자를 늘리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조 회장은 “1994년 개정한 관광진흥법에서 외래 관광객이 30만명 이상 증가할 경우 2개 업체 이내로 신규 허가해줄 수 있다고 명시한 대로라면 최대 12개까지 신규 허가를 내줄 수 있고, 4~5개의 신규 개설이 필요하다는 학계 보고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1개 업체당 연간 2억달러 안팎의 외화 수입을 얻을 수 있는데도 특혜 시비를 감수하면서까지 36년간 한 업체에 독점적인 지위를 허용한 까닭이 뭐냐”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기존 업계에선 신규 영업장 허가에 반대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신규 허가에 대한 반발 기류가 새로 영업장이 들어설 서울과 부산보다는 제주 지역에서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는 그렇다. 서울과 부산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파라다이스그룹쪽은 조용한 반면, 제주 업계에서는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제주지역 8개 카지노 업체로 꾸려진 ‘제주지역 카지노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위원회’ 소속 300여명은 지난 11월3~4일 서울로 날아와 문화관광부와 관광공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외국인 카지노를 신규 허가할 경우 제주관광 산업이 무너질 것”이라며 “제주도 내 카지노의 내국인 출입을 허용하고, 서울지역 신규 허가 카지노업에 공동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쟁위는 11월17~18일에도 항의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제주 업계 “생존권 무너진다” 반발

“카지노 영업의 주고객은 일반 외래 관광객이 아니다. 총매출의 80% 이상은 ‘하이롤러’(전문 도박사)들에게서 나온다. 기존 업체는 이들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가 비행기표·숙박비를 줘가며 초청하는 식으로 영업을 한다. 그런데 이들 하이롤러는 주로 서울·부산에 머물 뿐이며 극히 일부가 제주도로 온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부산에 3군데나 더 생기면 제주 카지노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카지노업관광협회 권영기 차장)

권 차장은 “외래 관광객이 몇배 더 늘어나도 카지노 관광객의 숫자는 고정돼 있는 상황에서 업체 수를 늘리면 초청 하이롤러들을 둘러싼 나눠먹기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카지노협회 자료를 보면, 국내 카지노 업체 입장객 수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68만9천, 99년 69만5천명으로 꼭지점에 이른 뒤 내림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에도 63만명으로 전년(64만8천명)보다 줄었다. 신규 영업장 허가에 대한 걱정이 터져나올 만한 상황이다. 특히 규모가 영세한 제주지역 카지노 업체들은 대부분 적자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규 허가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기존 업계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흥사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지역협의회 등 시민단체들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 시민단체로 구성된 ‘도박규제 네트워크’는 11월4일 기자회견을 열어 카지노 확산 정책의 중단을 촉구했다. 신규 영업장 허가 뒤 후유증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도박규제 네트워크의 김희경 사무국장은 “기존 13개 카지노 업체가 영세성을 면하지 못하고 평균 가동률 또한 7~8%에 지나지 않은 터에 추가로 만들려는 정부의 속내가 의심스럽다”며 “추가 신설보다는 구조조정을 통해 기존 업체의 경쟁력을 높일 때”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선 재반론의 여지도 있지만, 양쪽 주장의 진위를 명쾌하게 가려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진실은, ‘독점구조를 깨야 한다’는 주장과 ‘구조조정을 먼저 해야한다’는 반박의 중간 어디쯤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신규 허가에 대한 논란보다는 카지노 업계의 불투명 경영에 대한 감독 체제를 갖추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감독체제 강화에 역량 집중해야

현재 카지노 관련 업무는 문화관광부 직원 2명(5급 사무관, 6급 주사)이 다른 업무와 병행해 총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효율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못하고 회계의 투명성을 의심받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제주의 칼카지노와 신라호텔카지노가 1998~2001년 매출액을 각각 11%, 14% 누락한 것으로 드러난 게 대표적인 예다. 이 또한 투서에 바탕을 둔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밝혀진 것이며, 문화관광부는 국정감사장에서 불거질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오미숙 순천향대 교수(관광경영학과)는 “카지노 산업과 관련한 인·허가, 카지노 운영의 투명성 확보, 카지노 산업의 독점화 통제 등 관련 업무를 총괄할 전담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2000년 10월 국내 첫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 개장 뒤 도박 중독 등 각종 부작용이 잇따르는 현실도 감독 강화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경숙 열린우리당 의원은 ‘문화관광부 장관 아래 카지노감독위원회를 설치하고, 사무국을 별도로 두는’ 내용의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카지노위원회에는 영업이익, 이용객 수 등을 고려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는 권한도 줄 예정이어서 업계의 눈길을 집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감독 강화와 함께 카지노 수익의 공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관광연구원의 류광훈 연구위원은 “나라마다 사정이 달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국내 외국인 카지노의 공익적 기능은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관광개발진흥기금으로 매출액의 10%를 매기는 데 견줘, 캐나다는 매출액의 25~40%를 공익적 목적으로 떼가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지역에선 이익금의 60~80%를 세금으로 매기고 있다고 류 위원은 전했다. ‘대부’가 사라진 뒤의 카지노 업계는 여러모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1967년 인천에 ‘베팅’


룰렛·다이스·트럼프·슬롯머신 등의 도박이 공인된 곳을 일컫는 카지노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집’을 뜻하는 카사(casa)에서 비롯됐다. 카지노는 18∼19세기 프랑스·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 개설됐다가 도박의 폐해가 커지자 19세기 말부터 금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제2차 세계대전 뒤 공공자금 조달 명목으로 해변·온천 등 휴양지와 관광지를 중심으로 카지노를 공인하는 나라가 늘었으며, 1931년 공인된 미국 네바다주의 라스베이거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 밖에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마카오에 카지노 수가 많다.
우리나라는 1961년 제정된 ‘복표발행 및 기타사행행위단속법’에 외국인 상대 카지노를 설립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되면서 카지노가 도입됐다. 국내 첫 카지노는 1967년 개장한 인천 오림포스호텔 카지노였다. 이듬해에는 주한 외국인 및 외국인 관광객 전용의 오락시설로 국내에서 가장 큰 워커힐호텔 카지노가 문을 열었다. 70년대 속리산관광호텔 카지노를 비롯해 4곳, 80년대 들어 설악파크호텔 카지노, 제주 하얏트호텔 카지노가 신설됐다. 90년대 초 파라다이스그랜드 등 5곳이 추가로 신설됨에 따라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모두 13개 업체로 늘었다. 지역별로는 서울 1곳, 부산 1곳, 인천 1곳, 강원 1곳, 경북 1곳이며 제주지역에는 8곳이 영업 중이다.
2000년 10월 강원도 폐광 지역에 내국인도 출입할 수 있는 강원랜드 카지노가 문을 열어 국내 카지노 산업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문화관광부는 올해 중 관광공사를 통해 외국인 전용 카지노 영업장 3곳을 신규로 허가할 예정이어서 카지노 산업은 실질적인 경쟁 체제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애초 카지노업은 경찰청에서 ‘사행행위업’으로 관리하던 것을 관광진흥법 개정으로 1994년 12월부터 ‘관광사업’으로 전환해 문화관광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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