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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경제의 석방?

등록 2004-09-10 00:00 수정 2020-05-03 04:23

[지구촌경제]

안와르 전 부총리 무죄선고로 경제 개혁에 힘 실리나

▣ 왕윤종/ SK 경영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

부패와 동성애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지난 6년간 복역해온 말레이시아 전 부총리 안와르가 9월2일 대법원의 최종 선고 공판에서 무죄로 석방됐다.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당시 마하티르 전 총리와의 첨예한 입장 차이로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다고 평가받는 안와르는 1981년부터 마하티르와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왔고, 1993년 부총리로 취임한 이후 마하티르의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하루아침에 숙청됐다. 깨끗한 이미지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던 안와르가 부정부패 혐의에 더해 동성애자라는 진술이 제기되면서 국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서방 국가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던 개혁 성향의 안와르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타이에서 외환 위기가 발생한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 지원을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IMF의 긴축 정책을 수용했다. 그는 경상수지 적자를 해결하는 것이 외환 위기 해결에서 급선무라고 보고, 긴축 예산을 편성했고 금융 부문의 대출도 억제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역시 다른 외환 위기 국가와 마찬가지로 급격한 환율 상승과 주가 폭락이라는 금융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마하티르 플랜-B의 성공인가

말레이시아의 경우 외환 유동성 사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1996년 말 기준 말레이시아의 외채는 374억 달러로 한국과 타이의 1441억 달러, 1219억 달러에 비해 그 규모가 작았다. 또 총외채에서 차지하는 단기 외채의 비중이 35%에 불과했다. 말레이시아가 보유한 외환 보유액으로 단기 외채를 충분히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말레이시아는 심각한 자본 유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미 라부안과 같은 역외 금융 시장을 설립했던 말레이시아는 국내 자본이 언제라도 역외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안와르는 고금리 정책으로 자본 유출을 막아보려고 했으나 시장의 불안은 지속됐다. 여기에 더해 국제 투기 자본의 환투기가 가세하면서 말레이시아의 금융 불안은 고조됐다.

1998년 1분기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마하티르 수상은 안와르가 주도하는 긴축 정책에 불만을 표시했다. 또 IMF식 경제 처방을 받아들이는 것을 경제적 주권 상실로 인식한 마하티르는 더 이상 고금리 정책과 긴축 예산을 수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적극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확대와 저금리 정책을 채택하기로 한 그는 자본 통제 정책을 실시하지 않고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즉, 말레이시아 통화인 링깃화에 대한 투기적 거래를 차단하고 단기 자본의 흐름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당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마하티르식 처방을 플랜-B(Plan-B)로 명명하면서 IMF식 플랜(Plan)-A에 대비되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8년 9월1일 말레이시아 정부는 1973년부터 유지해왔던 변동 환율제와 결별하고 고정 환율 제도와 자본 통제 정책을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안와르 부총리는 이러한 정책 전환 과정에서 정치적 희생자가 되었던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이러한 Plan-B가 성공한 이유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여러 의견이 있다. 다만, 말레이시아가 이러한 정책을 채택할 즈음 동아시아 금융 시장은 안정을 찾고 있었고, 서서히 경기가 회복되는 시점이었다. 결과적으로 말레이시아가 Plan-B를 채택하지 않았더라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석방 소식에 주식시장 상승세

안와르 전 부총리가 대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게 된 배경에는 마하티르 전 총리의 뒤를 이은 바다위 현 총리의 중립적인 자세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안와르도 바다위 총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재기를 노리는 안와르는 바다위 총리와 경쟁자의 입장에 설 것으로 보인다. 안와르의 석방 소식에 콸라룸푸르 주식 시장은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개혁 성향의 안와르가 대중적 인기를 확보할지 말레이시아의 미래는 흥미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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