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경제]
저성장-고실업 해결 위해 사회적 시장경제 개혁
▣ 왕윤종/ SK경영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
유로지역 제1의 경제대국인 독일 경제가 추락하고 있다. 2000년 3.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이후 2001년 1.0%로 성장률이 급락했고, 2002년 0.2%, 2003년 -0.1%를 기록하면서 독일 경제는 저성장의 덫에 빠져 있다. 실업률은 이미 1990년대부터 두 자리 수를 기록했고, 현재 10.5%로 유로 지역의 평균 실업률 9.0%를 초과하고 있다. 같은 유럽에 속해 있으면서도 유로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 영국이 2.6%의 낮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야당은 개혁 독촉, 노조는 반발
이러한 독일의 저성장-고실업 문제를 경기순환적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2002년 재선에 성공한 슈뢰더 사민당 정권은 스스로 현재의 경제 난국을 구조적인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즉, 2003년 2월 ‘일자리 창출연대’(Alliance for Jobs)로 일컫는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이후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가 경제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보고서를 제시했고, 이에 기초하여 슈뢰더 정부는 3월14일 구조개혁안인 ‘어젠다(Agenda) 2010’을 발표했다. 이러한 슈뢰더 총리의 개혁 추진은 독일 경제의 구조적 쇠퇴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사민당의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한 정치적 배경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노동보호와 사회복지 확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사회적 시장경제 요소를 강화해오던 독일이 글로벌 경쟁의 심화 속에서 더 이상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데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젠다 2010은 노동시장, 사회복지, 경제활성화, 재정, 교육 및 훈련 등 5개 분야에 대한 구조개혁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슈뢰더 정부의 구조개혁안에 대해서 독일 국민들은 대체로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구체적인 개혁 내용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마다 상충된 입장을 보인다. 야당인 기독교민주연합과 경영단체들은 슈뢰더 정부의 개혁안이 오히려 독일 경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데 미흡하다고 평가하면서 더 강력한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반면, 노조연합에서는 사회적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개혁안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당인 사민당 내부에서도 좌파 진영은 슈뢰더 총리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노동계와 여야의 치열한 공방 끝에 지난해 12월19일 10개 개혁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 실업수당 삭감, 연금 및 의료보험제도 개혁, 개인소득세율 인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혁입법은 독일이 사실상 사회적 시장경제를 포기하겠다는 것을 시사했다. 올해 7월에는 추가적으로 장기 실업수당 폐지, 청년 및 장기 실업자의 취업 강제, 외국인 이민과 취업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동개혁 법안이 통과됐다.
개혁안이 독일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이러한 노동개혁 법안의 통과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인 지멘스(Siemens)의 경우 지난 6월 노사협상에서 추가 보상 없이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즉, 노동시간의 연장과 장기 실업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공급 측면에서 긍정적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개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사민당의 지지 기반인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된 이번 개혁이 자칫 사민당의 분열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독일이 지난 30년간 분배와 참여의 독일식 자본주의를 추진한 결과 이제는 유럽 경제의 중환자로 전락하여 대수술을 앞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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