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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군, 점점 더 멀어져간다

등록 2004-07-28 00:00 수정 2020-05-02 04:23

‘보고 누락’에 관용 베풀었지만 발끈했던 감정은 앙금으로… 군 개혁은 끝내 손도 못 댈 것인가


청와대와 군 사이의 마찰음이 한계치를 넘어 경보음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군의 교신내용 보고 누락’을 둘러싼 파문이 ‘경징계’로 마무리됐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군부 사이는 점점 더 멀어져간다. 군 개혁도 멀어져간다.


▣ 김성걸 기자/ 한겨레 정치부 skkim@hani.co.kr

청와대와 군 사이의 마찰음이 한계치를 넘어 경보음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 경비정의 무선통신 보고 누락 사건에서 보고를 하지 않은 잘못을 저지른 군에서는 불평이 계속 나오는 실정이다. 또 청와대는 최종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잘못이 드러난 군 관계자들에게 경고 수준의 경징계를 지시하는 관용을 베풀었다. 그러나 한때 군에 대해 발끈했던 감정은 앙금으로 남아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군 사이에는 불만이 가시지 않고 쌓여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성급 회담 합의정신에 대한 이해부족

군 관계자들은 “경징계 사안을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했어야지, 군이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집단으로 매도된 데는 서글플 뿐”이라며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청와대쪽도 지난 7월19일 정부 합동조사단(단장 박정조 육군 소장)이 처음 보고를 했을 때 “문제가 된 보고 누락보다는 북한 경비정에 대해 군이 정당하게 대응했다는 논리였다”며 싸늘한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남북 문제 인식의 차이이다. 정부 합조단이 작성한 국방부의 국회 보고자료에는 해군 작전사령관의 보고 누락에 대해 “북 경비정에 대한 적개심과 북방한계선 사수 의지”라며 “북 경비정의 북방한계선 침범에 따른 대응은 작전 예규에 따라 적절히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미화로 여겨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같은 보고자료에서 지적했듯이, 일선 지휘관들은 남북 장성급 회담의 합의정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런 태도는 군 통수권자인 노 대통령의 강조사항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월16일 열린 통합방위 보고회의에서 “올해에는 남북간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장성급 군사회담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며 “올해는 한반도 평화 증진의 전기를 마련하는 해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남북간에 서해에서의 우발적인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상호 교신 등 합의가 이뤄졌지만, 군 체계의 상부와 하부가 따로 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군 수뇌부 문책인사 등 강도 높은 대응을 준비했지만,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은 놔두고 왜 우리 군만 나무라느냐는 야당과 보수 언론의 공격을 받고 슬며시 뒤로 물러섰다. 태산명동에 서일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국방부 사이에 불신은 더해졌다.

정권 출범부터 노 대통령과 군과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지난 2002년 대선기간중 예비역 대장 11명, 예비역 중장 30명 등 예비역 장성 500여명과 예비역 영관장교 750여명이 대거 한나라당에 입당하며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부터 이미 갈등은 예고돼 있었다.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 회원이 2천여명이고 활동하지 않는 회원 수를 고려하면 대부분의 예비역 장성들이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의 첫 군 수뇌부 인사는 대상폭이 워낙 적어 인선이 쉬웠다는 말이 나돌았다.

예비역 장성들의 ‘반란’에 맞서 노무현 후보쪽은 일반 사병들을 겨냥한 ‘당근’공약을 내놓았다. 사병들의 복무기간을 2개월 단축하겠다는 공약이 그것이다. 이는 젊은층이 대부분인 사병들에게서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노 후보는 집권한 뒤 이 약속을 지켰다. 현역 사병의 복무기간은 육군 26개월에서 24개월로, 해군 28개월에서 26개월, 공군은 30개월에서 28개월로 조정됐다. 선거 득표로 볼 때 소수이지만 보수 ‘원조’인 예비역 장성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대신, 외곽을 둘러싼 다수의 사병들 마음을 얻은 것이다. 이에 고무된 노 대통령은 지난 1월 군구조 개편 작업과 연계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병역 복무기간을 추가 단축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자주국방 실현’이라는 당근

군에 대한 노 대통령의 또 다른 당근은 ‘자주국방 실현’이었다. 군 전력 증강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순수한 생각에서 내놓은 자주국방 용어는 곧 보수단체의 공격을 받았다. 한국 방위의 후견인인 미국을 벗어나 ‘반미’로까지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의혹의 눈초리였다. 곧 용어는 ‘협력적 자주국방’으로 보강 교체됐다. 협력적 자주국방은 참여정부의 국가안보 전략 기조의 하나로 한-미 동맹과 자주국방의 병행 발전을 추구하는 개념으로 정립됐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지난 3월 발표한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에서 “한-미 동맹을 발전시켜 북한의 전쟁 도발을 억제하면서 도발시 이를 격퇴하는 데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체제를 구비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안보 개념의 변화에 따라 군에 대해 파격적인 예산지원이 이루어졌다. 2004년 정부재정은 0.2% 증가에 그쳤는데도 국방비는 기록적으로 8.1% 증가했다. 이에 따라 지난 80년 이후 계속 하향 추세이던 정부 재정 대비 국방비의 비율은 2003년 14.8%에서 16.0%로 급상승했고, 국내총생산(GDP) 비율에서도 2003년 2.7%에서 2004년 2.8%로 20여년 만에 상승쪽으로 돌아섰다.

‘당근’과 함께 노 대통령은 군에 대해 ‘채찍’도 구사했다.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던 지난 해 12월 전방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아무리 강한 무기를 가진 군대라도 사기가 낮으면 강한 군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군 인사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면밀히 조사해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철저히 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특히 “생각하지 못한 것을 개선하고, 군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인사를 단행하겠다”며 인사 혁신을 예고했다.

노 대통령은 첫 장관 인사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참여정부의 색깔을 따진다면 문민 국방장관을 선호했으나, 대상 후보군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육·해·공군 가운데 힘센 육군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군의 안정성 문제가 제기돼 육군 출신으로 하되, 주류 육사 출신을 포기하고 비주류 갑종 출신인 조영길 장관을 낙점했다.

노 대통령의 군 인사는 이후에도 자신의 스타일을 내세우기보다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지역별·출신별 안배를 꾀하는 스타일이었다. 첫 합참의장도 공군 출신이 거론됐으나 조 장관이 현실적인 필요를 들어 김종환 육군 대장(육사 25기)을 적극 추천하자 그대로 따랐다. 나머지 장성 진급인사에서 일부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이런 원칙을 따랐다.

집권 뒤 노 대통령은 군 사정기관인 헌병과 법무에 칼날을 들이댔다. 헌병 병과의 장군 2명, 법무 병과의 장군 2명이 옷을 벗었다. 또 국방회관과 육군회관의 비리 조사에 들어가 준장급인 국방부 근무지원단장과 육군 복지단장들이 줄줄이 사법처리 대상에 올랐다. 또 역대 체육부대장 수사에 이어 공병 비리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공병 병과가 휘청거릴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줄잡아 20여명의 장성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런 채찍에 대한 반발은 시간이 갈수로 거세졌다. 군 내부에서는 지휘활동비가 부족한 현실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예산 전용을 지나치게 문제 삼는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그런 관행과 개인 착복은 구분해 채찍을 휘둘러야 한다는 볼멘소리들이 터져나왔다. 특히 지난 5월 현역 대장인 신일순 한-미 연합사부사령관이 전격 구속되자 군을 지나치게 다룬다는 아우성이 나왔으며, 특정 지역 출신 장성들만을 제물로 삼는다는 불만이 이어졌고 이는 급기야 적개심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극우단체에서는 극언인 ‘군부 쿠데타’를 암시하는 강연과 집회가 이어져 노 대통령과 군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국민행동본부’라는 극우단체가 지난 7월25일 발표한 성명이 그것이다. 국민행동본부는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대령 연합회’와 ‘육사 3·7·8·9·20기 총동창회’ ‘갑종 157기·164기 동기회’ ‘공군전우중앙회’ ‘대한민국 해군동지회’ ‘베트남참전전우회’ 등 전역 군인단체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인터넷 〈독립신문〉과 북한민주화협의회, 북핵저지시민연대 등 극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단체나 기관들이 가입해 있다.

‘군부 쿠데타’암시하는 집회까지

국민운동본부는 성명에서 “노무현씨가 국회까지 장악하면 친북 세력과 손잡고 연방제 적화 통일 방안을 수용해 대한민국의 국체를 변경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며 “이런 반역세력을 검·경이 단속하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국군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우리 군은 헌법 5조로부터 국가의 안전보장에 대한 최후 보루로서 임무를 부여받았으므로, 국군이 나서기 전에 반역세력은 자숙하고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운동본부가 노 대통령을 압박하려고 ‘쿠데타 악령’을 불러들이려는 시도 때문에 결국에는 노 대통령과 군 관계만 미묘해지고 말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작 군이 그런 쿠데타 ‘부추김’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성숙하고 민주화가 진전된 마당에 과거와 같은 쿠데타는 가당치 않고, 설령 누군가 군대를 몰고 나간다고 해도 시민의 거센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며 “이런 발언은 묵묵히 전선을 지키는 군인을 욕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군 개혁은 사실상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하는 형편이 됐다. 참여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은 전반적인 군 개혁보다는 군에서 마련한 기존 국방중기계획의 범주에서 크지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북한의 위협만 강조되면서 비정상적인 육·해·공군 비율(8:1:1)에 대한 개선책이 아직 없는 형편이다. 또 국방예산이 운영유지비에 과다하게 투자되는 현실에서 전력증강비를 실질적으로 늘리려는 뚜렷한 방안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국제관계)는 “주한미군 재배치 과정에서 무기도입선을 다변화하고, 연구개발에 중점을 둬야 하는데도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했다”며 “자주국방론이 파편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함택영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도 “자주국방론이 자주보다는 군비 증강에 치우치고 있다”며 “군 개혁,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독자적 작전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충고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약속했던 군 개혁은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일심단결해야 할 청와대와 군은 여러가지 안팎의 요인에 의해 자꾸만 멀어지고 있다. 현재의 노 대통령과 군 과의 관계가 한마디로 ‘개혁은 없고 불만만 있다’로 요약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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