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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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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기구 통합, 막바지 진통

등록 2004-07-02 00:00 수정 2020-05-03 04:23

금감위와 금감원의 통합 · 재편 놓고 논란… 재경부는 ‘금융청’ 산하로, 금감원은 독립기구로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몇해를 끌어온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란이 이번에는 깔끔하게 마무리될 것인가? 금융감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와 금융감독원(금감원)으로 나뉘어진 기구를 통합·재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그동안 두 기구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통합 방향을 둘러싼 의견 대립은 이번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정부안 확정을 앞두고 대립은 다시 한번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회사 노조는 민간기구 지지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첫 번째는 지난 2000년 10월 터진 이른바 ‘동방금고’ 사건이 그 계기였다. 동방금고가 대주주에게 불법으로 거액을 대출해준 사건에 금감원 간부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금융감독 체제 개편 논의가 본격화됐다. 그러나 기획예산처가 주도한 금융감독 체계 효율화 방안에 금감원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개편 작업은 1년여 만에 보류됐다. 이후 지난 2002년 11월 한나라당 서상섭 의원을 대표로 한 여야 의원 24명이 금융감독기구의 단일화를 뼈대로 한 ‘금융감독원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으나, 법 제정이 무산됐다.

이번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의는 전윤철 감사원장이 지난해 12월 이른바 정책 감사의 첫 대상으로 금융감독위원회를 선정함으로써 시작됐다. 당시 감사원쪽은 “LG카드 등 카드사 사태는 금융감독 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며, “현행 금융감독 체계가 효율적인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 감사원장은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정부개혁 추진 과정에서 금융감독 체계에 문제점이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도 있어, 감사원 감사는 금융감독기구의 개편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감사원은 감사를 끝냈지만, 감독기구 개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청와대의 뜻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감사원의 독자안을 발표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금융감독기구 개편 방안과 관련한 감사원의 의견은 여러 경로를 통해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핵심은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통합해, ‘공무원 조직화’하자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안은 금융감독원 직원들과 피감독기관인 금융회사 소속 노동조합들이 가장 바라지 않는 것이다. 민주노총 소속의 사무금융노련과 한국노총 소속의 금융산업노조는 6월25일 금융감독원에서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금융감독기구를 통합해 공적 민간기구로 재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금융감독원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이다. 두 노조단체는 “금융감독기구를 현행 체제로 유지하면서 금융감독위원회 조직을 일부 축소하거나 재정경제부가 가진 일부 권한을 금감위에 이관하는 방식으로는 현재의 업무 중복과 비효율성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고 관치금융 논란을 종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감독기구 개편 논의를 촉발한 카드사 부실 문제는 민간 소비 진작을 통해 경제 회복을 추구하던 재경부의 관치주도형 카드 정책의 실패와 금융감독기관의 중립성 결여에 따른 금융감독 정책의 정부 정책 수단화에 원인이 있었다”며 감독기구의 민간기구화를 촉구했다.

시민단체, 금감원 제안에 공감

금감위와 금감원으로 이중화된 금융감독기구는 지난 1998~99년 설립 이후 계속 문제를 키워왔다. 금융감독 정책에 관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금융감독위원회는 지난 1998년 4월 설립된 공무원 조직이다. 금감위는 인·허가 등 중요 정책을 결정하고, 금감원을 지시·감독한다. 금감원은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등이 통합한 민간기구로서 1999년 1월 설립됐다. 문제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조직이 비대화돼갔다는 점이다. 애초 금감위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고, 이 위원회에 예산과 행정 사무를 담당할 최소한의 공무원만 두기로 했다. 그리고 금융감독 업무는 금감원이 담당하도록 했다. 그러나 금감위 사무국은 애초 19명에서 70여명에 이르는 거대 공무원 조직으로 확대됐고, 공무원이 중요 사항을 의결하는 기구로 변해갔다. 이중화된 조직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권한과 책임을 둘러싼 논란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금융감독기구 개편의 큰 원칙은 이제 두 조직을 통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통합된 금융감독기구를 어떤 모습으로 할 것인가에는 시각차가 매우 크다. 재정경제부는 금감위와 금감원을 통합해 재경부 산하에 ‘금융청’으로 두는 방안을 선호한다. 공무원으로 구성된 재경부의 하부 조직으로 금융감독기구를 만들려는 것이다. 재경부의 시각은 금융감독을 ‘책임성 있는’ 공무원이 해야 한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의 경우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금감위를 통합해 금융부를 신설하고, 그 산하에 반민반관 성격을 갖는 금감원을 배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두 기관은 모두 공무원 조직이 주도하는 금융감독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에 비해 금융감독원은 금감위와 금감원을 통합하되 반민반관 성격의 독립기구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금감원 중립을 위한 직원비상대책위 관계자는 “관치금융을 없애고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행정기관이 아닌 독립된 전문기관이 금융감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경부나 금감위 공무원들, 그리고 금감원 사이의 대립은 이른바 금융감독기구의 주도권을 둘러싼 대립의 성격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에서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금감원쪽의 주장이다. 금융감독이 관치금융의 폐해를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 6월10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주최로 열린 금융감독기구 개편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발제에 나선 김홍범 경상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공공기관 사이에 수직적 위계가 존재하는 가운데 재경부의 정책 지배로 협력과 견제가 실종돼 있고, 금감위의 감독정책이 재경부의 경기정책 수단이 되면서 신용카드 회사 부실화의 일부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윤창현 명지대 교수도 “금융감독원의 영어 명칭은 ‘FSS’(Financial Supervisory Service)로, 서비스가 관의 기능인지 민의 기능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관보다는 민이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정책토론회의 나흘 뒤인 6월14일 성명을 내어 “정부가 금융개혁의 의지가 있다면 독립성과 책임성이 확립된 공적 민간 통합 금융감독기구로 개편하라”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도 금감위의 사무국 조직을 대폭 축소하거나, 민간 독립기구로 통합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안은 또 한번 미봉책?

최근 들어 시민단체와 금감원, 금융산업 노조쪽의 움직임이 활발한 것은 정부안이 또 한번 문제를 미봉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이헌재 부총리는 지난 5월28일 한국금융학회 세미나에서 특별연설을 통해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조직 개편 문제가 아니고, 감독 기능의 질적 제고를 위한 조직 정비와 외부 전문성의 수용”이라고 말했다. 또 김병준 전 정부혁신추진위원장도 6월 초 와의 전화 통화에서 “의견 대립이 너무 팽배해 민이나 관 어느 한쪽에 치우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나 금융산업 관련 노조의 요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셈이다.

정부는 애초 6월 말까지 금융감독기구 개편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개편안 확정이 늦어지는 가운데, 개편안이 나온다고 해도 정부안에 대한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여, 논란이 마무리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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