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이이타이병’ 의혹받는 고성군 병산마을을 가다… 만성 카드뮴 중독은 장기 조사로 판정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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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광이 있는 경남 고성의 병산마을엔 유달리 골다공증 환자가 많다. 최근 만성 카드뮴 중독, 이타이이타이병 의혹을 받고 있는 병산마을을 직접 찾아갔다. |


고성= 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학실한 근거도 없으믄서 우짤라고 자꾸 동네를 휘젓고 다니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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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5일 경남 고성군 삼산면 병산마을. 마을의 허리쯤에 자리잡은 키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말씨름이 벌어졌다. 시민환경연구소 수질센터의 이상용 실장을 붙잡고 동네 주민 박아무개(47)씨가 막말 직전의 험악한 기세로 눈을 부라렸다. “매일 논밭에서 죽어라 일하는데 몸 안 아픈 할배·할매가 어디 있습니꺼?”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농협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씨는 최근 마을 주민들이 폐광에서 흘러나온 카드뮴에 중독돼 ‘이타이이타이병’이 의심된다는 언론 보도에 한창 독이 올라 있었다. 뉴스가 나가자마자 병산마을에서 난 쌀가마가 하루에 100가마씩 반품돼 쌓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창행 불사하며 반대했던 광산 건립
“쌀 팔아먹는 거보다 사람 몸이 먼저 아니겠습니꺼?”
들일을 마치고 동네 들머리에 앉아 땀을 식히던 마을 주민 정재욱(63)씨는 한숨을 쉬었다. 정씨는 1970년대 초반 병산마을에 광산이 들어설 때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병산마을과 이웃한 삼봉마을은 일제시대부터 구리 채굴이 성행해 여러 곳에 광산이 벌어져 있었다. 광산에서 흘러나오는 ‘나쁜 물질’ 때문에 삼봉마을의 곡식 농사가 잘 안 되고 개울의 미꾸라지도 남아나지 않았다는 소문을 전해들었던 병산마을 주민들은 광산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경악했다. 당시 100가구 남짓한 동네 사람들은 똘똘 뭉쳐 반대운동을 벌였다. 광업소를 짓는 공사를 방해하기 위해 낮에 쌓아놓은 공사장 돌들을 아줌마들이 밤마다 머리에 이고 다른 곳으로 나를 정도였다. 경제개발이 지고지선의 목표이던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가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반대운동 하는 사람들을 전부 경찰서에 가두고 며칠씩 집에 보내지 않았다. 유치장에서 사나흘씩 잠도 못 자고 밥도 쫄쫄 굶은 사람들은 풀이 꺾여 돌아왔다. 주민들의 거센 반대 속에서 열린 광산은 10년쯤 운영되다 닫혔다. 이유는 물론 사람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이었다. 채산성이 떨어지자 삼산제일광산은 조용히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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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이 닫힌 지 20여년. 당시 광산설립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은 대부분 세상을 떴다. 함께 시위를 했던 청년들도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근육이 탱탱하던 팔다리는 비쩍 말랐고, 쭉 뻗었던 허리선도 굽었다. 청년이 늙어가는 세월 동안, 마을의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났고 병산마을 역시 우리나라의 다른 농촌과 다름없이 ‘환갑 노인이 막내가 되는’ 풍경으로 변해갔다.
세월이 지나면서 잠잠하던 광산이 다시 주민들 입에 오르내린 것은 지난 5월부터였다. 마창환경운동연합 부설 수질환경센터 연구팀이 병산마을 뒷산 폐광에서 흘러나온 개울물을 채취해 검사한 결과 구리와 카드뮴이 기준치의 각각 7배, 2배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2000년 환경부 조사와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당시 병산마을에서 토양 오염 기준을 초과한 곳은 논·밭·갱 등 측정 지역 65곳 가운데 18개 지점으로 구리(19곳), 비소(9곳), 납(2곳) 등이 검출됐다. 카드뮴의 경우엔 밭 1곳에서만 1.47mg/kg이 검출돼 우려 기준인 1.5mg/kg에 미치지 않았다.

수질환경센터는 곧장 주민들의 체내 카드뮴 농도 측정에 나섰다. 마을 주민 7명을 병원으로 데려가 소변과 혈액을 검사한 결과 오줌의 카드뮴 농도가 3.80~11.59㎍/ℓ에 달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일반인 소변 중 카드뮴 농도 상한인 2㎍/ℓ을 훨씬 넘는 수치였다.
어쩌다 고성읍 장에 나가면 딴 마을 사람들에게 “병산골 할매들은 특히 더 허리가 꼬부랑이네”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부지런히 물파스만 발랐던 마을 주민들은 이 통증이 폐광에서 흘러나온 물 때문일 수 있다는 소식에 입을 벌렸다.
5년 전까지 폐광 앞 개울물 식수로 써
“와, 아프믄 약 줄라꼬 그러나? 예전엔 그렇게 데모를 해싸도 꼼짝 않고 광산을 짓더만 이제는 광산에서 나온 물이 나빠서 그런 거라믄 우짤 긴데?” 뼈마디가 쑤실 때면 방안을 기어다녀야 한다는 구순남(72)씨는 3년 전 골다공증 진단을 받았다. 골다공증 치료약을 먹으면 속이 쓰려 심하게 아플 때만 약을 먹는다. 10여년전부터 허리를 영 못 쓰면서 오른쪽 다리도 함께 저려 질질 끌며 걸어야 한다. 그렇다고 마냥 놀 수만은 없다. 구 할머니는 하루 1만원을 벌기 위해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굴 공장으로 출근한다. 10시간 가까이 쪼그리고 앉아 굴 껍데기를 꿰고 나면 집에 돌아갈 즈음엔 걸음도 못 뗄 정도가 된다.
광산이 들어서기 전까지 본래 병산마을은 물맛이 좋은 동네였다고 한다. 뒷산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맑아 우물물로도 쓰고, 부족하나마 논에 물도 댔다. 물이 변한 것은 광산이 문을 열고 나서였다. 광업소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물질들이 개울에 섞여 흘러들어 1970년대 중반 채굴이 성할 때는 개울 바닥이 온통 시뻘겠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그때는 물이 끈끈하고, 개울가에 있는 집들의 우물 바닥엔 돌가루가 허옇게 쌓였었다”고 말한다.
5일 오후 폐광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개울을 찾았다. 개울 바닥엔 산화된 구리 성분 때문에 돌멩이가 시퍼다. 길을 잘못 들어 물에 빠진 지렁이가 허옇게 배를 뒤집고 죽어 있었다. 이상용 실장은 “중금속이 이 정도 들어 있는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고 말했다. 5년 전 마을 전체에 간이 상수도를 놓기 전까지 주민들은 이 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갱구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엔 광산 생산물의 찌꺼기인 광미사가 쌓여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본래 논이던 이곳은 구리를 뽑아내고 남은 돌가루들로 매립이 되어 있다. 생명이 자라기엔 역부족이었는지, 앞산에서 바람에 묻어 날아온 종자가 자라 어린 소나무 몇 그루가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다. 산화된 철과 구리 때문에 땅 표면이 붉거나 푸르렀다.
이장 양창수(58)씨는 “마을에 오래 산 60~70대 여자들이 아픈 곳이 많다”고 설명한다. 병원에서 류머티스 관절염·골다공증 등의 진단을 받은 이들은 “심하게 아플 때면 뼈마디를 칼로 싹싹 베는 듯하다”고 호소한다. 병산마을로 시집와 40년 동안 거주한 김말남(70)씨 역시 1년 전에 골다공증 진단을 받았다. 김 할머니는 10년 전쯤 앵두를 따다 넘어지며 팔이 부러졌는데 약간의 충격에도 복합 골절을 일으켜 쇠심을 박고 깁스를 했었다. 아직도 팔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 김 할머니는 요즘은 골다공증 치료를 위해 주사를 맞고 있다.
“나 아픈 것도 좀 봐주시요.” 손자를 업고 있던 이부남(57)씨가 웃옷을 벗었다. 맨눈으로 보아도 휘어진 척추가 뚜렷했다. 척추가 활처럼 앞으로 휘면서 상대적으로 어깨뼈가 뒤로 물러나 있었다. 10여년 전부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엉덩이도 저리다고 했다.
이 밖에도 마을 곳곳에선 허리가 굽은 노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앞서 신문과 방송 보도에 나온 것처럼 지팡이 대신 유모차를 지팡이 대신 끌고 다니는 할머니들도 많았고 허리가 워낙 많이 굽어 고개를 들어도 정면을 똑바로 볼 수 없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골다공증, ‘농부병’이냐 ‘공해병’이냐
그렇다면 과연 주민들이 호소하는 통증은 일반적인 ‘농부병’과는 얼마나 다를까? 카드뮴 중독이 의심된다면 ‘만성’ 중독증인 ‘이타이이타이병’일 개연성은 얼마나 높은 것일까?
주민들의 체내 카드뮴 농도를 조사한 채창호 마산 삼성병원 산업의학과 교수의 입장은 조심스러웠다. “소변 조사에서 검사를 받은 7명 전원이 정상인들보다 카드뮴 농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또 주민들이 말하는 ‘뼈마디가 쑤시다’는 골통증의 묘사도 이타이이타이병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타이이타이병의 전형적 증상인 신장 기능 이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폐광산과 주민들이 앓고 있는 병의 연관관계를 밝히기 위해선 주민들이 섭취하는 쌀·채소·식수 검사를 포함해 장기간의 대규모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도 이타이이타이병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결과가 발표됐다. 우리나라에선 이번에 처음으로 이타이이타이병 의심 사례가 제기된 것이다. 그만큼 이 병에 대한 전문가가 전무하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면밀하게 조사가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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