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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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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냐 정치냐 헌재의 선택은

헌재 연구원장이 19년 전 출제한 ‘정당해산’ 헌법 문제
정답은 “다원성과 정당의 자유 제한해선 안 된다”
등록 2013-11-21 14:12 수정 2020-05-03 04:27

여기 두 개의 질문이 있다.

문제1 A정당은 작은 정부 실현, 복지정책 대폭 축소, 경제에 대한 국가 규제 폐지 등을 정강·정책으로 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소속 의원을 통해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B정당은 빈부 격차의 심화, 계급 간 갈등과 사회적 부정의를 시정하기 위해 완전고용과 광범위한 복지정책 실현, 전통적 가족으로부터의 해방 등을 정강·정책으로 하면서 헌법 개정을 주장했다. A정당은 B정당을, B정당은 A정당을 헌법 제8조 제4항에 따라 서로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므로 해산돼야 한다며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상대방 정당의 해산을 제소할 것을 촉구했다. 양당의 주장에 관해 논하라.

문제2 C정당은 사실상 그 정당의 목적이 전체주의의 실현을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 판단돼 헌재 결정에 의해 해산됐다. 국회의원 갑이 C정당의 당원인 경우 국회의원으로서 신분을 상실하는지 논하라.

법무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11월5일)를 참고한 ‘최신’ 법학 문제로 보인다.

두 세대 건너 현실화된 헌법 문제

아니다! 19년 전 고시생들이 풀던 헌법 연습문제다. 1994년 3월호 (‘정당해산사유 및 정당해산시 의원신분상실 여부’)에 실렸다. 고시생들의 법리 해석 능력을 훈련하려 ‘세팅한’ 가상의 상황이 두 세대를 건너 현실이 됐다.

김문현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출제했다. 그는 지난 6월4일부터 제2대 헌법재판연구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헌재연구원은 설립(2011년 1월 개원) 근거를 법률에 둔 헌재 산하기관이다. 박근혜 정부는 진보당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을 헌재에 청구하는 방식으로 ‘정치의 무능’을 무기화했다. 헌재가 정권의 ‘정치 전략’ 한가운데로 끌려들어간 상황이 산하 연구원장의 19년 전 답안지를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김 원장이 낸 문제는 당 간부나 당원의 활동보다 정강·정책을 둘러싼 판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상과 현실 사이엔 사건이란 간극이 있으나, 그의 답은 법무부의 법 판단과는 결이 크게 다르다.

정답1 헌법 제8조 제4항의 민주적 기본 질서의 의미를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로 한정하는 경우 다원성과 가치상대주의를 제한하고 국가에 의한 광범위한 정당의 자유를 제한해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진보정당의 존립 자체를 부정했던 우리의 과거 권위주의 정권 역사에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A정당도 B정당도 모두 정당해산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정답2 국회의원의 활동에 관해서는 자유위임(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의 의사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활동)의 원리가 정당 규정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된다고 봐야 할 것이고, 위헌정당 해산 결정의 효과가 자유위임 관계에 있는 의원 신분의 상실까지 가져온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김 원장은 과의 통화에서 “정치적 중립기관인 헌재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말했다.

김 원장 “지금 이야기할 상황 아니다”

김 원장의 취임 전인 지난해 12월 헌재연구원은 이란 책을 발간했다. 책은 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과 종북 논란을 염두에 둔 서술과 함께 이렇게 쓰고 있다. “한 정당의 당원 몇 사람이 설령 그런 사상(종북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소속 정당의 정강·정책이 드러내놓고 그런 사상을 표방하면서 우리 헌법 질서를 부정하지 않는 한 그 정당을 반헌법적인 정당으로 몰아붙여 해산시킬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는 헌법의 원리를 왜곡했다. 헌재는 헌법의 원리를 따를까, 정치의 논리를 따를까.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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