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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의 기습

국내에서만 5번째 감염자 발생… 모기물림·수혈·성관계로 감염돼 신생아 소두증 유발하는 지카바이러스
등록 2016-05-21 08:01 수정 2020-05-02 19:28
모기를 통해 감염되는 ‘지카바이러스’는 신생아 소두증을 유발한다. AP 연합뉴스

모기를 통해 감염되는 ‘지카바이러스’는 신생아 소두증을 유발한다. AP 연합뉴스

연초부터 미국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던 지카바이러스(신생아 소두증 유발)에 대한 우려와 공포가 중남미와 미국 본토를 넘어 이제는 한국에까지 퍼져들었다. 특히 8월에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서른한 번째 올림픽이 개최된다. 큰 스포츠 행사로 남미 지역 왕래가 전보다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지카바이러스에 대한 경계심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올 초만 하더라도 지카바이러스 감염에 관해서는 남의 나라 얘기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난 3월 국내에서도 첫 한국인 지카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발생했고, 이후 5월 중순까지 4명의 환자가 더 발생했다. 남미의 경우처럼 감염환자들에 의해 지카바이러스가 국내에 확산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에 유입된 5건의 지카바이러스 감염 외에 추가 사례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관련 부처의 철저한 방역과 역학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주요 매개체는 ‘이집트숲모기’

지카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지역 이름이다. 1947년 우간다 지카 숲에서 열병에 걸린 원숭이의 역학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바이러스를 발견했고, 지역 이름을 따서 지카바이러스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이 바이러스가 아프리카 지역이나 일부 아시아에서만 발견되었지만 그 후 중남미로도 퍼져나갔다.

지카바이러스 전파는 ‘이집트숲모기’라고 불리는 모기가 주된 매개체이다. 하지만 흰줄숲모기도 지카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지카바이러스 전파의 주된 원인인 이집트숲모기가 서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지카바이러스 감염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 다른 매개체인 흰줄숲모기가 국내에 서식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진 국내 흰줄숲모기에서 지카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기온이 오르면 흰줄숲모기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요즘 지카바이러스가 새로운 이슈의 중심에 서 있지만, 이전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조류독감, 에볼라바이러스가 뉴스에 등장했다.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이 바이러스들은 생물학적으로 어떤 존재일까?

바이러스는 전염성 병원체로 그 크기가 10~400나노미터(nm) 정도이다. 이는 세균 여과기를 통과할 정도로 매우 작은 크기이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물질을 DNA에 보관하여 자손에게 전달한다. 바이러스의 경우도 유전물질을 사람처럼 DNA에 보관한다. 하지만 핵산의 다른 한 종류인 RNA에 유전물질을 보관하는 바이러스들도 있다. 지카바이러스가 그중 하나이다.

모기 타액과 함께 핏속으로
지카바이러스의 주요 매개체인 이집트숲모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제공

지카바이러스의 주요 매개체인 이집트숲모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제공

지카바이러스를 우리와 같은 생명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이러스를 생명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바이러스는 생물학적 특징과 비생물적 특징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카바이러스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가 지닌 공통 성분인 핵산과 단백질로 구성되었다. 숙주세포 내에서 지카바이러스의 물질대사와 증식이 일어난다. 또한 숙주세포 내 증식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유전 현상과 돌연변이도 나타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바이러스는 생명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지카바이러스를 생명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바이러스는 비생물적 특징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카바이러스는 사람과 달리 세포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세포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구조적 단위이자 생명활동이 일어나는 기능적 단위이다. 사람을 포함해 동물, 식물, 심지어 질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도 모두 세포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숙주세포 밖에서는 세포 형태가 아닌 핵산과 단백질의 결정체로 존재한다. 또한 바이러스는 생존에 필요한 효소를 스스로 만들지 못하므로 숙주세포 밖에서는 물질대사나 증식을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무생물학적 특징 때문에 바이러스를 생명체라고 단정해서 얘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지카바이러스를 포함한 모든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특징은 주로 숙주세포 내에서만 나타나고, 무생물학적 특징은 주로 숙주세포 밖에서 나타난다.

지구상에는 3천 종 이상의 모기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가운데 200여 종의 모기가 사람을 문다. 모기는 왜 그 많은 먹이 중 하필 사람의 피를 먹고 살아 우리를 괴롭힐까? 흥미롭게도 사람의 피를 빠는 모기는 모두 암모기이다. 수모기와 달리 암모기가 왜 이런 돌출 행동을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사실 암모기가 사람의 피를 흡입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암모기는 자신의 알을 제대로 성장시키기 위해 충분한 영양 공급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처럼 암모기도 본능적으로 모성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물다가 죽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알의 정상적인 성장을 위해 모기는 ‘목숨을 담보’로 사람의 피를 빠는 것이었다.

모기를 연구하는 어느 학자는 한 학술세미나에서, 여름철만 되면 모기가 자신의 새끼를 위해 목숨까지 걸고 사람의 피 빠는 일을 계속한다고 생각하니,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우리의 어머니가 생각나 마음까지 짠해진다고 얘기해 다른 연구자들을 미소짓게 만든 적이 있다. 한편으로 공감하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를 괴롭히는 모기가 용서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잠복기 최대 2주

암모기는 자신의 체중과 유사한 양의 피를 흡입하고 휴식을 취한다. 이 사이에 흡혈한 핏속 단백질과 철분을 이용해 알의 성장에 필요한 성분을 만들고 자신의 난소를 발육시킨다. 모기는 한 번에 300여 개의 알을 낳는다고 알려졌다.

모기는 흡혈을 하면서 사람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히루딘 성분이 포함된 자신의 타액을 사람 핏속에 함께 주입한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피부에 들어온 모기 타액을 이물질로 인식해 방어작용을 작동하게 된다. 이 과정 중 우리 몸에서 히스타민이 분비되어 가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문제는 모기가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 타액이 사람 몸에 주입되는 동안 지카바이러스도 함께 들어와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는 사실이다.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 황열병, 뎅기열 등의 질병을 앓는 사람은 전세계에 6억 명 이상이라고 알려졌다. 이 가운데 200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며칠 전에는 미국 영토 내에서도 지카바이러스 감염자 사망 사례가 처음으로 보도되었다. 최근 미국에서 출간되는 줄기세포 연구 학술지 (Cell Stem Cell)에는 지카바이러스가 태아의 뇌를 만드는 신경전구세포를 손상시켜 소두증을 유발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지카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잠복기는 2~3일을 평균 기간으로 최대 2주까지 걸릴 수 있다. 또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에 물리는 경우 이외에도 감염된 사람의 피를 수혈받거나 감염된 배우자와의 성관계를 통해서도 지카바이러스 감염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유행했던 메르스 바이러스의 경우와 달리 사람 사이의 접촉을 통한 전파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공포가 확산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제품 형태로 나와 있는 지카바이러스 백신은 아직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카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박테리아 주입 모기의 활용을 권고하기도 했지만 이것이 언제 실행될지 아직 미지수다. 따라서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법인 셈이다.

완전한 예방 가능할까

하지만 모기에 물리지 않고 여름을 나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 크다. 지금으로서는 불편하더라도 긴팔옷을 입고, 모기퇴치제나 모기장을 사용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모기가 많은 지역이나 해외여행시 감염 주의가 내려진 지카바이러스 발생국을 방문할 때 특히 주의가 요구된다. 임신부나 임신 계획이 있는 여성은 위험 지역에 가는 것을 되도록 피해야 한다.

영국 런던대학 퀸메리 의대 바이러스 전문가인 존 옥스퍼드 교수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했을 때 “수행자처럼 혼자 살지 않는 한 사스 예방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그리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류가 지카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어떤 결론을 도출해낼지 궁금하다.

김정호 서강대 교수·생명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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