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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먹는 하마’에 거침없이 투자?

등록 2007-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타당성 검증도 없이 핵융합 에너지 개발사업 무모하게 추진하는 정부여, 멈추라

▣ 석광훈 녹색연합 정책위원 nonuke@greenkorea.org

지난 4월21일 ‘과학의 날’ 40주년을 맞은 과학기술부와 과학기술계는 다양한 행사들을 통해 정부의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촉구했다. 자원 빈국인 형편에서 과학기술 발전과 이를 위한 안정적인 투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황우석 박사 사건’을 겪은 바 있는 우리로서는 정부의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에 앞서 투명하고 체계적인 사전 타당성 평가 구조를 갖추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다.

‘나이브’한 희망으로 4조7천억원 투입

4월2일 국회는 우리 정부가 모두 1조5천억원을 부담하게 될 국제핵융합에너지(ITER) 설립협정 비준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눈여겨본 이들은 많지 않았다. 국내 기초과학 예산 규모를 기준으로 볼 때 단일사업으론 사상 최대 규모의 정부투자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정부의 핵융합 투자계획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과학기술부는 ITER 사업을 포함해 초전도핵융합장치(KSTAR), 핵융합 발전소 개발 등 국가 핵융합 에너지개발 기본계획으로 2035년까지 모두 4조7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한다.

비교적 구체적인 투자 일정이 잡혀 있는 2020년까지만 보더라도, 정부의 핵융합 발전 개발 예산은 약 2조원에 이른다. 이는 연간 14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지난해 모든 정부부처가 투자한 기초연구 예산 총액 1조7천억원의 8%를 넘는 막대한 액수다. 물론 그 투자 규모에 상응하는 국익이 보장되는 사업이라면 이를 아깝다고만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투자가 투명하고 면밀한 사전 타당성 분석 없이 결정된 것이라면 문제는 전혀 달라진다.

더욱이 최근 과학기술부는 이같이 막대한 재원을 조달하는 과정에 기존 과학기술 예산만으로는 모자라자, 전력산업기반기금 등 다른 용도의 기금까지 사용하기 위해 정부의 고위직 인사들을 동원해 로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전력수급 기본계획은 향후 20년까지 이미 상용화됐거나 최소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ITER는 50년이 지나봐야 상용화가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다. 다른 정부계획과 연계성도 없는 핵융합 에너지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기금까지 전용하려는 과학기술부의 행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애초 원자폭탄의 원리를 기반으로 원자력 발전이 개발된 것을 목도하면서, 일군의 물리학자들은 원자폭탄보다 수천 배의 위력을 가진 수소핵융합폭탄도 발전에 응용될 수 있다는 ‘나이브’한 희망을 갖게 됐다. 실제로 수소폭탄을 개발한 미국과 옛 소련을 중심으로 핵융합 발전 연구개발이 진행돼왔다. 그러나 핵분열 원자탄 개발에서 원자력 발전 상용화까지 걸린 기간이 불과 3년 정도였던 데 반해, 핵융합 발전의 경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초적인 기술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핵융합으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선 진공 상태에서 장시간 1억℃ 이상의 고온을 유지해야 하고, 이런 고온과 막대한 양의 방사선을 견딜 수 있는 원자로 용기가 있어야 한다. 설령 원자로 용기를 개발하더라도 오래갈 수 없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막대한 비용의 원자로를 교체해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상용화된 경수로 원자력 발전소의 내부 온도가 320℃ 수준에서 유지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핵융합 발전의 상용화 여부는 그 온도 차이만큼이나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투자된 뒤에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 “비용 검토하면 전망 부정적”

그래서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들은 핵융합 발전 개념의 기술적·경제적 타당성에 비판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 프랑스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피에르질 드젠 박사는 “(ITER는) 태양을 상자에 가두어둔다는 계획은 멋진 발상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상자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점”이라는 유명한 비평을 남긴 바 있다. 또한 일본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마사토시 고시바 도쿄대 교수는 “핵융합 발전의 실제 비용을 검토한다면 그 전망은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플라스마 융합센터의 미클로스 포콜랩 소장은 영국의 저명한 과학잡지 와 한 인터뷰에서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되려면 아직도 50년 이상이 필요하며, 이는 경제적 타당성을 결정하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1950년대부터 반세기 동안 무려 200억달러(약 20조원)를 핵융합로 개발에 지출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다. 영국 역시 지난 23년 동안 유럽연합 공동핵융합로(Joint European Torus) 건설과 운영에 20억유로(약 2조5천억원)를 지출했으나, 지난 1997년 25MWh의 전기를 투입해서 불과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16MWh의 전기를 생산한 것이 최고의 ‘성과’였다. 이 때문에 영국에선 “이 사업으로 인해 같은 기간 정부 에너지 연구개발 예산의 절반을 별다른 성과 없이 소진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과학기술기본법’과 ‘국가연구개발사업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정부부처는 총사업비가 100억원 이상인 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할 경우 사전에 기술적·경제적 타당성 조사를 해야 한다. 특히 담당 부처는 해당 연구개발사업의 정부 지원 타당성 검토 결과, 기대효과와 연구개발 결과의 활용 방안에 대한 심의안을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또 과학기술기본법은 이같은 심의를 위해 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과학기술위원회의 세부적인 타당성 평가 업무를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무려 1조5천억원가량의 ITER 참여사업에 대해 심층적인 사전 타당성 조사와 심의가 있었는지 여부조차 알려진 게 없다.

과학기술부는 최근 과학기술기본법 시행령에 500억원 이상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사전 타당성 조사를 의무화한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이를 중요한 정책 개선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기존 제도에서 100억원 이상 연구개발 예산에 대해 사전 타당성 분석과 심의를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옥상옥’에 불과하다. 또한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 4개 과학기술 단체는 최근 핵융합연구센터 소장을 위원장으로 한 윤리강령 특별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 4월20일 윤리강령까지 선포한 바 있다. ‘제 발이 저린’ 과학기술부와 핵융합연구센터의 ‘퍼포먼스’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황우석 교수 사건 뒤에도 안 변하나

우리 국민들은 지난 2005년 황우석 교수 사건을 통해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검증 시스템이 얼마나 무기력했는지를 목도했다. 더욱이 청와대 최고위 관료들이 주도해 국민 전체를 ‘사기극’의 희생자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에서 정부 스스로 뼈를 깎는 반성과 개선이 필요했다. 그러나 채 1년이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황 교수 사건보다 수백 배 더 큰 규모의 사업이, 제대로 된 검증 절차 없이 국민의 세금으로 투자되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 물론 선진국들도 참여하는 국제공동 사업이면 검증된 사업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황 교수 사건에서 국제공동 연구가 결코 연구사업의 진위를 자동적으로 검증해주지 않으며, 오히려 여론을 현혹하는 손쉬운 수단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핵융합 연구는 물리학의 발전에 기여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마치 금세기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인 것처럼 홍보하고 투자해선 안 된다. 이미 ‘돈 먹는 하마’가 돼버린 핵융합 발전 사업은 다른 기초과학 기술은 물론 미래 에너지 기술의 연구개발 예산까지 잠식할 참이다. 더 늦기 전에 핵융합 에너지 개발사업의 무모한 추진을 중단하고, 독립된 전문가들을 통해 타당성을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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