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시아 지역에서 전염병처럼 확산되며 건강상의 패닉을 유발하는 당뇨병… 줄기세포 이용해 췌도세포 만…드는 연구, 새로운 치료약과 함께 미래의 구원투수로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이제는 줄기세포라는 말만 들어도 손사래를 치는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안규리 교수. 안 교수가 바이오 이종장기 개발과 배아 줄기세포 연구자 목록에 오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해마다 4천 명씩 늘어나는 신장이식 대기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당뇨병을 앓다 합병증으로 신장이 망가진 환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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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기에 신장병 전문가로서 이식수술의 주요 원인으로 떠오르는 당뇨병 연구를 남의 일로 돌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르면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당뇨병 치료제 개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황인종 유병률, 백인종보다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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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당뇨병은 거의 전염병 수준의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혈당 조절이 되지 않는 당뇨병 환자가 1억5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금의 증가 추세가 이어진다면 2030년 무렵엔 3억3천만 명이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문제는 아시아의 당뇨병 환자 증가 추세가 지구적 수준을 압도한다는 데 있다. 이런 사정은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03년 당뇨병 환자가 400만 명을 넘어선 뒤 해마다 10%가량 증가하고 있다. 이 환자들의 90%는 인체 단말조직에 인슐린에 대한 저항성이 생겨 인슐린이 분비되더라도 포도당 조절이 잘되지 않는 ‘제2형 당뇨병’을 앓는다.
이처럼 아시아 지역에서 당뇨병 환자가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당뇨병은 선진국형 질환으로 지목됐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당뇨병 유발 가능성이 백인종보다 아시아 황인종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코카서스 인종의 당뇨병 유병율이 5%인 데 견줘 한국·일본·중국은 8%, 홍콩은 12%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한편 전원 거주자는 2%, 도시 거주자는 8%로 나타나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의대 조슬린당뇨병센터의 조지 킹 박사는 “아시아인이 유전적으로 당뇨병 유병율이 높은 편인데 이전에는 환경적 요인에 덜 노출됐다. 그런데 서구화된 식단과 개발의 여파로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아시아의 당뇨병 공습은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WHO 서태평양 지역 질병담당관 가우덴 갈리아 박사는 “아시아에서 당뇨병은 에이즈보다 위력을 발휘하면서 건강상의 패닉 상태를 유발하고 있다”면서 “몸무게가 50kg을 밑도는 비비만인들과 10대 초반의 어린이들도 심심찮게 성인 당뇨병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당뇨병이 식이요법이나 운동, 약물요법 등으로 완치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더구나 당뇨병을 진단받은 뒤 15년이 지나기 전에 대부분의 환자가 고혈당과 인슐린 저항성으로 인한 시력장애, 신장·심혈관계 질환 등 합병증을 앓게 된다.
이렇게 당뇨병은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21세기형 질환이다. 해마다 11조원에 이르는 당뇨병 치료제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완치에는 이르지 못한다. 현재 개발된 약물로는 손상된 췌장을 복구해 베타세포에서 인슐린을 분비하고 작용을 원활하게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을지대학병원 내분비내과 박강서 교수는 “지금으로선 혈당 조절을 통해 합병증을 예방하는 게 최선의 치료법”이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당뇨병을 진단받으면 한번에 완치하는 치료약을 기대하기보다는 식습관부터 바꾸는 게 좋다. 한국인은 서구인보다 인슐린 분비 기능이 떨어지는 만큼 영양분이 과잉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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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당뇨병 환자들이 완치에 대한 꿈을 버리긴 이르다. 당뇨병 환자의 췌장을 복구할 다양한 전략들이 임상에 적용되거나 제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체내에 150만 개가량 있는 베타세포가 갈수록 소멸해 체내 인슐린 조절 기능이 마비된 중증의 ‘제1형 당뇨병’ 환자에 대한 췌도세포 이식 수술이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한 사람에게 적정한 췌도를 이식하려면 평균 4개의 췌장이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인슐린을 사용해 혈당을 조절해야 한다는 데 있다. 아무리 뇌사자의 장기 기증이 활발히 이뤄져도 급증하는 당뇨병 환자의 췌도세포 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췌도세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여기에서 안규리 교수가 품었던 희망사항이 나온다. 만능 분화성을 지닌 줄기세포를 이용해 췌도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미 2년 전 스페인 재생의학센터 버나트 소리아 박사팀은 배아 줄기세포를 분화시켜 췌도세포를 얻는 데 성공해 관심을 모았다. 당시 연구팀은 추출한 췌도세포를 당뇨병 쥐에 이식해 혈당을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금지하는 상황에서 임상 적용에 이르지는 못했다. 설령 성공한다 해도 환자들이 치료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성과만 내면 투자자 몰린다
최근 미국 미네소타대학 줄기세포연구소 연구팀이 태아 조직에서 추출한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해 췌도세포를 분화시키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당뇨병 전문가로 연구에 참여한 메리 포퍼 박사는 “인체의 다양한 조직에서 췌도세포에 관련된 유전자가 있다는 데 착안해 치료법을 찾고 있다”면서 “장 내배엽(Gut endoderm)에서 추출한 유전물질을 배아 줄기세포에 넣어 췌도세포의 분화를 유도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배아 줄기세포 유래의 췌도세포를 당뇨병 쥐의 췌장에 이식했을 때 인슐린 분비가 원활하게 이뤄졌다. 앞으로 장 내배엽의 유전물질을 성체 줄기세포에 주입하는 연구도 이뤄질 예정이다.
문제는 환자 유래의 배아 줄기세포가 아닌 탓에 면역 거부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해 포퍼 박사는 낙관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해마다 1천억원을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지원받아 기초 연구를 튼실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면역 거부반응 억제 약물을 개발하고, 인체에서 외부 물질을 받아들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속임수’를 쓰는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배아 줄기세포에 대한 미 연방정부의 연구비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포퍼 박사는 “일정한 성과만 내면 외부 자금을 ‘골라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췌도세포 확립과 더불어 치료약 개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국내 제약업체인 종근당은 새로운 작용기전의 당뇨병 치료물질 ‘CKD-501’을 개발해 스코틀랜드 스코티시 바이오메디컬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덴마크의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인크레틴 호르몬의 일종인 ‘GLP-1’도 췌관세포의 분화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성분에 기반한 차세대 당뇨병 치료제는 머크의 ‘자누비아’, 노바티스의 ‘갈버스’, 화이자의 ‘엑쥬베라’ 등과 함께 ‘블록버스터 약품’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 과정에서 줄기세포 당뇨병 치료제의 거센 도전도 기대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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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맞춤형 약물이 통한다” |
아시아에 당뇨병 공습 경보가 내리면서 세계적인 당뇨병 연구자들이 잇따라 국내에 들어오고 있다. ‘제3회 한국-스코틀랜드 바이오 국제심포지엄’을 위해 방한한 스코틀랜드 던디대학 당뇨의학과 앤드루 모리스 교수는 “한국도 서구화된 식습관과 생활방식의 변화에 따라 당뇨가 급증하는 추세”라면서 “국제 연구교류를 통해 혁신적인 치료제 개발을 앞당길 것”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당뇨병 치료제를 환자의 유전적·환경적 특질에 따라 맞춤형 약물로 개발했을 때 시장에서 통할 것으로 예측했다.
대부분의 당뇨병 치료제는 2형 당뇨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개 20살 미만에 선천적으로 발병해 인슐린이 전혀 나오지 않는 1형 당뇨병은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하지만 성인 당뇨병으로 불리는 2형 당뇨병은 인슐린을 만드는 베타세포의 기능을 활성화하면 치명적인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치료제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개인에 따른 특이성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한 약물인 탓이다. 만일 후보물질의 성분이 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려면 개발비를 엄청나게 쏟아부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해도 맞춤형 신약 개발을 포기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 모리스 교수가 제안하는 게 ‘트랜스래셔널 메디신’(Translational Medicine)이라는 맞춤형 신약 개발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을 한마디로 말하면 신약 개발에 필요한 임상 단계의 규모와 횟수를 최소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일 당뇨병 치료물질을 찾았다면 유전자 표현형에 따른 작용을 살피는 식이다. 문제는 환자의 유전자 표현형을 최대한 확보하고, 환자들의 이동이 적어 추적 연구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모리스 교수가 의장을 맡고 있는 스코틀랜드 당뇨그룹에서는 환자 18만2천여 명의 유전자 표현형을 확보하고 있다. 전체 스코틀랜드 당뇨병 환자의 85%를 포괄하는 데이터베이스인 셈이다. 이를 기반으로 신물질의 효과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게 모리스 교수의 판단이다. 이런 자신감은 당뇨병 기초 연구를 통해 혈액 샘플이나 MRI·fMRI 등으로 약물의 작용을 파악하는 기술력에서 나온다. 머지않아 국내 바이오업체의 치료물질과 스코틀랜드 신약 개발 플랫폼이 만나 당뇨병 치료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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