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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포인트 토론실종 사건!

등록 2005-11-10 00:00 수정 2020-05-02 04:24

괘도와 OHP를 밀어내고 발표장 독차지하는 컴퓨터 프레젠테이션
표현기술의 진화인가, 과도한 조작으로 ‘고민’을 막는 허상인가

▣ 김동광/ 과학저술가 kwahak@korea.ac.kr

최근 강의실에서든 발표회장에서든 컴퓨터와 ‘파워포인트’(PPT)로 발표를 하고 사람들은 영화를 보듯 편안한 자세로 시청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를 표현하고 발표하는 기술(presentation technology)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괘도라는 방식이 프레젠테이션에 애용됐다. 처음에 군이나 관에서 브리핑을 할 때 사용하던 것이 기업, 학교 등의 민간 영역으로 확산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1960년대와 70년대까지도 군대 조직이나 문화가 기업을 비롯한 사회 일반을 주도하던 시절이었기에 군 복무 때 괘도를 그리던 병사(흔히 차트병이라고도 했다)는 제대 뒤에 직장을 구할 때 꽤 우대를 받기도 했다. 말하자면 상당한 숙련이 필요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표현기술에 해당한다.

컴퓨터·프로그램·빔 프로젝터의 3박자

파워포인트로 대표되는 최근의 표현기술은 상당한 기술적 요소들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컴퓨터, 프로그램, 그리고 빔 프로젝터이다. 특히 빔 프로젝터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가품으로 일반인이 쉽게 접하기 힘든 장치였지만 최근에는 웬만한 시설이면 천장에 하나씩 매달려 있을 만큼 널리 보급됐다. 노트북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는 100만원 이하의 고성능 노트북들이 줄줄이 출시되고 있어서 이동이 잦은 직장인이나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들에게는 거의 필수품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프로그램도 컴맹 수준을 간신히 벗어날 정도면 한두 시간의 훈련을 거쳐 어설프게나마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간편한 제작 툴을 제공한다.

이처럼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처음에는 특정 업체(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그램 명칭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일반명사화된 파워포인트로 대표되는 ‘컴퓨터-기반 시각 중심 표현기술’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요즈음 웬만한 발표장에서 파워보인트는 기본이며, 심지어 초등학교에서까지 시각적 효과를 높이는 각종 장식효과, 음성, 그리고 동영상 등을 포함해 발표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경향은 비주얼화, 즉 영상을 통한 시각적 전달 방식의 강화이다. 이것은 괘도에서 오버헤드프로젝터(OHP), 그리고 최근의 파워포인트에 이르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한때 사진이나 영상 자료를 보여줘야 하는 발표에서 첨단 기자재로 각광받았던 오버헤드프로젝터는 괘도나 사진을 필름화해서 광학적으로 투사하는 방식이었고, 특히 발표에 사진자료나 그림이 많이 포함되는 이공계 분야의 학술발표에서 애용됐다. 그러나 컴퓨터 기반 발표양식이 등장하면서 급속도로 쇠퇴했다. 그러나 괘도나 오버헤드프로젝터가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표현과 발표를 보완하는 보조물이었다면, 최근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표현 형식은 오히려 비주얼한 부분이 주를 이루고 점차 텍스트가 보조 역할을 하거나 아예 텍스트 자료 없이 파워포인트로 만든 자료만으로 발표를 하거나, 또는 파워포인트 화면을 그대로 복사해서 자료집으로 나눠주는 양상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표현과 발표 양식의 변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새로운 발표 기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우선 컴퓨터를 비롯한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높아지는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요즈음 학교에서 간단한 발표수업을 할 때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와 빔 프로젝트에 의존한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관행이 일반화되면서 노래란 아무 데서나 부르는 것이 아니라 기계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부르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가사 외우는 사람이 드물어지듯이, 간혹 노트북과 빔 프로젝트의 연결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발표장이나 강의실은 그대로 마비되고 만다.

지나친 단순화와 명료화가 주는 위험

파워포인트라는 일정한 제작 툴도 표현 양식에 여러 측면에서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파워포인트는 여러 장의 분절된 시각적 화면들을 선형적으로 열거하는 방식이다. 한 화면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은 상당히 제한적이며, 특히 많은 분량의 텍스트는 들어가기 힘들다. 따라서 발표자는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여러 장의 분절된 내용으로 요약하고 최대한 압축해야 한다. 이것은 군대의 보고체계나 관공서의 개조식 보고서의 형태와 유사한 면이 있다. 다시 말해서 상황을 가능한 한 명료하고 분명하게 만들고, 그에 대한 대응 역시 명확하게 만들어야(또는 그런 것처럼 가정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를 둘러싼 상황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대응 방식 역시 간단명료하게 나올 수 없다는 데 있다. 날로 복잡해지고, 고려해야 할 요소들과 그 요소들 사이의 상호 연관성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요약, 압축, 선형적 전개를 속성으로 하는 요즘 표현 형식은 깊이 있는 이해를 가로막을 수도 있다. 앞으로 본격적인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파워포인트를 중심으로 한 표현 양식은 숙의나 성찰에 기반한 활발한 토론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토론을 기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야말로 어떤 자리에서든 토론은 없고 발표만 있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시각화가 주된 표현 양식이 되면서 과거에 비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보다는 그 형식을 만드는 데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너도나도 파워포인트를 사용해서 발표하다 보니 조금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난도의 시각 효과를 채택하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란한 도표와 그래프, 심지어는 동영상까지 동원된다. 물론 날로 세련돼가는 표현 형식은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특히 인터넷 세대에게는 익숙한 방식일 수도 있다.

이처럼 시각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자료에 대해 과도한 조작과 해석이 이루어지면서 청중들이 문제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청중들에게 가공되지 않은 자료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게 주어지기에 다른 해석의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훌륭한 도표와 그래픽으로 표현된 내용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효과를 갖기에 좀처럼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가령 조목조목 따져보면 비현실적인 내용이라도 극단적인 영상으로 뒷받침될 때에는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시각화는 문제를 쉽게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지만, 그 효과가 높기 때문에 과도한 이용은 자칫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특정 업체 의존, 밀려나는 텍스트들

컴퓨터 기반(computer-aid) 발표 기술은 짧은 시간 동안 놀랄 만큼 확산돼서 과거의 텍스트 중심 발표를 상당 정도 대체하고 있다. 이 양식은 시각화의 일반적 추세 속에서 날로 힘을 얻으며 거의 획일화의 양상으로까지 치달리고 있다. 더구나 이 기술은 파워포인트라는 특정 업체의 프로그램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한편으로 표현기술의 진화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 방향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특히 시각화의 영향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기생충, 우습거나 무섭거나

[숨은 1mm의 과학]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대부분의 농어촌 지역에서 분변이 수세식으로 처리되기에 채소밭에서 인분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국산 김치에서 발견된 기생충알은 개 같은 가축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들 기생충알은 모두 성충으로 변할 가능성이 없는 ‘미성숙란’으로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만일 기생충알이 자충포장란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들이 인체로 들어가면 폐를 지나 소화기에 정착해 체내 영양분을 빨아들이면 각종 질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나라는 기생충 왕국이라는 불명예를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인분을 대신하는 화학비료가 보편화되고 보건위생 상태가 개선되면서 각종 기생충 감염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다. 예컨대 지난해 우리나라의 회충 감염률은 0.05%에 지나지 않았다. 설령 기생충이 면역력이 약한 사람의 몸에 둥지를 틀고 있다 해도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복통이나 설사·빈혈 등의 기미가 보일 때 구충제를 복용하면 이내 박멸된다.
이렇게 우리가 가볍게 여기는 기생충이 아프리카의 극빈국에서는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다.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가 에이즈와 말라리아·결핵 등을 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가운데 기생충 질환이 방치되는 탓이다. 해마다 7억5천만여 명이 주혈흡충증과 사상충증, 회충병 등에 걸려 50만여 명이 생명을 잃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생충에 노출된 뒤 방치하면 면역체계가 약해져 말라리아에 걸릴 위험이 10배가량 높아진다.
요즘 사하라사막 이남지역에서 위세를 떨치는 대표적인 기생충병은 주혈흡충증이다. 주로 오염된 물에서 번식하는 기생충이 수영이나 세수를 하는 과정에서 피부를 통해 인체에 들어와 방광과 장 부근에 기생하며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질환이다. 이들은 배설물을 통해 인체에서 배출된 뒤 수생 달팽이를 감염시키고 대를 이어 인간 숙주를 찾게 된다. 이들은 뇌나 척수에까지 이르러 심각한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기생충에 감염됐다 하더라도 복합구충제를 적절히 복용하면 완치에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극빈국에서는 기생충으로 인해 발생하는 장애가 10%나 된다는 보고가 있다. 초기에 기생충을 진압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기생충알 김치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지금, 아프리카에서는 기생충으로 인한 만성적 질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만일 구충제를 구입했다면 지구촌의 그늘에 보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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