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나도기술도 반환경적이면 무용지물…저렴하고 독성 없는 입자 개발 성공한 현택환 교수팀</font>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현대의학의 성취로 꼽히는 ‘자기공명영상’(MRI)은 X선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의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로 확인할 수 없는 인체 장기의 상태를 살피는 데 쓰인다. 인체의 70%를 차지하는 물에 든 수소원자핵(양성자)이 일으키는 자기공명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환자가 MRI 장치에 들어가면 고주파의 흡수·방출에 따라 인체 내부를 보여주는 영상을 얻는 식이다. 이때 온갖 기기에 놀라운 능력을 부여하는 자성 나노입자 조영제를 이용하면 림프 영역까지 세밀하게 살필 수 있다. MRI 진단의 정확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말이다. 문제는 기존 자성 나노입자의 반응물이 복잡해 쉽게 얻을 수 없고, 인체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크기분리과정 없애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나노 연구자는 없을 것이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현택환 교수(응용화학부)도 나노입자를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려고 과학기술부 창의적연구진흥사업 산화물 나노결정 연구단을 꾸렸다. “나노기술이 DDT 살충제나 원자력 발전, 유전자재조합농산물(GMO)처럼 사회적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실험실 안팎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꿈의 신기술로 여기는 ‘나노’(nano)가 ‘노노’(nono)로 전락할 수 있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에 귀를 막는 것은 연구자 양심의 문제이기도 했다. 나노입자가 신종 환경오염원으로 자리잡는다면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노 결정의 크기에 따른 성질을 연구하려면 균일한 크기의 나노입자를 개발해야 한다. 반도체 나노결정을 만들 때도 크기가 균일해야 빛의 색깔이 일정하게 된다. 균일한 나노결정을 저렴하게 만들어야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지난 2001년 현택환 교수팀은 Fe(CO)5를 출발물질로 삼아 철 원자들을 분리한 다음 블록을 쌓듯 결합시켜 균일한 나노입자를 만들었다. 일정한 크기의 철 원자들만 결합하도록 비누막처럼 철 입자 주위를 둘러싸는 계면활성체를 사용했다. 하지만 일산화탄소 독성의 10배나 되는 위험을 털어내지 못했고 가격의 부담을 극복하는 데도 만족스런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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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균일한 나노입자를 제조하는 방법은 여러 입자 크기가 섞여 있는 혼합물을 만든 다음, 복잡한 크기 분리과정을 거쳐 원하는 입자크기를 가진 균일한 나노입자를 얻는 과정을 거친다. 미세한 나노입자를 걸러내야 하는 만큼 원하는 크기를 골라내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나노입자 합성은 값비싸고 유독한 화합물을 사용하는 탓에 균일한 나노입자를 겨우 1g가량 얻는 데 그쳤다. 이에 비해 현 교수팀은 균일한 나노입자를 크기 분리과정을 거치지 않고 생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균일한 크기의 나노입자에 관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 셈이다.
국내의 연구자들이 나노기술의 혹을 떼는 데 동참하면서 나노입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서울대 황농문 교수(재료공학부), 성균관대 박제근 교수(물리학), 포항공대 박재훈 교수(물리학) 등이 산화물 나노결정 연구단에 공동연구자로 나선 것이다. 이들은 원료물질을 찾고 물리적 특성을 터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불균일 나노입자에 비해 1천배가량 싼 비용으로 균일한 나노입자를 대량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나노입자를 이용한 테라비트(1조 비트)급 차세대 저장매체, 차세대 디스플레이 형광체, MRI 조영제 등 미래기술 상용화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
무독성 입증할 동물실험 준비 단계
그렇다면 현택환 교수팀은 나노입자의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했을까. 무엇보다 나노입자 원료물질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한 게 녹슨 물에 가까운 금속염(염화철)이었다. 당연히 유기금속화합물에서 나타나는 독성은 염려하지 않아도 됐다. 일단 금속염과 계면활성제를 반응시켜 금속-계면활성제착화합물을 만들었다. 이것을 낮은 온도에서 가열해 섭씨 300도가량에서 열분해를 통해 12나노미터(nm, 1nm=10억분의 1m)의 균일한 자성체 산화철 나노입자 40g을 얻을 수 있었다. 여기에 나노입자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하는 기술까지 덤으로 확보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금속염은 철을 포함한 화합물 가운데 가장 저렴해서 경제성을 둘러싼 논란까지 한꺼번에 잠재웠다. 실제로 금속염은 1kg당 7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보습제로 쓰는 계면활성제 가격 1kg당 2만원까지 합해도 나노입자 1g의 가격이 250원에 지나지 않았다. MRI 조영제용 자성체 나노입자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런 까닭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나노과학자 마크 웰랜드 박사는 현 교수팀의 균일한 나노입자 대량생산 기술에 대해 “나노입자의 상업적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데 기여했고 환경친화적 나노기술에 다가설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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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화물 나노결정 연구단 실험실에서는 다양한 금속염을 사용해 여러 종류의 균일한 나노입자를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합성에 성공한 나노입자들은 자성체인 철, 마그네타이트(자철광), 망간페라이트, 니켈페라이트, 코발트페라이트를 비롯해 반도체 CMP(화학 기계적 연마) 공정에 쓰이는 세리아, 자외선 반도체 레이저로 주목받는 산화아연 등이 있다. 다양한 나노입자 응용 가능성이 열렸기에 안전성의 문제는 더욱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환경친화적인 나노입자 합성과정을 이뤘지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단정할 수 없다. 안전성의 문제를 확실하게 밝히는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
이런 까닭에 현택환 교수는 지난 4월18일 다국적 화학회사 듀폰이 시상한 제4회 ‘듀폰 과학기술상’ 수상자로서 기쁨을 만끽할 겨를이 없다. 연구팀이 개발한 나노입자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사실을 밝혀내야 MRI 조영제 등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나노입자가 직접 인체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반도체 연마재나 태양전지, 바이오센서 등으로 널리 쓰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불확실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 교수는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팀과 함께 나노입자의 안전성을 밝히는 동물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나노입자의 사소한 독성이 체내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규명하려는 것이다.
충분한 독성 검증 없이 사용되는 나노
현재 주기율표의 원소 가운데 50개 이상이 나노입자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 판을 분해한 4천억개 이상의 은나노 입자가 세탁조 안에 뿌려지고, 화장품이나 의약품 등 다양한 산업원료로 쓰이는 나노분말이 대량으로 생산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노 독성’에 대해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일상에 적용되는 게 다반사다. 이런 상황에서 현택환 교수팀이 나노입자의 안전성 확보에 주력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나노입자는 줄기세포 분화를 규명하는 데도 기여한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아무리 놀라운 성능을 지닌 나노입자일지라도 환경에 이롭고 인체에 안전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font color="#C12D84">균일한 나노입자 제조 과정</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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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노입자 반응기: 금속염과 계면활성제가 반응해 착화합물을 생성한다. 이것을 서서히 가열한 다음 300도 안팎의 고온에서 열분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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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용매에 분산된 나노입자: 열분해를 거친 균일한 크기의 나노입자가 용매에 섞여 있다. 유리병에 자석을 대면 금속상 나노입자들이 한 곳에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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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심분리기 활용: 고속 회전하면서 물질을 분리하는 장치로 자성체 산화철 나노입자를 분리한다. 금속염에 따라 다양한 입자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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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친환경적 나노입자: 미세한 나노입자가 분말 형태로 뭉쳐져 있다. 구형인 나노입자는 물론 막대모양의 나노로드, 실모양의 나노와이어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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