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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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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사회의 즐거운 만남

등록 2005-03-24 00:00 수정 2020-05-03 04:24

미국과학진흥협회 연례회의가 보여준 과학교육·시민 참여 시스템…전문성의 벽을 깨고 융합으로 나아가라

▣ 워싱턴DC= 조숙경/ 한국과학문화재단 전문위원·과학사 박사

‘과학을 진흥시키자, 사회에 봉사하자’(Advancing Science, Serving Society). 이는 전통을 자랑하며 미국 전역에서 활동하는 과학자·과학교사·과학 커뮤니케이터 등 과학 관련 기관 종사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공유의 장을 마련하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협회의 슬로건이다. 미국과학진흥협회는 세계적인 과학잡지 <사이언스>를 창간해 기초과학을 선도하고, 미국의 과학연구와 교육, 진흥에 앞장서왔다. 이 협회가 지난 2월 말 워싱턴DC에서 ‘연계: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곳’(The Nexus: Where Science Meets Society)을 주제로 마련한 제171차 연례회의에서는 의미 있는 과학계의 화두가 잇따라 제시됐다.

과학교사를 위한 인터넷 교육

무엇보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접촉 지점을 넓히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특히 인터넷을 활용하는 과학교육 시스템인 ‘사이언스 넷 링크’(Science NetLinks)와 최첨단에서 진행되는 과학연구에 대한 일반인의 참여와 이해를 도모하는 ‘PUS’(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당신은 접속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존재하는 것이다”에 걸맞게 사이언스 넷 링크는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청소년 대상 과학교육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는 사이버 세상에 떠도는 과학기술 관련 정보를 청소년들이 쉽고 효과적으로 찾아서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과학교육자와 과학교사·과학자가 공동 기획·제작한 양질의 과학교육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 이 사업은 전국과학교사협의회, 전국수학교사협의회, 국립인문학지원기금회 등 기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마르코 폴로 파트너십’(Marco Polo Partnership)이 주도했다.

사이언스 넷 링크는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과학교육 포털사이트로 대상별·난이도별·수업시간 활용도별로 다양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 과학교사와 현장의 실무자가 참여해 워크숍 형식으로 3일 동안 연 회의에서는 온라인 웹을 활용하는 기초 수준의 지식에서 최첨단 과학기술자들의 연구내용에 접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교육이 이뤄졌다. 이 사업은 200만 과학 사랑 회원을 구축해 활발히 운영되는 한국과학문화재단의 ‘사이언스 올’(scienceall.com) 프로그램과 비교해볼 만한 대목이 많았다. 무엇보다 사이언스 넷 링크는 청소년이 아닌 과학교사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교사 1명이 평생 2만명의 학생들을 만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학생 개인에 대한 접근보다는 교사를 생각하는 게 유용할 듯하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2년 전부터 제기된 PUR(Public Understanding of Research)라는 새로운 과학문화의 패러다임이었다. ‘연구 중인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뜻하는 PUR는 1980년대 광우병 파동과 함께 일기 시작한 영국의 PUS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중시하는 프랑스 중심의 PCST(Public Communication of Science and Technology), 그리고 일반인의 과학기술 활동에의 참여와 인식을 강조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중심의 PPT(Public Participation of Science), PAW(Public Awareness of Science)를 두루 아우르는 개념이다. 과학기술의 생산자인 과학기술자와 소비자이자 사용자인 일반 대중이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쌍방향 대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PUR는 과학연구의 방향에 의견을 개진해 더욱 풍요로운 과학기술과 인간적인 과학기술을 지향한다. 이를 통해 과학연구의 윤리적·사회적·정치적·법적 시사점에 관한 논쟁에서 대중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에 관한 다양한 전략이 나올 수 있다.

요즘 과학기술 연구 과정에 시민의 참여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지난 3년 동안 미국과 일본의 PUR 공동사업을 추진한 미국과학재단의 하이만 필드 박사는 “국가 과학연구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되는 것이며 국민은 미래의 수혜자 아니면 피해자일 것이기 때문에 진행 중인 과학연구에 대한 대중의 참여는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했다. 과학 박물관과 각급 학교, 매스미디어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과학자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일본과 미국의 경우는 이제 막 국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에 과학문화홍보비를 제정한 한국적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다수의 국민을 과학연구에 끌어들이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PUR, 과학자와 대중의 쌍방향 교류

그동안 국내의 과학기술계 풍토는 연구를 성과 위주로 진척시킨 뒤, 결과를 산업에 직접 응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생산되는 과학연구를 콘텐츠로 하는 시민 과학교육이나 과학문화, 청소년 과학교육, 호기심 유발 등에는 거의 무관심했다. 물론 과학 선진국의 경우 우리의 현실과 사뭇 다르다.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 국립보건원(NIH) 등 거대 과학연구소를 비롯해 유럽의 입자물리연구소(CERN), 일본의 지하 관측설비 ‘슈퍼 가미오칸데’(Super-Kamiokande) 고에너지가속연구소(KEK) 등은 과학교육 전문가들을 채용해 과학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청소년과 일반인을 위한 다양한 과학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에 연구 내용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도 높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과학과 사회의 즐거운 만남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새롭게 책정된 과학문화홍보비는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PUR를 시행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기회가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생색내기’나 ‘부풀리기’ 같은 오래된 관행이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이제 과학기술계는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를 리드하는 이념과 양식,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 발표 100주년을 기념한 기조 강연에서 세계적인 입자물리학자인 메릴랜드대학교의 제임스 게이츠 교수는 “아인슈타인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남긴 소중한 유산은 창조적인 인류, 인류 개개인의 창조성”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적합한 PUR를 통해 이뤄나가야 한다.

새로운 천년을 맞으면서 세계적인 석학들은 한결같이 혁신(innovation)과 지속 가능성(sustainablity), 융합(fusion)이라는 단어를 제시하면서 국가 정책에도 반영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인이 지구라는 푸른 별이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이 되도록 하며, 우주라는 신세계가 세계인을 위한 혁신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융합은 혁신과 지속 가능성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이념간 융합, 동서양 융합, 사회계층간 융합,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의 융합, 과학 분야들간의 융합은 이제 생존을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패러다임이다. 이번 미국과학진흥협회의 연례회의는 융합의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년 전부터 융합이라는 용어가 자주 회자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과학 분야들간은 물론, 분야 내에서도 전문주의가 너무나도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세상은 갈수록 전체 사회의 창조적 역량 강화를 위해 과학 분야간의 융합, 더 나아가 과학과 타 분야간의 융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융합’은 아직도 하나의 ‘수사’에 지나지 않은 현실이다. 적어도 1년에 한번만이라도 융합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서 사이언스 넷 링크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결합되고, PUR를 위한 즐거운 전략이 모색된다면 융합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숨은 1m의 과학/ 생명체의 신비]

첨단 영상에 드러난 아름다움

우리의 몸인 인체는 ‘지구가 만든 작품 가운데 대걸작’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비단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아니어도 인체의 기능은 경이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체의 형태 속으로 파고들면 인간의 손으로 빚어낸 어떤 예술작품에서도 느끼지 못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광학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본 자연의 무늬 역시 형형색색의 경이로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전자현미경과 컴퓨터 단층촬영 등 첨단 의료 영상과 기구를 이용한 광학 현미경에 드러난 인체와 자연의 신비를 탐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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