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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마, 미래를 만드는 방전

등록 2005-03-17 00:00 수정 2020-05-03 04:24

텔레비전 신기술부터 유해가스 제거 등 가능성 나날이 커져…인류를 에너지 위기로부터 구할 수도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최근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크기인 82인치 초박막 액정화면(TFT-LCD)의 특급 공수 작전을 벌였다. 지난 3월10일 독일 하노버에서 막이 오른 ‘세빗(CeBIT) 2005’에 전시하려는 것이었다. 이 LCD 패널을 운반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모두 8천만원. 지난 2001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국제방송장비 전시회(NAB)에 출품하려던 63인치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Plasma Display Panel)을 호텔에서 도난당했던 삼성전자로서는 보안에 각별히 신경써야만 했다. 이 제품은 이전까지 세계 최대였던 일본 샤프의 65인치 LCD보다 17인치나 크지만 삼성SDI가 지난해 12월에 개발한 102인치 PDP보다는 20인치나 작았다. 앞으로 초대형 텔레비전 시장에서 LCD와 PDP의 각축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고온에서 전자와 원자핵 분리된 상태

이처럼 차세대 텔레비전의 주역을 노리는 신기술의 핵심에 ‘플라스마’(Plasma)가 있다.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을 따르는 LCD는 유리 기판 위에 원하는 형태의 미세한 회로를 구성해 각각의 작은 화소를 작동시킬 때 플라스마를 이용하며, 두장의 유리를 포갠 틈새에 작은 방을 만들어 네온과 아르곤 등을 채우는 PDP는 전극에 전압을 가해 기체를 플라스마 상태로 만든다. 플라스마가 반도체 소자의 막을 입히고 깎는 ‘드라이 에칭’(DRY etching) 공정과 자외선들이 형광체를 때려 원하는 색깔의 빛을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이다. 첨단산업에서 플라스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올해만 해도 응용 관련 산업 시장이 2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야말로 플라스마 전성시대가 열린 셈이다.

도대체 플라스마가 무엇이기에 21세기 산업기술의 꽃이라 불리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물질은 원자의 운동에너지가 증가함에 따라 고체·액체·기체 등 세 가지 상태를 이룬다. 그런데 기체의 온도가 섭씨 2천도쯤으로 올라가면 가스 분자가 쪼개져 원자 상태가 되고 약 3천도에서는 전자가 원자들로부터 떨어져나온다. 이렇게 전기적인 방전으로 인해 생기는 전하를 띤 양이온과 전자들의 집단을 플라스마라고 한다. 한국과학기술원 최원호 교수(물리학)는 “고온에서 전자와 원자핵이 분리된 혼돈의 상태인 플라스마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기는 힘들지만 미래 생활에 결정적 구실을 하게 된 것”이라며 “에너지 위기도 플라스마를 이용해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흔히 ‘제4의 물질 상태’라 불리는 플라스마는 우주 공간에 빼곡하다. 우주의 99%가 플라스마 상태로 이뤄졌다. 하지만 우주의 플라스마는 대부분 지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온도나 밀도를 측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빛의 파장이나 세기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플라스마 상태를 짐작할 뿐이었다. 예컨대 X선을 내는 플라스마는 절대온도 100만도(100만K) 안팎, 자외선을 내는 플라스마는 수만K 정도로 추정된다. 최근 미국 일리노이대학 데이비드 플래니건 교수 연구팀이 우주 공간의 플라스마 실체에 다가서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에 따르면 초음파(20~40kHz)를 쏘아 황산 액체에서 제논이나 아르곤 기체 방울을 만들어 터뜨릴 때 거품의 온도가 태양 표면 온도보다 4배가량 높은 절대온도 2만도에 이른다고 한다.

아직까지 우주에서 100만K 이상의 고온 플라스마가 만들어지는 원인은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천문학자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것은 표면 온도가 수만K에 이르는 태양보다 뜨거운 불이 항성풍을 내뿜거나 초신성 폭발에 의해 플라스마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 민경욱 교수(물리학)는 “항성풍이나 초신성 폭발로 만들어지는 분출물 자체가 100만K의 고온 상태는 아니다”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우주에서는 충격파에 의해 에너지 교환이 일어난다. 바람과 폭발에 의한 분출물들이 1천km/s의 속도로 이동할 때 충격파를 형성한다. 이 충격파에 의해 우주 공간의 성간 물질이 가열되면서 분출물의 온도가 급상승하게 된다.”

전력소비량 너무 많은 문제점

지구 주변에도 플라스마가 있어서 우리가 직접 관측할 수도 있다. 지구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과 태양풍, 지구를 둘러싼 전리층, 극지방의 하늘을 물들인 오로라, 한여름 적색운에서 나타나는 번개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지구 대기에 다양한 영향을 끼치며 생명체의 존재 이유로 작용한다. 예컨대 태양의 X선과 자외선은 지구의 대기를 이온화해 지상 100km 부근에서 최대의 밀도를 갖는 이온층을 만든다. 이 이온층은 밤에 전자와 재결합해 일부 사라지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초음속의 플라스마를 지닌 태양풍은 지구에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 만일 지구에 자기장이 없었다면 태양풍의 플라스마가 지상에 가까이 다가와 생명체의 흔적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주의 고온·고압 상태에서 형성돼 거대한 폭발력을 지닌 플라스마. 이것이 지구에서는 첨단으로 통하는 관문 구실을 하고 있다. 이미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에서도 흔히 방전현상으로 나타나는 인공적인 플라스마를 찾을 수 있다. 예컨대 형광등이나 네온사인은 방전에 의한 플라스마 상태에서 빛을 내는 것이다. 고압전류를 흘릴 때 플라스마 상태에서 나오는 오존은 악취 성분을 산화분해하는 능력이 뛰어나 탈취제나 공기청정기 등에 응용된다. 만일 자동차에 플라스마트론 같은 장치를 달거나 소각장에 플라스마 토치를 설치하면 굴뚝에서 배출되는 유해가스를 말끔히 제거할 수 있다. 전자가 배기가스 분자에 충돌하면서 화학반응으로 오염물질을 분해하기 때문이다.

현재 플라스마는 PDP를 통해 위험한 물질이라는 선입견을 씻고 소각장에서 독가스를 없애며 환경문제 해결사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과 재료 공정에서 이용하는 플라스마는 이온화된 기체로서 안정적으로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PDP만 해도 일반 텔레비전에 견줘 전력소비량이 매우 높다. 이것을 개선하려면 기체의 종류나 혼합 비율을 바꿔서 효율적인 플라스마를 만들어야 한다. 소각장에서 쓰는 플라스마 토치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토치의 출구 온도를 섭씨 1만도 이상으로 끌어올려 완전 연소를 하는 데 막대한 양의 전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현재 1천kW급 플라스마 토치를 운용하는 데 2천만원 이상의 전기료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분야에서도 활용 가능

그럼에도 플라스마의 가능성은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플라스마를 사용하거나 응용할 수 있는 분야가 수두룩한 것이다. 심지어 플라스마에 기초한 기법을 이용해 병든 조직을 제거하거나 상처를 소독하는 등 의료분야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텅스텐 바늘에 고주파 전압을 걸어 소자를 만들면 손에 닿아도 위험하지 않은 저온의 이온화 기체가 생성되어 세포를 제거하거나 상처를 아물도록 한다. 일부 연구자들이 에너지 위기를 타개할 유일한 대안으로 여기는 수소융합반응도 따지고 보면 우주의 플라스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일 핵융합반응으로 플라스마 상태를 재현하면 지표에 있는 이중수소만으로 인류가 100만년 이상 사용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신기술의 원천인 플라스마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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