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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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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회 공장의 수상한 바다

등록 2004-12-31 00:00 수정 2020-05-03 04:23

동양제철화학 인천공장 일대에서 다량의 중금속 검출… ‘전 과정 평가’통해 환경 기초체력 길러야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러브 운하’(Love Canal) 사건은 최악의 환경 재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892년 미국의 사업가 윌리엄 러브는 나이아가라폭포에 7마일에 이르는 운하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런데 1910년 미국 경제의 불황 여파로 운하가 1마일가량 건설된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문제는 후커케미컬 화학회사가 웅덩이로 방치된 운하를 인수하면서 발생했다. 이 회사는 1942년부터 10여년 동안 유독성 화학물질을 운하에 매립한 뒤 나이아가라시 교육위원회에 기증했다. 여기에 학교와 주택을 세웠는데, 1970년대에 지하실에서 이상한 물질이 스며나오고 하수구가 검은 액체에 부식되는 것이었다.

제2의 ‘러브 운하’ 사건 될까

게다가 주민들에게 피부병과 두통·만성천식 등이 자주 발병했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임신부의 유산율이 4배나 높고 정신박약아나 선천성 기형아가 잇따라 태어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시당국은 1977년 광범위한 오염 실태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지하수가 유독성 화학물질에 심하게 오염된 사실이 밝혀졌다. 미 연방정부는 오염지대에 수억달러의 비용을 투자해 토양에서 유기 폐기물을 제거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정화되지 않아 러브 운하가 건설됐던 지역은 죽음의 오염지대로 남아 있다. 기존의 환경정화 기술로는 복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대형 환경 재난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최근 동양제철화학 인천공장(인천시 남구 학익동)의 환경오염 실태가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사단법인 바다사랑실천운동시민연합이 지난 3월에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동양제철화학의 연안 갯벌과 유수지의 표층 퇴적물에서 다량의 환경호르몬(PCBs)과 수은(Hg)·카드뮴(Cd)·크롬(Cr) 등의 중금속이 오염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결과를 검증하기 위한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이동훈 교수팀의 침전조와 침출수 수질 분석 결과에서도 허용 기준치보다 2~5배나 많은 수은이 검출되기도 했다. 더욱이 폐석회 침출수가 사원아파트 주변의 개천을 통해 유수지로 유입되고 있었다.

동양제철화학 인천공장 일대가 수은에 오염된 것은 소다회 생산에 따른 결과로 추정된다. 소다회는 유리나 화학제품, 식품, 폐수 처리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무기화학 제품이다. 그동안 동양제철화학은 소다회의 국내 독점 생산업체로서 68만t 규모의 내수시장 절반을 공급하다 지난 3월 말 생산을 중단했다. 소다회는 솔베이(Solvay) 공법으로 합성하거나 천연의 소다회 광물을 정제해 얻는다. 국내에는 소다회 광물이 없기에 전량 합성해서 생산했다. 수은은 소다회 합성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석탄과 염소(NaCl)를 전기분해로 염소(Cl)와 수산화나트륨(NaOH)으로 만들 때 사용하는 수은전지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솔베이 공법으로 소금과 석회석을 합성하면 많은 폐석회 덩어리가 나온다. 그다지 위험한 물질이 아니기에 폐기물 처리만 제대로 이뤄지면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동양제철화학 인천공장에서 나온 320t의 폐석회는 지정 폐기물로 처리해야 하는 수치인 PH 농도 12.5를 약간 밑도는 수준이었다. 위험 수치가 아니라고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니다. 대량의 폐석회가 방치되면 장기간 환경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석고 성분은 토양에서 혐기성 분해를 하면서 유해한 황화수소를 만들게 된다. 폐석회 성분이 화학 공정에서 나온 물질과 상호 작용하면서 바다의 염도를 증가시키는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오염 확인되면 엄청난 복구 비용

현재 동양제철화학 인천공장 부지는 주거·상업 용지로 개발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장 부지와 연안에 대한 광범위한 오염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 아무리 이전에 환경평가가 이뤄졌다 해도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오염물질이 밝혀진 만큼 의혹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소속으로 시료를 분석한 한 연구원은 “침출수를 채취한 지역이 많지 않고 여러 차례 채취하지 않았기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분석 결과로 봤을 때 관리 체계가 허술했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말하며 “이제라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기관에서 환경 안전성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만일 환경평가에서 오염 실태가 확인된다면 한국판 ‘러브 운하’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설령 그만큼의 피해를 유발하지 않는다 해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될 게 틀림없다. 이미 솔베이 공법으로 소다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로 인한 오염 사례도 있다. 미국 뉴욕주의 얼라이드사는 1940년대 중반부터 35년 동안 소다회 생산 과정에서 나온 수은 폐기물을 오논다가 호수에 방출했다. 여기에 호수 주변에 있는 다른 산업체도 유해 물질을 퍼부어 호수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했다. 얼라이드사는 1980년대 중반 문을 닫았지만, 호수 바닥엔 수은이 쌓여 있고 호수 가장자리는 염화칼슘 덩어리로 뒤덮여 있다.

오논다가 호수의 비극이 동양제철화학 인천공장에서 재연되고 있을까. 일단 회사쪽은 오염 실태에 대한 조사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솔베이 공법으로 소다회를 만들 때 수은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논다가 호수에서 수은이 검출된 이유도 얼라이드사에 수은전지를 이용하는 시설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동양제철화학 인천공장 김남돈 관리팀장은 “시민단체 등에서 공동 조사를 요구하면 피하지 않겠다. 서울시립대의 수질 분석은 어떤 방법으로 검사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아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폐석회도 환경보전법에 따라 토양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관리형 매립지에 매립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동양제철화학 주변 지역의 환경오염원을 단정하긴 이르다. 문제는 환경평가를 통해 토양 오염이 확인되면 엄청난 복구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현재 중금속으로 오염된 토양을 복구하려면 일일이 땅을 퍼올려 오염 물질을 분리해 재처리해야 한다. 환경복원업체에 따르면 중금속에 오염된 토지 100평을 복원하는 데 적어도 5천만원이 든다고 한다. 동양제철화학은 오염 실태가 확인되면 공장과 폐석회 적치장, 유수지 등 40여만평에 이르는 토양에 2천억원가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가격 경쟁력을 잃어 생산을 중단한 소다회가 회사를 치명적인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환경 패러다임에 맞는 정부의 대응을

동양제철화학이 한국판 ‘러브 운하’ 사건의 당사자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역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환경평가를 통해 대책을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동양제철화학이 원료 채취·생산·판매·사용·폐기 등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환경에 대한 부하를 줄이는 ‘전 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지금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는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생산에 관련된 ‘기초 체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환경 신체검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해 320t의 폐석회가 쌓이지 않도록 했어야 한다. 환경 패러다임에 걸맞은 기업과 정부의 대응이 절실하다.



미생물과 식물이 ‘환경 해독제’



[숨은 1mm의 과학]
현재 국내의 중금속 배출업체들은 독성 물질을 제거하려고 화학약품 응집제를 사용한다. 여기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에 적정한 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폐수를 방류하기도 한다. 침전물을 매립해도 영구적인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염된 대수층(지하수가 있는 다공질 삼투성 지층)을 정화하는 데 쓰이는 ‘펌프와 처리’(Pump and Treat)도 한계가 있다. 염화용 용제에 오염된 물을 퍼올려 오염 물질을 분리해도 이내 대수층의 오염 농도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생물공학 기법을 이용한 중금속 처리가 주목받고 있다. 환경기술과 바이오기술을 융합해 미생물을 대량 번식시켜 오염원의 종류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다. 유기성 폐기물을 삼켜 소화·분해하는 미생물을 찾아내 이를 대량 생산하면 된다. 미국 코넬대학의 미생물학자 진더 박사팀은 하수 오물의 침전물에서 독성 화학물질을 분해하는 박테리아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종195’로 명명된 이 박테리아는 사람이 숨을 쉬듯 염화용 용제를 빨아들여 분해한다.
지난 1989년 미국에서 유조선 ‘엑손발데즈호’가 좌초되면서 바다에 유출된 기름을 제거하는 미생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미 한국해양연구소 김상진 박사팀은 유류 분해 미생물 ‘아시네토박터’(사진 맨 위·밝게 빛나는 점)를 개발하기도 했다. 최근 경상대학교 조무제 교수팀은 콜타르를 먹고 분해하는 미생물을 찾아내고 있다. 유전공학적으로 손을 본 미생물들이 실리콘칩에 결합돼 ‘오염감시 정화용 바이오센서’ 구실을 하기도 한다.
식물을 이용한 환경 복원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미 해바라기(사진 위)의 뿌리와 뿌리의 잔털이 우라늄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산업 폐수가 있는 지역에 해바라기를 수경재배해 수천 제곱미터에 이르는 뿌리 표면적으로 중금속을 흡수하는 것이다. 빵을 부풀리는 효모의 한 유전자를 식물에 넣으면 중금속을 대량으로 흡수하기도 한다. 미생물과 식물이 생명공학의 세례를 받아 ‘환경 해독제’로 거듭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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