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끝에 들여온 황우석 교수의 무균 돼지들…장기·세포 이식의 새 장을 열 것인가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언뜻 보면 작은 멧돼지를 닮아 몸뚱이의 탄력이 느껴지는 ‘무균 미니돼지’(아래 무균 돼지) 40여 마리가 생활하는 서울대학교 특수생명자원연구동(특생동) 1층의 무균 축사. 이곳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만일 청소를 하러 들어가려면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에서 착용하는 무균 복장을 입어야 한다. 무균 돼지들의 움직임을 촬영하려 해도 두꺼운 유리창 밖에서 찍어야 한다. 아무리 일반인이 뚫어지게 바라봐도 새끼 돼지 정도로 느껴질 뿐이다. 다만 무균 축사 유리창 옆에 있는 동물용 인큐베이터를 보면 이들이 간단치 않은 것들임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머지않아 인간에게 조직과 장기를 제공하기 위한 실험을 하려고 수술대에 오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아주 특별한 구실을 감당하려는 무균 돼지들은 첨단기기의 도움을 받아 무균 상태로 지낸다. 무균 돼지에 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생명현상에 필수불가결한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와 그람양성구균(Gram+Cocci)으로 소화·면역 기능을 돕는다. 그 밖의 균의 침입을 막아내는 무균 축사는 첨단 실험실로 손색이 없다. 일단 공기청정기에는 미세먼지를 걸러내고 세균·곰팡이 등을 잡는 ‘헤파필터’가 장착돼 있다. 무균 샤워를 시키는 3중 샤워시설과 대소변을 자동으로 배출하는 장치도 기본이다. 식탐을 제거하기 힘든 돼지들이지만 아무것이나 먹지도 않는다. 이들은 특별히 제조된 사료를 섭취할 뿐이다.
무균 샤워에 공기청정기까지
서울대학교 특생동의 무균 돼지의 ‘선조’들은 태평양 건너에 있었다. 미국 시카고의대 무균 돼지 실험실의 김윤범 교수가 무균 상태의 면역반응을 연구하기 위해 1973년에 개발한 것이었다. 돼지는 다른 동물과 달리 면역체가 전혀 없는 무균 상태에서 태어나 병균에 대한 항체의 형성 과정을 살피는 데 유용하다.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교배를 통해 무균 돼지의 특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인간화 돼지’로 활용할 무균 돼지를 만들려면 김 교수가 투자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2년 전 서울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김 교수는 체세포 복제 기술의 권위자인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에게 무균 돼지의 무상 기증을 약속했다.
전세계적으로 25만명 이상이 인간 장기이식으로 생존하고 있다. 장기를 이식한 뒤 평균 80%의 환자가 일년간 생존하며, 심장과 신장이식 환자는 10년 이상 생명을 이어간다. 인간 장기이식이 놀라운 생존율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14초마다 새로운 환자가 대기자 명단에 오르는 현실에서 이식을 기다리며 죽어가는 사람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뇌사자의 장기 기증률이 1.3%씩 늘어가는 데 견줘 이식 대기자는 15%씩 늘어가는 현실이다. 외부 보조장치 없이 혼자서 박동하는 인공심장 같은 인공장기가 개발되고 있지만 ‘기계적 장치’라는 한계는 쉽게 극복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장기이식 대기자를 위한 돼지 장기의 이종간 이식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한동안 침팬지나 비비원숭이 등의 영장류가 이종 장기 공급원 구실을 했다. 유전적 구조가 인간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장기의 크기가 인체 구조에 적합하지 않고, 인수공통전염병의 문제가 있었으며, 무균 사육에도 걸림돌이 많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게 무균 돼지였다. 돼지 장기는 크기와 생리해부학적 소견이 인간의 것과 유사하고 114일의 짧은 임신 기간으로 인해 재생 사이클도 매우 짧다. 이미 오랜 연구로 인해 돼지 세포와 장기에 관련된 형질전환 기술도 나름대로 구축돼 있었다.
미국에서 무균 돼지 체세포 떼어와
무균 돼지를 무상으로 공급받게 된 것은 국가적 경사로 여길 만했다. 때마침 세계에서 세 번째로 무균 돼지를 사육할 수 있는 특생동도 완공됐다. 어떻게든 무균 돼지를 들여오기만 하면 장기적으로 바이오 장기 개발까지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보였다. 100kg 안팎까지만 자라고 30여년 동안 세대를 이어온 무균 상태의 돼지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카고에서 무균 돼지를 들여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광우병 파동으로 가축을 들여오는 절차가 무척 까다로웠고 무균 상태로 비행기에 싣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모든 절차를 밟아 무균 돼지를 들여오려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황우석 교수는 무균 돼지를 통째로 들여오는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체세포 복제 기술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2월 시카고로 날아간 황 교수팀의 연구원은 무균 인큐베이터를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드라이아이스로 냉동 상태를 유지하는 작은 시험관을 지니고 있었다. 무균 돼지의 체세포를 떼어오려는 것이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황 교수는 “섬유소가 풍부한 피부 조직에서 체세포를 떼었다. 작은 조직을 무균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행여라도 비행기 탑승 과정에서 문제가 될지 몰라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황우석 교수를 중심으로 미니 무균 돼지 복제 실험을 진행했다. 손에 익은 체세포 복제 기술을 사용했지만 그것만으로 바이오 장기에 이르는 길을 앞당길 수는 없었다. 연구팀은 무균 돼지의 체세포 복제 과정에서 인간 DNA를 주입했다. 자체 면역체계의 공격이 있으면 세포를 보호하는 구실을 하는 단백질인 붕괴촉진인자(DAF)라는 인간 유전자의 DNA를 무균돼지 체세포 핵에 주입한 것이다. 이렇게 만든 유전자 변형 무균 돼지의 세포를 인간 항체에 노출해도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무균 돼지의 심장과 폐, 신장 등의 장기에 DAF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 DNA를 주입한 무균 돼지의 체세포 핵은 난자(핵을 제거한)에 들어간 뒤 대리모 구실을 하는 일반 돼지의 자궁에 착상된다. 충남 홍성의 축사에서 이뤄진 핵 이식과 착상, 수태 등의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9월9일 대리모 돼지가 서울대학교 특생동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면역 유전자가 들어 있는 무균 복제 돼지를 낳았다. 출산도 무균 상태에서 이뤄진다. 대리모 돼지의 배를 가른 뒤 자궁을 적출해 균이 침투할 수 없는 무균 인큐베이터에서 새끼들을 인공적으로 꺼낸다.
원숭이 실험 여건도 조성 안된 상황
지금까지 유전자 변형 무균 돼지가 23마리 태어났다. 이 기간에 시카고에서 무균 돼지 24마리가 지난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국내에 반입되기도 했다. 이들이 전부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죽었고, 뚜렷한 이유 없이 죽기도 해서 지금은 모두 44마리가 서울대학교 특생동에서 지낸다. 국내에서 미니 무균 돼지들이 개체수를 늘려가는 동안 미국 시카고의 무균 돼지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리는 불운을 겪었다. 김윤범 교수가 국내 여러 대학과 기관으로 무균 돼지 기증을 모색하는 동안 시카고대학쪽에서 무균 돼지 시설을 폐쇄했기 때문이다. 현재 김 교수는 대학쪽과 법적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서울대학교 특생동의 무균 돼지들은 이식용 장기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들이 개체수를 불리고 있는 동안에 바이오 장기 이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험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일단 면역거부 반응을 극복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서울대병원 임상의학연구소 전임상실험부 강병철 선임연구원은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했을 때 일어나는 초급성 거부반응이나 민감한 액포상 거부반응, 세포 거부반응 등에 관한 면역억제제를 개발하고 있다. 또 인체에 이식했을 때 돼지에서는 병을 일으키지 않는 병원균이 사람에게는 문제가 될 수도 있기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돼지의 장기이식 실험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반 돼지를 이용한 실험이다. 서울대병원 임상의학연구소 9층 동물 수술실에서는 매주 한두 차례 40여명의 연구진이 참여해 돼지의 장기를 다른 동물에 옮기는 실험을 하고 있다. 개에게 장기를 이식하는 시술을 한번 하는 데 1천만원가량의 비용이 들어간다.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면역억제제로 어떤 것은 한번 주사하는 데 300만원이나 들어가기도 한다. 만일 영장류에 이식하는 수술을 하기 위해 바분 원숭이를 수입하려면 한 마리에 500만원은 기본이다. 그나마 원숭이를 수입하는 게 까다로워 수술이 언제 이뤄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거부반응 없는 세포 이식 주목
그렇다면 무균 돼지의 장기를 사람이 이식받는 날이 오는 것일까. 원숭이 실험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은 속절없는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심장과 폐의 이식 대기자라 할지라도 확실한 검증 없이 무균돼지의 장기를 이식받는 것은 곤란하다. 혈류의 방향이나 호르몬 시스템, 효소나 수용체 등 분자 구조에 따른 단백질 대사와 약물반응에 대한 연구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것도 초기에는 최후의 수단으로 한달 혹은 한 주일, 하루라도 생명을 연장해 ‘유언장’을 남기려는 사람이나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마저 생명윤리 차원에서 첨예한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정에 따라 무균 돼지의 장기 이식보다는 세포 이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포는 심한 면역거부 반응을 유발하지 않고 유전자 조작도 쉽다. 설령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해도 곧바로 세포가 사멸하기에 적출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이종 세포주를 이용한 심근경색 환자의 심근세포, 가족성 고콜레스테롤 환자의 간세포,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도세포 등이 관심을 끌었다. 현재 바이오이종장기 연구개발사업단은 돼지의 췌도세포를 이용해 당뇨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당뇨병 환자가 질병을 극복하려면 뇌사자 3명의 췌도세포를 이식받아야 한다. 그런데 돼지의 췌도를 수거한 뒤 약품처리를 하면 필요한 췌도세포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만일 무균 돼지가 장기를 안전하게 공급한다면 이식 대기자가 장기 이식자보다 네배나 많은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같은 최루성 드라마는 같은 재현 사극의 소재로 전락할 게 틀림없다. 하지만 ‘신의 선물’이라고까지 여기는 무균 돼지의 장기가 인체에 이식될 수 있을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일단 돼지 세포주를 이용한 당뇨병 치료에 기대를 걸어볼 일이다. 이식 대기자들이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암거래되는 장기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될 날을 기다리면서. 어디에선가 마취 중인 환자에게 일산화탄소를 주입해 뇌사 상태에 빠뜨려 신체 장기를 꺼내 ‘인체장기 공장’을 보여주는 영화 의 장면이 재현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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