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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성서의 기적’을 향해

등록 2004-11-19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 하반신 마비 환자에 탯줄혈액 줄기세포…성체·배아 줄기세포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font>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인간 배아복제 연구를 통해 불치·난치성 질환 치료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황우석 교수.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스타 과학자’라는 칭호가 따라붙는다. 황 교수는 지난 1998년부터 모두 83억원의 과학기술부 예산을 지원받았으며 내년에는 과학기술진흥기금에서 ‘최고과학자연구지원사업’으로 265억원을 배정받기로 했다. 이런 국가적 지원은 황 교수가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재생의학’의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준 데서 비롯됐다. 요즘 황 교수는 연구실을 지킬 만한 여건이 아니다. 윤리적 논란에 휩싸인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길을 열기 위해 국내외를 누비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척수마비 환자들이 황우석 교수가 연구실을 지키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는 동안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20여년 동안을 하반신 마비 상태로 지낸 환자가 탯줄혈액(제대혈)에서 분리한 성체 줄기세포를 척수에 이식해 운동·감각 신경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주문에 따라 앉은뱅이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었다”는 성서의 ‘이적’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미세하게나마 보여준 셈이다.

성체 줄기세포 응용 가능성 높아져

발바닥 말초신경과 근육이 미세하게 살아난 것만으로 성공을 속단하긴 이르다. 이번 임상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려면 성체 줄기세포가 신경세포로 분화돼 제대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그동안 줄기세포는 의학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체 줄기세포를 척수에 이식한 임상시험 사례는 정식으로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다. 지난 10월12일 이뤄진 조선대병원 줄기세포임상시험팀(팀장 송창훈 산부인과 교수)의 사례도 학술적으로 평가받을 만큼 상황이 진전되지는 않았다. 환자의 손상된 부위에 주입된 줄기세포가 신경세포로 분화해 장착된 뒤에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자신의 체세포에서 분리한 성체 줄기세포를 주입한 것이 아니기에 면역 거부 반응이 발생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도 없다. 하지만 탯줄혈액 줄기세포의 임상적 응용 가능성이 높아진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정말로 조선대병원 연구팀의 임상시험은 줄기세포로 척수마비 치료길을 연 것일까.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에 따르면 탯줄혈액을 그대로 이식한 것으로 보인다. 탯줄에서 피를 뽑은 뒤 적혈구를 제거하고 나머지 성분을 농축해 환자의 척수신경에 주입한 것이다. 탯줄혈액에는 골수처럼 혈액을 만들어내는 혈액조성 줄기세포와 연골·뼈·근육·신경 등을 만드는 간엽 줄기세포가 있다. 탯줄혈액 줄기세포 이식수술의 관건은 신경과 조직으로 분화하는 간엽 줄기세포를 분리하는 데 있다. 이식 과정도를 보면 ‘줄기세포 농축액’을 주입한 것으로 나와 있다. 어떤 줄기세포를 주입했는지가 불명확한 것이다.

이번 임상시험은 성체 줄기세포의 치료 효과에 대한 의구심을 털어내고 있다. 수명이 짧고 분화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짐작했던 성체 줄기세포가 생각보다 탁월한 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성체 줄기세포만으로도 암에 대응하기 위한 면역계를 돕고, 바이러스의 감염을 막으며, 세포 치료와 조직·장기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성체 줄기세포가 ‘가능성’에 머물고 있는 배아 줄기세포보다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성체 줄기세포는 복제 과정에서 ‘원시선’(Primitive streak)이 있는 배아를 파괴하는 윤리적 문제도 없지 않은가. 더 이상의 성체·배아 줄기세포 논란은 허용하지 않을 듯한 형국이다.

배아세포, 기술적 어려움은 여전

실제로 성체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 결과는 재생의학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심장근육과 혈관을 자라게 한다는 가능성이 실제로 확인되기도 했다. 미국 피츠버그 의대 로버트 코모스 교수팀은 환자의 엉덩이 뼈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대체동맥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심장 부위에 주입했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은 심장근육이 손상돼 혈액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조절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6개월 뒤 심장의 활동성을 표시하는 박출계수가 10%가량 좋아졌다. 35% 미만의 환자들의 박출계수가 46%(정상은 55%)로 높아진 것이었다. 이런 성과에 따라 줄기세포로 심장 자체를 고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성체 줄기세포가 조직과 장기의 기능을 복원하는 효과는 폐질환에서도 증명됐다. 혈액과 골수에서 유래한 성체 줄기세포가 손상된 폐 조직에서 자발적으로 재생되기도 한다. 성체 줄기세포가 폐기종이나 낭성섬유증 같은 중증 폐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인체에 들어가 손상된 부위를 치유하는 것이다.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들에서도 효과를 보였다. 관절이 뻣뻣한 환자에게 혈액조성 줄기세포를 주입한 뒤 9개월이 지났을 때 류머티스 결절이 깨끗이 사라졌던 것이다. 심지어 성체 줄기세포를 약물전달에 이용하려는 연구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골수 유래의 줄기세포에 ‘인터페론 베터’ 유전자 같은 항암물질을 담아 암세포에 전달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체 줄기세포 관련 연구성과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배아 줄기세포는 냉동 배아 하나 얻는 것조차 쉽지 않다. 동물복제에 성공했다고 인간복제가 다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배아 줄기세포 하나 얻는 게 세계적 뉴스로 떠오르는 실정이다. 지난 2월 황우석 교수는 핵을 제거한 242개의 사람의 난자에 사람의 세포 핵을 이식해 줄기세포 하나를 얻었다. 오랜 시간과 엄청난 예산을 투자한 끝에 얻은 인간 배아 줄기세포였다. 이런 산고를 겪은 배아 줄기세포의 놀라운 가능성은 무한 복제에 있다. 하나만 만들면 이를 이용해 다양한 분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여세포 획득과 세포 분화 등에 관련된 기술적인 어려움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줄기세포 연구는 성체 줄기세포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할까. 현재 성체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에서 성과가 나오고 있기에 실용화 시기도 앞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인간 배아 줄기세포는 임상시험에 적용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면 성체 줄기세포에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2천여 가지로 알려진 불치·난치성 질환 각각에 적합한 치료법을 따져보는 게 순서다. 차병원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정형민 소장은 “성체 줄기세포가 척수마비 환자에게 효과를 보였다고 해서 배아 줄기세포의 효용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장점이 어떤 질환에 유용한지를 판단하는 연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질환에 적합한지 따져봐야

지금까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백혈병이나 천식·류머티스 등의 면역계 질환에는 성체 줄기세포가, 파킨슨병·척추장애·당뇨병 등에는 배아 줄기세포가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척추마비 환자들이 황우석 교수의 연구활동을 독려하는 것도, 낙마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던 크리스토퍼 리브가 각종 선거에서 줄기세포 연구 허용 후보를 지지한 것도 배아 줄기세포가 새로운 삶을 안겨줄 수 있다고 믿은 때문이다. 연구의 출발대에서 성체 줄기세포가 한 걸음 앞서간다고 해서 배아 줄기세포의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다. 재생의학이라는 신천지는 성체·배아 줄기세포가 저마다의 구실을 했을 때 열릴 가능성이 높다. 다시 황우석 교수의 연구실에 기대를 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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