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국 현대사는 폭압적인 군부독재의 어둠과 이에 맞서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청년들의 뜨거움이 찬란하게 교차하는 시대였다. 그 한복판에서 가장 치열하게 민주화운동 전선을 개척한 단체가 바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이다. 1983년 9월 창립된 민청련은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서 사회인 청년들이 공개적인 민주화운동을 펼치기 위해 결성한 조직이다. ‘민청련 두꺼비 열전’(시대의창 펴냄)은 그 역사적 주역들의 삶을 오늘에 되살려낸 책이다.
책의 제목이자 핵심 상징인 ‘두꺼비’는 민담 속 주인공에서 유래한다. 뱀을 만나 도망가지 않고 맞서다 먹히지만, 오히려 그 몸속에서 새 생명이 자라나 뱀을 죽이고 수천 마리의 새끼 두꺼비로 부활한다는 이야기다. 책을 편찬한 민청련동지회 민청련두꺼비열전편찬위원회는 서문에서 이 민담을 민청련에 투영한다.
“민청련이 공개 투쟁을 벌이면 정권은 결국 구성원들을 감옥에 가둘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폭압을 지켜보던 많은 청년과 지식인이 분노하고 각성할 것이며, 그 결과 수백 수천의 또 다른 민청련과 활동가들이 탄생할 것이다.”
실제로 민청련은 전두환 정권의 서슬 퍼런 탄압 속에서도 두꺼비가 되어 당당히 공개적으로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고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며 정권의 허를 찔렀다. 이처럼 두꺼비는 탄압을 기꺼이 감내하며 민주주의의 생명을 살리고자 했던 민청련 청년들의 헌신과 연대의 미학을 상징한다.
‘민청련 두꺼비 열전’의 큰 미덕은 거창한 공적 위주의 건조한 연대기적 기술에서 벗어나, 치열한 현장에 뛰어들었던 인간 군상의 숨결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온몸으로 시대를 견뎌낸 청년 9명의 구체적인 삶을 복원해낸다. 구속과 고문, 끝없는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민주주의’라는 단 하나의 지향점을 놓지 않았던 이들의 삶을 추적한다.
‘열전’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사마천의 ‘사기 열전’처럼 일생을 빠짐없이 나열하기보다, 삶의 결정적 대목과 후대에 전할 만한 업적과 일화를 중심으로 기록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 기록들은 험악한 시대를 살아낸 투사들의 삶이 곧 불의한 시대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자 성실한 실천이었음을 증명한다. 아울러 거대한 독재 권력에 균열을 내는 공개 운동의 영역에서 동지에 대한 연대의 힘이 얼마나 소중하며, 그것이 어떻게 지속력을 창출하는지 모범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민주화운동 투사들의 삶이 박제된 ‘빛바랜 전설’이 아니라, 인간적 고뇌와 한계, 갈등과 희망의 줄다리기 속에서 그 시대를 살아낸 청년들의 평범하고도 위대한 진실이었음이 깊은 울림과 설득력으로 다가온다.
민청련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여성 두꺼비’가 있었다. 이 책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을 역사의 중심 무대로 불러와, 이들의 고통을 단순한 ‘희생양’의 프레임이 아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전사’(戰士)의 모습으로 복원해냈기 때문이다. 민청련 상근 활동가의 아내들과 각 부서와 기반 조직의 여성 회원들은 민청련의 활동 전반에 삶의 불꽃을 태웠다. 학생 시절부터 시위를 주도하고 고문을 견뎌낸 여성 회원들은 꺾이지 않는 의리와 기백으로 남성 동료와 선후배들의 든든한 귀감이 되었다.
남편들이 안기부와 남영동에 끌려가고 구속과 수배가 반복될 때, 상근활동가의 아내들은 수동적인 옥바라지에 머물지 않았다. 경찰서와 교도소, 법정과 농성장을 오가는 매일의 일상이 곧 치열한 전장이었다. 아이를 기르는 손으로 유인물을 나르고 억울하게 끌려간 동지들의 석방을 외쳤던 이들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또 한 명의 투사로 거듭났다. 이들은 감옥 안과 밖을 공동 투쟁의 장으로 만들었으며, 가혹한 탄압 속에서 방패막이가 되어 사무실을 지키고 조직의 터전을 지켜냈다. 특히 1985년 민청련 여성들의 주도로 탄생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는 독재정권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연대의 성채가 되었다.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당당한 투사로서 스스로 독을 품고 뱀과 맞서 싸웠던 민청련 여성들은, 진정한 ‘두꺼비 정신’의 실천자였음을 이 책은 생생히 보여준다.
‘민청련 두꺼비 열전’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과연 거저 얻어진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당연한 듯 투표권을 행사하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만, 이 풍요로운 자유의 토대가 수많은 청춘이 태운 삶의 불꽃 위에 세워졌음을 종종 망각한다.
이 책은 그 망각을 깨우며 시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선명한 거울이 되어준다. 기성세대에게는 지나온 청춘의 궤적을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를, 역사책 속 문장으로만 민주화를 접해온 세대에게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뜨거운 화두를 던진다. 나아가 ‘광주 5·18’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새 세대에게는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을 끌어낸다.
흔들리면서도 끝내 삶의 불꽃을 피워낸 이들에 대한 헌사이자 기록인 이 책이,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희망과 연대의 불씨를 키우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스스로 독을 품고 차가운 어둠을 견뎌낸 ‘두꺼비’ 같은 1980년대 청년들의 불꽃이, 각자도생의 그늘에 갇힌 오늘날의 우리에게 뜨거운 온기와 용기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이지원 대림대 명예교수·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대표

‘민청련 두꺼비 열전’, 권형택·김성환·임경석·조명자 지음, 시대의창 펴냄, 2026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초대 의장으로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반대 투쟁에 앞장서다 옥고를 치른 고 김근태 전 의원이 1988년 6월 김천교도소에서 출소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5년 12월 민청련 의장 김근태는 법정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 등의 만행을 폭로했고, 부인 인재근은 민가협 총무로서 이를 널리 알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추천으로 김근태·인재근 부부는 ‘87 로버트 케네디 국제인권상’을 공동수상했다. 1988년 5월 수감 중인 김근태 의장 없이 인재근 혼자 서울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장면이다.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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