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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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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악당이 승리한 스포일러 역사 뚫고

1979년 12·12 반란을 ‘진압군 대 반란군’ 명확한 선악의 대결 구도로 영리하게 재구성한 대중·정치영화 <서울의 봄>
등록 2023-12-02 04:53 수정 2023-12-03 08:18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엿새 만에 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극중 서울의 한복판에서 군사반란을 막으려는 이들과 대치하는 전두광(황정민) 보안사령관(가운데) 등 ‘신군부’ 세력의 모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엿새 만에 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극중 서울의 한복판에서 군사반란을 막으려는 이들과 대치하는 전두광(황정민) 보안사령관(가운데) 등 ‘신군부’ 세력의 모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개봉 엿새 만에 20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아 암울했던 2023년 한국영화계의 막판 구원투수로 떠오른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은 이제껏 한국영화가 제대로 다룬 적 없었던 12·12 군사반란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전두환을 스크린 한복판으로 소환한다. 영화는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시점에서 시작해 12월12일 전두환과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군사반란에 성공하는 데서 끝난다. 18년의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면서 ‘서울의 봄’이 찾아오는 줄 알았지만, 12·12 군사반란으로 또 다른 악인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영화는 새로운 암흑기의 탄생에 주목하며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현재적으로 되짚는다. 참고로 영화는 전두환을 전두광으로, 노태우는 노태건, 최규하는 최한규, 김재규는 김동규 등으로 실존인물의 이름을 조금씩 바꿔서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캐릭터의 세부는 창작’하였음을 밝히고 들어간다.

개봉 엿새 200만 관객 돌파

10·26 사태 이후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이 계엄법에 따라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된다. 육군참모총장 및 계엄사령관인 정상호(이성민)는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등에 업고 야욕을 표출하는 전두광을 견제하기 위해 소신과 원칙을 중시하는 이태신(정우성)에게 수도경비사령관 자리를 맡긴다. 하지만 전두광은 한발 빠르게 군부 내 주도권을 잡기 위한 행동에 나서, 10·26 사태와 정상호를 엮어 강제 연행하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방부 장관(김의성)과 대통령(정동환)의 재가가 필요하지만, 전두광은 대통령 재가도 없이 무력을 써서 정상호를 납치한다. 전두광과 신군부의 군사반란 계획을 알게 된 이태신은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친다.

역사적 배경 지식이 부족하다면 초반에 숨 가쁘게 제시되는 정보가 버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영화의 대결 구도는 쉽고 명확하다. 반란군 대 진압군의 대결. 반란군의 대장인 전두광은 악당, 진압군의 대장인 이태신은 영웅이다. 전두광과 이태신으로 대표되는 확실한 선악의 대결 구도 덕에 <서울의 봄>은 머리 아픈 정치영화가 아니라 몰입감 높은 대중영화가 된다. 여기에 이 영화의 흥행 비결이 있다고 본다. 요즘 관객은 강렬한 악당과 강력한 영웅, 확실한 단죄, 화끈한 대결을 원한다. 영화는 어떻게 악당이 승리한 역사적 결말을 오락적 쾌감으로 갖고 올 수 있단 말인가. 김성수 감독은 캐릭터들을 통해 그 답을 제시한다.

역사에서 소재를 가져온 <서울의 봄>은 사건이 아니라 캐릭터가 중요한 영화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역사와 창작 사이 절묘한 줄타기를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서 전두광과 이태신은 각각 악과 선을 상징하는 인물이 된다. 여기서 악은 실제이고 선은 판타지다. 악은 가까이 있고 선은 멀리 있다. 악은 빨리 당도하고 선은 나중에 당도한다.

캐릭터로 만들어낸 선악의 장르

우선 이태신은 영화적 판타지에 가까운 인물이다.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은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다. 그는 끝까지 쿠데타를 저지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은 홀로 기적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태신은 행주대교를 건너 서울로 진입하려는 2공수부대의 탱크들을 맨몸으로 돌려세운다. “오늘 밤 서울은 우리 부대가 끝까지 지킨다”며 몇 안 되는 부대원과 탱크를 이끌고 경복궁 인근 반란군 본부로 진격해 잠깐이나마 전두광을 움찔하게 한다. 그 길에서 카메라는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비춘다. 이태신의 상황이 12척의 배로 명량해전에 나선 이순신 장군의 상황 같았을까. 이태신과 이순신을 순간 오버랩하는 영화는 “지든 이기든 원칙대로 싸우겠습니다” “반란군에 나라가 넘어갔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라는 대사를 이태신에게 부여하며, 영화가 수호하고 싶어 한 정의의 필사 항전을 보여준다.

전두광과 하나회 소속 인물들은 대체로 막무가내이며 자주 우스꽝스럽다. 실제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무서운 실세였지만 영화는 이른바 전두광의 표현을 빌려 ‘똥별’ 찬 권력자들의 무능과 한심함을 조롱한다. 특히 노태건과 국방부 장관 캐릭터가 강력한 밉상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이들의 기회주의적 면모가 부각되는 주요 행적은 대체로 역사적 사실에서 가져왔다. 이를테면 국방부 장관은 영화에서처럼 실제로도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이 나자 즉시 한미연합사로 피신했다가 신군부에 의해 국방부 지하에서 발견됐다. 전두광은 우스꽝스럽기보다 권모술수에 능한 불도저 같은 행동파, 상대를 제압하고 통제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유형의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는 그를 절대 악으로 손쉽게 묘사하는 대신 그의 강렬한 출세욕이 어떻게 발현되고 폭발하는지 세심하게 배치해 보여준다. 많이 회자하는 영화 후반부의 화장실 장면을 보자. 쿠데타가 성공한 뒤 군사반란 주도자들은 축배를 든다. 그때 전두광은 조용히 화장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홀로 자신의 승리를 만끽한다. 화장실은 긴장이 해소되는 공간이다. 배설하는 공간이다. 그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배설되는 순간 그가 짓는 웃음은 기괴하다. 섬뜩한 권력자의 탄생을 확실하게 공표하는 장면이다.

재판과 사면을 생략한 의미심장한 엔딩

정아은 작가의 책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문제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이든 다 해도 ‘된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뜻을 관철시키며 승승장구한 전두환에게는, 겸손이나 성찰, 반성 같은 덕목을 일깨워줄 사람이 없었다.” 영화는 12·12 군사반란에 성공한 신군부 세력이 다음날 보안사 앞에서 승리 자축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후 이들은 승승장구했다.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됐다. “마침내 신군부는 서울을, 대한민국을 장악했다. 서울의 봄은 그렇게 끝났다”고 말하며 영화는 끝난다. 우리는 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12·12 군사반란 등의 혐의로 재판받은 것을.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이 최종 선고된 것을. 또한 사면된 것을. 영화는 이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엔딩은 의미심장하다. 역사는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진행되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또한 끝내 반성하지 않고 세상을 뜬 전두환을,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기성세대의 책임을 묻는 듯하다. 영리한 정치영화다.


이주현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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