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니치’라는 명칭에는 깊은 설움이 배어 있다. 자이니치는 ‘자이니치 조센징’(在日朝鮮人·일본에 사는 조선인)의 줄임말이다. 20세기 전반 제국주의 일본의 한반도 강점과 제2차 세계대전 패망이 낳은 디아스포라다. 해방 뒤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남은 조선인과 후손(재일동포)을 일컫는다. 이들 대다수는 한-일 수교 이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남과 북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고 사실상 무국적인 ‘조선적’(朝鮮籍)으로 남은 사람도 있다. 현행 일본 법령은 자이니치가 적대국 북한의 국적을 취득하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해방 뒤에도 온갖 차별과 핍박, 위협과 공포 속에 슬픔과 분노를 삭이며 산 세월은 똑같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과 시민사회는 자이니치 문제를 어떻게 볼까?
<공생을 향하여>(길윤형 옮김, 생각의힘 펴냄)는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인 다나카 히로시(86)가 언론인 나카무라 일성과 1년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을 묶고 뒤에 나카무라가 별개의 ‘보론’을 덧붙인 책이다. 2019년 발간된 지 4년 만에 한국어판이 나왔다. 다나카 교수는 일본-아시아 관계사, 포스트식민지, 재일 외국인, 일본의 전후 보상 등 일본에서 가장 민감하고도 논쟁적인 주제를 천착해왔다. 전후 일본의 폐쇄적·차별적 외국인 정책을 앞장서 신랄하게 비판해온 실천적 지식인이자 자이니치 인권 투쟁의 산증인이다. 그는 자이니치 비극의 시작은 “식민지 지배로 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 삼고, 말과 이름도 빼앗고, 마지막에는 전쟁에까지 끌어냈으면서, 전후에는 표변해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의 발효와 동시에 일본 국적을 상실시켰고 (그들에게) 국적 선택권을 부여하지도 않았”던 데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총 16장을 주제별로 피폭 치료를 위해 일본에서 치료받을 권리를 주장한 손진두의 법정 투쟁, 박종석의 히타치 취업 차별 재판, 한국 국적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일본 사법연수소의 문을 열어젖힌 김경득의 투쟁, 1980년대 외국인 지문날인 거부 운동, 공무원 임용의 국적 조항 철폐 투쟁, 외국인 참정권 운동, 민족학교 탄압에 맞선 움직임 등을 담았다.
공저자 나카무라는 머리말에서 “패전을 겪고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이 국가의 식민주의에 처절히 패배하면서도, 낙담의 바닥에서 목소리를 쥐어짜내 차별에 대한 분노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희망을 사회 다수자에게 끊임없이 전해온 이들. 투쟁의 궤적을 돌아본다”고 썼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여행하는 여성, 나혜석과 후미코
나혜석·하야시 후미코 지음, 안은미 옮김, 정은문고 펴냄, 1만6500원
1930년쯤 식민지 조선의 부르주아 출신 신여성 나혜석과 일본 제국의 가난한 프롤레타리아 여성 하야시 후미코는 4년의 시차를 두고 똑같이 부산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럽까지 여행한다. 나혜석은 일등칸, 후미코는 삼등칸. 민족과 계급이 다른 두 여성이 각각 남긴 <구미여행기>와 <삼등여행기>를 한 권에 엮은 게 흥미롭다.
각자도사 사회
송병기 지음, 어크로스 펴냄, 1만6천원
‘웰빙’(좋은 삶) 못지않게 ‘웰다잉’(좋은 죽음)이 중요한 시대다. 의료인류학자인 지은이가 금기와 혐오를 넘어 한국 사회의 일상과 공동체를 ‘죽음’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본다. 집, 노인, 돌봄, 호스피스, 콧줄, 의료적 결정까지 생애 말기 죽음의 경로를 추적하고 존엄한 죽음을 가로막는 불평등한 삶의 조건에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
김진수 외 13명 지음, 시대의창 펴냄, 1만6천원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희생과 헌신…. 간호사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에서 ‘남성’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남자 간호사 수는 3만 명에 근접한다. 서울과 지방의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수술실·중환자실·장기이식센터·암병동 등에서 고군분투하는 남자 간호사 14명이 담담하게 풀어놓는 일과 삶의 이야기.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제임스 볼드윈·라울 펙 지음, 김희숙 옮김, 모던아카이브 펴냄, 1만4900원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가와 아이티 출신 영화감독이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역사를 실제 장면들의 영상으로 재구성한 동명 다큐멘터리영화의 오리지널 각본집. “당신은 나를 거들떠볼 필요조차 없었지만, 나는 당신을 주시해야만 했다. (…) 마주한 모든 것을 바꿀 순 없지만 마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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