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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문화 안에서 당신은 언제든 일베

<보통 일베들의 시대> 저자 김학준… 자신을 소수자로 설정하고 ‘나도 고통스러운데 왜 이렇게 나대냐’는 불만 가진 ‘보통의 일베들’
등록 2022-06-23 14:12 수정 2022-06-24 02:10
<보통 일베들의 시대> 저자 김학준씨. 김진수 선임기자

<보통 일베들의 시대> 저자 김학준씨. 김진수 선임기자

한국 사회에서 ‘혐오표현’이란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게 된 과정은 아마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의 등장을 빼고는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일베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던 유가족들 앞에서 피자를 시켜먹는 등 ‘폭식 투쟁’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디시인사이드에서 파생된 이 온라인 커뮤니티는 호남, 여성, 진보좌파 등에 대한 혐오에 유머의 탈을 씌워 유희거리로 만든다.

2022년 일베는 예전만큼 활발하게 운영되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이용자 일부가 빠져나가면서다. 그럼에도 당시 일베 이용자들이 공유했던 정체성과 사고방식은 현재성을 띤다. ‘일베’와 ‘일베가 아닌 것’의 경계를 흐리며, 때론 ‘정의’와 ‘공정’의 탈을 쓴 채 도처에 등장한다.

일베 체화한 이준석 국힘 대표

2014년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주목받았던 사회학 연구자 김학준(38)이 일베를 분석한 책을 8년 만에 펴낸 이유다. 책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2014년 연구를 토대로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사 △2011∼2020년 일베 게시물의 시계열·텍스트 분석 △일베 이용자 심층 인터뷰 등을 포함했다. 일베의 ‘페르소나’로 현현한 살인범 장대호를 통해 일베의 이념형을 톺아보고, 일베와 대척점에 있는 루리웹을 분석해 “자기성찰 없는 담론장”이 언제든 일베와 유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김학준을 6월15일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일베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로 ‘유머’와 ‘평범 내러티브’를 꼽는다. 그는 일베가 어느 날 갑자기 한국 사회에 툭 하고 떨어진 존재가 아님을 강조했다. 자신을 피해자로, 일베를 악으로 보는 이분법도 그는 경계한다.

다시 일베를 주목한 이유는 뭔가.

“능력주의가 ‘공정’의 중요한 요소가 됐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로 표상되는 ‘정글 보수’(이준석 대표는 책 <공정한 경쟁>에서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은 정글”이고 정글에는 “약육강식이란 법칙”이 있으며 이를 “자연의 섭리”로 보는 “미국식 자유의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썼다)가 크고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공공의대 설립을 비판하며) ‘전교 1등이 아닌 의사한테 진료를 받겠냐’고 묻는 걸 부끄러운 줄 모른다. 이런 현상을 보며 (일베 연구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대표가 한국 사회의 소프트웨어를 바꾸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프트웨어를 바꾼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헌정 가치의 문제를 계속 건드리는 거다. 헌법은 ‘공정’과 ‘평등’ 외에 약자 보호도 명시하고 있다. 소수자가 처한 불평등한 상황을 인정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는데, 이 대표는 그런 가치를 마비시킨다. 약자를 낙오돼도 괜찮은 존재로 만든다. 공동체를 회복하는 시민적 각성을 말하는 걸 무가치하게 만들고 이런 주장을 자신이 가진 힘을 통해 제도화한다. 무엇보다 일베의 특징으로 언급한 ‘평범 내러티브’, 그것을 이 대표가 체화해서 보여주는 걸 보고 (연구과제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 강조’, 고통이 인정되지 않은 사회였기에

김학준은 일베의 큰 특징 중 하나로 ‘평범 내러티브’를 꼽는다. 일베 이용자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은 개인적 경험으로 삭이고 자신이 ‘평범했음’을 강조한다. 이 ‘평범 내러티브’는 결국 고통을 드러내고 인정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왜 떼를 쓰냐”는 식의 억압을 정당화한다. 이들은 고통을 체제순응과 자기계발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고통은 개별화되고 “패자를 멸시하고 승자를 물신화하는” 능력주의와도 만나게 된다.

‘보통 일베’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선 ‘커뮤니티’를 ‘웃음 시장’이라는 관점으로 본다. 재화로서 웃음이 통용되는 곳이고, 어떤 ‘드립’(애드리브)을 했을 때 (이용자가) 얼마나 (웃음이) 터지냐는 걸 동물적으로 터득한다. 이런 경험이 (다수 커뮤니티 이용자의) 몸에 완전히 장착됐다고 해야 할까. 예컨대 ‘댕댕이’(강아지)라는 말은 ‘야민정음’(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에서 만들어진 밈)에서 나왔는데 대중화됐다. 온라인 하위문화가 지닌, ‘밈’(인터넷에서 널리 퍼지는 사진이나 유행어)의 특수성이 사라지면서 일반화되는 과정이다. 혐오코드는 (이렇게) 유머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확산됐고, 그것이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잡았다. 이런 (혐오를 내재한) 유머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일베가 ‘특별히 유별난 종자’가 아니란 의미다.”

이렇게 혐오가 ‘유머’의 외피를 쓰고 퍼지면서, 온라인에서 일베와 일베가 아닌 걸 구분하는 건 어려워졌다. 혐오발언은 이제 각종 ‘드립’뿐 아니라 종종 정의, 공정, 능력이란 말과 뒤섞여 곳곳에서 사용된다. 비단 남초 커뮤니티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유머를 도구로 쓰다보니, 혐오표현에 대한 지적은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 된다. 그렇게 비판이 먹히지 않는 빈틈이 생기고 이들은 그 사이로 자신을 정당화하며 빠져나간다.

일베와 일베 아닌 것의 차이

일베의 사고방식이 보편적으로 확장됐다는 뜻인가.

“사실 일베가 처음 나타났을 때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라고 생각했다. (혐오문화는) 온라인에서 예전부터 있었다. 사실 (‘진보적’ 커뮤니티였던) 딴지일보, 디시인사이드 등에서 보수 진영 인물들을 비판하던 방식도 다르지 않다. 이미 기존 커뮤니티의 본질이 ‘일베’와 같았다. 일베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닌 상황에서, 일베와 일베 아닌 것의 차이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싶었다.”

그 둘의 핵심 차이는 뭔가.

“‘평범 내러티브’ 안에서 상대방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겪은) 정도의 고통은 누구나 겪으니까(라고 생각하고) 각자의 특성을 억누른다. 교통사고 피해자의 고통과 세월호 유가족의 고통이 다르지 않은 거다. 다른 특성은 이런 열광이 연대를 만들어내진 못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대남’이라고 알려진, 정치적 상징이 된 집단이 있어도 이들은 연대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들에겐 개별자로서 각자도생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특징이 과연 일베가 존재해서, 일베의 씨앗이 커진 건지 아니면 특정 연령의 코호트(통계상의 인자를 공유하는 집단) 문제인지는 아직 증명하지 못했다. (연구를) 하고 싶은 주제다.”

일베 이용자들이 굉장히 예의 바르게 인터뷰에 임했다고 했다.

“‘나는 (일베를 하지만) 사실은 준비된 사회인이야’라는 걸 과시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지만 (그 정도는) 평범한 것이고, 설령 극복을 못했더라도 누구나 다 겪는 고통임을 받아들이는 정도로 지나간다.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하는데 다른 이들은 왜 이렇게 ‘나대냐’는 데 불만을 표한다. 이들에겐 ‘나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신의 (평범하고 정상적인) 생애 경로를 방해하고 흔드는 사람들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성소수자든, (자기 관점에서) ‘무임승차’를 하려는 사람이든.”

유효기간 다한 ‘너희는 나빠’

평범함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소수자성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

“일단 자신이 피해를 받고 엄청나게 희생했다는 인식을 공통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걸 이겨내서 평범하다거나 어떤 (사회의) 정상성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중요한 사회인식이다. 그 길을 사회의 마이너리티, 소수자가 가로막는다고 보고 그들을 ‘반칙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면서 자신을 소수자로 역전시킨다. 나를 ‘피해자’로만 상정하니까 내가 이 사회에서 어떤 맥락적인 권위가 있는지를 의도적으로 지운다.”

일베를 마냥 타자화하는 것이 그들의 혐오표현을 배척하는 데 별 효용이 없겠다.

“그렇다. 도덕적으로 비난해봤자 아무런 피해도 충격도 각성도 일어나지 않는데 무슨 소용인가. 이분법으로 나눠 ‘선악 구도’로만 보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이들만 ‘악’하다는 관점은) 사실관계와도 맞지 않는다. 인상비평 수준으로만 끝난다.”

더 이상 ‘너희는 나빠’라는 도덕적 호소만으로는 지금 한국 사회에 편재한 혐오에 제동을 걸기 어렵다. 대항담론을 만드는 시작은 상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혐오의 정체를 직시하는 데 힌트를 제공한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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