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제대로 노는 청년이 돌아왔다

‘홍대의 3대 명절’로 불리는 ‘경록절’ 주최한 크라잉넛 리더 한경록 인터뷰
한영애, 최백호부터 신인 밴드까지 108팀 참가한 온라인 공연 축제
등록 2022-02-12 06:52 수정 2022-02-12 10:41
‘2022 경록절’을 앞둔 2월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한경록이 점프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2022 경록절’을 앞둔 2월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한경록이 점프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텐트 치고 기다렸어요.” “김치말이국수 먹고 왔습니다.” “안경! 안경!” 관객들은 텐트를 치고 페스티벌을 기다린다. 페스티벌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 부스에 가서 김치말이국수도 한 그릇 먹는다. 신나게 음악을 따라 부르며 뛰느라 앞 관객이 안경을 떨어뜨린다. 뒤에 서 있던 관객들이 “안경! 안경!”이라며 알려주고 누군가 안경을 주워준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에는 흔히 페스티벌에서 볼 수 있던 풍경이지만 이제는 온라인에서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실제로는 안경도 떨어지지 않고 텐트도 김치말이국수도 없지만, 유튜브 실시간 댓글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바로 ‘경록절’에서다.

생일파티로 시작한 온라인 음악 대잔치

‘홍익대 앞 3대 명절’이 있다. 크리스마스이브, 핼러윈데이 그리고 경록절이다. 경록절의 주인공은 한경록. 크라잉넛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다. 경록절은 2007년 2월11일, 한경록의 생일파티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작은 라이브클럽과 치킨집에서 파티를 했다. 점차 더 많은 사람이 모이면서 치킨집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큰 공연장인 무브홀에서 파티를 열었다. 생일파티라기보다 음악 페스티벌에 가깝다. 무브홀로 공연장을 옮기면서 술을 협찬해주겠다는 업체들이 나타났다. 2020년까지 공연이 지속됐다.

그러다 2021년부터는 코로나19 장기화 탓에 온라인으로 공연하게 됐다. 이 공연에는 총 83팀이 출연했다. 2022년에는 공연 기간을 총 사흘(2월9~11일)로 늘리고 하루 8시간씩 공연했다. 경록절 공연을 처음 열고 15년 만의 최대 규모다. 공연을 기획하는 동안 진행한 텀블벅 후원 펀딩은 목표했던 모금액(1천만원)을 넘어 1247만원을 달성했다. 경록절을 앞두고 2월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경록을 만났다.

“온라인 대잔치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러다 빚잔치될 것 같다(웃음).” 경록절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은 모두 출연료를 받지 않고 각자의 공간에서 공연하는 영상을 스스로 촬영해 보내온다. 한경록은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으로 공연 영상을 송출하면 큰 비용이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큰 착각이었다. “각 아티스트가 보내온 영상을 편집하고 이어붙이고 효과를 넣으려면 큰 비용과 기술이 들어가더라. 그래도 단 한 번도 유료 공연으로 바꿔야지, 생각한 적은 없다. 경록절의 취지가 내 생일파티를 핑계로 가수와 관객이 하나가 돼 축제를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 경록절에 참여한 아티스트는 총 108팀이다. 한영애, 부활, 크라잉넛, 마미손, 이승윤, 코카앤버터, 갤럭시 익스프레스, 배희관밴드 등 신인부터 선배 아티스트까지 참여했다. 힙합·춤·포크·록 등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공연뿐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도 준비됐다. 인디 대표와 힙합 대표가 나와 이(e)-스포츠(위닝일레븐) 대결을 하고, 연주하다가 갑자기 식사하고(먹방), 미래에서 왔다는 설정의 콩트 등도 영상에 포함됐다.

‘경록절’ 포스터. 캡틴락컴퍼니 제공

‘경록절’ 포스터. 캡틴락컴퍼니 제공

광고

장르와 세대, 거리와 시간 뛰어넘어

장르와 세대를 뛰어넘은 라인업을 모두 어떻게 섭외했을까. “먼저 경록절에서 공연하고 싶은 팀을 지원받았는데, 후배 신인이 많이 지원했다. 또 동료 밴드들에게 연락해 부탁했다. 부활, 한영애, 최백호, 산울림의 베이시스트 김창훈 선배님에게도 연락했는데 모두 흔쾌히 해줬다. 최백호 선배님은 ‘제가 영광이죠’라며 승낙했고, 산울림 김창훈 선배님은 오프닝 세리머니 곡도 만들어줬다. 부활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콘서트 실황 영상까지 보내왔고, 한영애 선배님은 크라잉넛과 콜라보(협업) 무대까지 해주었다.”

코로나19 장기화의 여파는 한경록에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줬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카세트테이프와 시디(CD)로 음악을 듣던 시절에 크라잉넛을 시작했다. 오프라인 공연이 어려운 상황이 되고 온라인으로 경록절을 개최해보니 아티스트와 관객이 대기업이나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관객은 거리와 시간 개념이 사라진 채 공연을 볼 수 있고 아티스트는 직접 댓글을 읽을 수 있다. 경록절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공연하는데, 많은 관객이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고 확장해나가길 바랐다.”

한경록은 2017년 자신의 별명 ‘캡틴락’을 이름에 넣은 회사 ‘캡틴락컴퍼니’를 만들어 크라잉넛 멤버 중 처음으로 솔로 앨범을 냈다. 최근에도 <쾌락만세>라는 곡을 발표했다. “크라잉넛만 20년 넘게 했다. 크라잉넛이 27년산 블렌디드 위스키라면 한경록만의 싱글몰트 위스키는 어떤 맛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뜨려고 앨범 냈겠나. 그저 내 목소리로 표현하고 싶어 시작한 도전이었다. 노래만 만드는 게 아니라 회사를 세워 제작까지 다 해보고 부딪혀보니 배울 점이 많더라. 크라잉넛 활동에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한경록의 올해 나이 45살. 그가 여전히 ‘청년’으로 보이는 비결은 사비를 털어서라도 이렇게 큰 축제를 열 수 있는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추진력과 열정일지도 모른다. “머리에 이런 거(두건) 쓰고 다녀서 젊어 보이는 것 같다(웃음). 이 나이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그런 개념이 없다. 20대부터 크라잉넛만 하면서 성실하게 놀아왔다. 잘 놀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고 그 노력으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었다. 또 그 에너지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

광고

한경록에게 경록절은 음악인의 연대이자 함께 낼 수 있는 목소리다. “영화는 스태프까지 포함하면 한 영화당 100명 정도 인원이 모이지만 음악은 혼자 하거나 많아야 4∼5명이라 그런지 잘 모이지 못한다. 경록절은 음악인도 연대할 수 있고 여기에 팬들까지 힘을 보태 뭉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계속 멈추지 않고 노래했다는 걸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다시 오프라인에서 공연하는 날이 오면 경록절은 어떻게 기억될까. “역병의 시대에도 우리는 음악을 멈추지 않고 제대로 놀 줄 아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우울해지지 않고 따로 또 같이 계속 노래해서 해피 바이러스를 만들었다는 것이 기억되면 좋겠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