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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남해로 이사 온다

긴 고민 끝에 결정 내린 친구, 신난 사람은 오히려 나
등록 2021-06-19 18:05 수정 2021-06-20 10:54
권진영 제공

권진영 제공

친구가 서울을 떠나 남해로 이사 왔다. 재작년 여름, 남해의 한 폐교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남해살이’ 프로그램의 참여자로 처음 만나, 3개월 반 동안 동고동락한 사이다. 프로그램 이후, 우리 부부는 남해에 남았고, 친구는 다시 원래 살던 서울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동안 멀리 떨어져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이제는 서로의 집까지 걸어서 30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운 이웃이 됐다.

“시골에 내려온 것을 후회한 적 있어요?” 그 친구가 얼마 전에 내게 물었다.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은데, 혼자 잘 살 수 있을지 몰라 고민된다고 했다. 나는 가끔 아쉬운 점은 있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 사는 것은 온전히 내 선택이며, 그 선택에 따르는 크고 작은 아쉬움 역시 내 몫으로 응당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무엇보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사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얼마 뒤, 친구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는지 군청 누리집에 올라온 월세 물건을 보여줬다. 시골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더는 미루지 않고 정말 남해에 내려와 살아보겠다고 말이다.

친구가 보여준 매물의 조건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읍내에 있는 단독주택인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 게다가 방이 무려 세 칸이고 냉장고, 침대, 에어컨, 세탁기까지 있다. 핵심은 계약 기간이 1년이라는 점이었다. 일단 1년쯤 한번 살아보고서 향후 계획을 세워보겠다는 게 친구의 생각인데, 남해에선 몇몇 신축 오피스텔이 아닌 이상 1년이라는 짧은 계약 기간을 선호하는 집주인이 거의 없다. 우리 부부 역시 1~2년 머물 전세나 월세 물건을 구하다 결국 마땅한 집을 얻지 못했던 이력이 있다. 그런데 마침 그 집은 새로 짓는 군청 청사 공사 구역에 포함되면서 최대 1년까지만 계약할 수 있다니, 집이 오래되고 낡았더라도 분명 놓치면 안 되는 귀한 기회다.

친구는 남해에 내려와 작은 식당을 직접 해보고 싶다고 했다. 친구의 새로운 도전에 나 역시 덩달아 신났다. 읍내에 나갈 때마다 혹시 적당한 가게 자리가 없는지 살펴보게 된다. 그러다 ‘임대’라고 써 붙인 가게를 발견하면 마치 보물찾기놀이를 하다 멋진 발견을 한 기분으로 친구에게 사진 찍어 곧바로 전송한다. 읍내 거리를 조금만 둘러봐도 임대한다는 가게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꽤 오랫동안 지역민의 사랑을 받은 한정식 식당에도 ‘임대’ 종이가 붙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늘(6월14일)은 드디어 친구가 서울에서 남해로 이사하는 날이다. 같이 짐을 나르고서 이사를 기념해 중국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읍내가 아니면 배달음식을 먹기 좀처럼 쉽지 않은 시골 생활인데, 읍내 한복판에 살게 된 친구 덕분에 남해에 내려와 처음으로 짜장면을 배달시켜봤다. 이웃 친구가 생기니 좋은 점이 하나 더 늘었다.

매일 인사를 주고받는 동네 할아버지, 밭에서 알뜰살뜰 키운 것을 흔쾌히 내주시는 할머니 이웃도 좋지만, 그래도 역시나 말이 잘 통하고 마음 잘 맞는 또래 이웃이 생기니 더 좋다.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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