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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시인 ‘제주에서 혼자살고 술은 약해요’

첫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낸 ‘웃는 사람’ 이원하
등록 2020-04-25 15:43 수정 2020-05-03 04:29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신형철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이원하 시인은 ‘웃는 사람’이다. 시를 보고 쓴 평론일 텐데, 실제로 많이 웃는다. 최근 펴낸 시집 가 일주일 만에 3쇄, 4500부를 찍었다.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 표제작이다. 한국일보 당선 뒤 전화번호를 묻는 전화를 그렇게 많이 받았다고 한다. 원고 청탁이 끊이지 않았다. “거절하지 않고 썼더니 한 권 분량이 나왔다”고 한다. 너무 쉽다. 등단도 시집 내기도. “아니에요.” 섬바람인 듯 바람이 세게 부는 날 이 시인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으흐흐, 깔깔깔 웃었다.

시작은 짝사랑

“남들은 빨리 당선됐다고 이야기하는데 정말로 열심히 했어요.” 시인은 자신이 “솔직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문재를 ‘자기계발서’처럼 이야기했다. 2017년 5월 시를 쓰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갔고 6개월 만에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 “등단을 위해 제주도에 내려간 거였어요.”

매일 썼다.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오후 여섯 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제주도 집들에는 대문이 없어요. 어느 날엔가는 씻고 있는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요. 수도꼭지를 잠그니 우리 집 현관문인 거예요.” 무서워서 집 안 불을 껐다. 다음날도 불을 켤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간 불을 끄고 지냈다. 하지만 시는 계속 썼다. “휴대전화 불빛으로 썼죠.” 하루라도 못 쓰면 ‘등단’을 오르지 못할 것 같았다. 미신처럼 믿었다. 규칙적인 것은 또 있었다. 시들은 한 연은 두세 줄이고, 시집으로 보면 한 바닥 반 정도 되게 비슷비슷한 양과 형식이다. 이 또한 강박이다. “그 양이 딱 A4용지 한 장 분량이거든요. 글을 쓴 뒤 인쇄해서 퇴고하는데, 글자 크기 10포인트로 해서 딱 들어가는 양이에요. 짧아도 싫고 길면 더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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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에는 ‘요’ 시와 ‘다’ 시가 있다. ‘요’로 끝나는 시와 ‘다’로 끝나는 시다. 시집 앞 ‘시인의 말’로 “편지 아닌 편지를 쓰게 되었”다고 해놓았다. 짝사랑이다. 모두 상대방이 있는 편지지만 “‘다’로 끝나는 시는 상대방에게 조금 화가 나 있을 때”다. 그는 짝사랑을 뮤즈라고 하고 아름답다고도 했다.

시작(詩作)도 짝사랑에서 시작됐다. 짝사랑하던, 여자친구 있는 남자가 시집을 선물했다. 여행작가를 해볼까 싶어 아카데미 수업을 듣던 중이었는데 짝사랑하는 마음을 숨기기 위해 알쏭달쏭하게 글을 썼더니 그게 시처럼 보였단다. 여행작가 아카데미 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시인이라며 자신을 믿고 “시를 써보라”고. 시 수업을 들었고 시 수업 선생(꽤 유명한 시인)이 칭찬해줘 그 말만을 믿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나중에 시 수업 선생은 “돈 내고 수업하는 학생에게 그럼 못 쓴다고 하겠소”라고 말했단다.

이원하 시인

이원하 시인

술이 약하다고 한 이유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다 해보고 싶었다. 미용고를 졸업하고 언제나 일했다. 서울 압구정동 미용실에서 미용 보조를 2년 했다. 새벽 5시에 나와서 밤 10시에 들어갔다. 3년이나 3년6개월을 다니면 보조 생활을 벗어나는데 2년 만에 그만두었다. 미용이 재미없어져서다. 다른 게 있다고 생각했지만 뭔지는 몰랐다. 문소리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서 연기 워크숍에 등록하고 단역 배우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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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여름방학 끝나기 전 급하게 쓰던 일기가 다였기에 아카데미 시 수업 시간,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이들 틈에서 ‘미운 오리 새끼’ 같았다. 제주도에 간 건 다른 시보다 눈에 띄고 싶어서였다. 당선작 시의 원래 제목은 ‘혼자 살고 술도 약해요’였는데 ‘제주에서’를 붙였다. 사실 술도 세다. 약하다고 한 건 “반하게 하려고요. 유혹하려고요”. 이 시인이 으흐흐 웃었다. 솔직한 시를 읽으면 미소가 지어진다. ‘봄/ 여름/ 가을을/ 잔뜩 공들였는데/ 이게 웬 겨울인가요’, ‘술집의 유일한 사자성어 해물파전’, (회색 가스통에 대고는) ‘속을 알 수 없으니 일단 아껴야 합니다’ 구절에 파안한다. 유머러스하지만 낙천적이진 않다. ‘결핍에게 슬쩍 전화를 걸었는데 받았어,/ 받았어/ 결핍이 맞았던 거지’ ‘나무는 신처럼 하늘과 가깝고… 내 소원을 들어줄 리 없다’처럼 “가슴 아프게, 다 슬펐을 때 쓴 건데, 너무 슬픈 감정을 보여주지 못하겠다는 강박이 강해서 슬퍼지려 하면 유머러스하게 간다”. 그래서 자기 시집의 웃음에 대해 “자신에게 특별히 이로울 것 없는데도 그저 그럴 수밖에 없어서 계속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볼 때 시인은 그가 웃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신형철 평론가가 이야기했을 때, “무당에게 신점 본 느낌”이었다. 시집 해설을 받기 전 신 평론가에게 해설을 잘 써달라고 부탁하려고 엽서를 썼다. 동쪽 오도리에 살았지만 서쪽 모슬포라면 소인이 예쁠 것 같았다. 찾아갔더니 우체국에서는 ‘소인은 이제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 것은 찍어주셔야 합니다”라고 주장해 겨우 찍었다.

두 번째 시집도 수월하게

현재 산문집 원고까지 넘기고 제목을 정하는 중이다. “시집에 있는 시를 어떻게 썼는지 알려주는 산문이에요.” ‘섬은 우산도 없이 내리는 별을 맞고’를 지은 것은 용눈이오름을 올라가고 나서다. 불빛이 없는 밤에도 길가에 깨어 있는 소와 말들이 손전등 불빛에 드러났다. “짙어지는 걸 거스르면/ 옅어질까요?”라고 시인은 썼다. 그렇게 숫제 시인의 비밀이 다 드러나면 무얼 먹고 살려고 이러나. “사랑을 이루지 못했으니 두 번째 시집도 수월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짝사랑은 한결같았을까. 짝사랑은 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선 똑같았다.

대신 시를 쓰려면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다. 이 시인은 지난해 1월 시집 원고를 완성한 뒤 경기도 과천으로 올라왔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떠날 계획이었다. “여기서는 떠오르는 게 없어요. 태어난 곳이라서 그런가봐요. 안 태어났으면 새로웠을 텐데.”

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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