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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탈핵 희망’ 읽어요

어린이책시민연대 창원지회 회원들이 ‘엄마의 마음으로’ 고른 탈핵 어린이책 6권
등록 2017-10-13 23:50 수정 2020-05-03 04:28
어린이책시민연대 창원지회 회원들이 엄마의 마음으로 먼저 읽은 탈핵 관련 어린이책을 추천합니다. 서툴지만 진실한 ‘추천사’도 함께 담았습니다. 창원지회는 지난 9월6일 경남 밀양 할매·할배들을 초대해 탈핵·탈송전탑 토크 콘서트도 열었습니다. 이날 처음 시작된 할매·할배들의 ‘탈핵 토크’는 이후 전남 순천, 충남 아산, 서울 은평구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_편집자
이진희 이진희 제공

이진희 이진희 제공

변기자 글, 정승각 그림, 박종진 옮김
사계절 펴냄
1만3천원

‘솔~ 솔~ 미파솔~ 라~ 라~ 솔~.’ 책을 읽다가 계이름을 흥얼거려보고 금방 알았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멜로디 이라는 것을. 1940년대에 일본으로 징용 끌려간 남편을 따라 할머니는 일본 히로시마로 갔습니다. 1945년 8월6일 아침,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남편은 죽고 배 속 아기는 원자병에 걸린 채 태어났습니다. 봄에 태어난 할머니의 아기는 춘희라는 어여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흔셋의 춘희는 여전히 기저귀를 해야 하는 아기입니다. 할머니는 언제나 춘희에게 을 불러주십니다.

할머니가 사시는 일본의 작고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에 유미라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가 이사를 왔습니다. 유미는 아기 나이가 마흔셋이라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어떻게 아기가 우리 엄마랑 나이가 같지?’라며 이상해합니다. 지금 내 나이도 춘희와 비슷합니다. 유미 엄마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춘희. 무엇이 그녀의 삶을 망가뜨렸는지는 너무나 자명합니다. 전쟁과 핵폭탄. 누가 왜 전쟁을 일으키고 핵폭탄을 만드는 것일까요? 선량한 국민이 전쟁이나 핵폭탄을 원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전쟁과 핵폭탄의 피해는 모두 선량한 국민의 몫입니다.

최현정 최현정 제공

최현정 최현정 제공

레이먼드 브리그스 글·그림, 김경미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9500원

책의 표지가 참 인상 깊습니다. 선하게 생긴 노부부 뒤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핵폭발입니다. 전쟁이 날 것이라는 예보에서 시작해 핵폭탄이 터지고, 노부부가 방사능에 노출돼 죽어가는 과정을 그린 그림책입니다. 핵폭발이 일어난 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데 무슨 해가 있겠어요”라고 말하는 그들. 부인의 머리카락이 빠져도 대머리가 되지 않는다고 안심시키고, 온몸에 푸른 반점이 생겨도 연고를 바르면 된다고, 잇몸에서 피가 줄줄 나는데도 우유를 챙겨 먹으면 된다고 말하는 노부부가 너무 안타깝고 불쌍합니다. 만약 이런 일이 실제 일어난다면, 우리의 소중한 삶도 이 노부부처럼 끔찍한 모습으로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노부부와 달리 방사능에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아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안다 해도 방사능에 노출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지침서와 대피 방법도 소용없습니다. 어느 누가 제 발로 이런 재앙 속에 뛰어들고 싶을까요. 우리는 재앙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노부부가 그랬던 것처럼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의 원자력발전소는 쉼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윤희정 윤희정 제공

윤희정 윤희정 제공

김성호 글, 전진경 그림
길벗스쿨 펴냄
1만3천원

처음 밀양 송전탑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은 곳은 내가 다니는 어린이책시민연대를 통해서였습니다. 밀양 송전탑은 신고리 핵발전소 3·4호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서부경남 지역까지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송전탑과 연결되는 원자력발전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들과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습니다. 책을 읽고 원자력발전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이후 역사 속 인류에게 어떤 재앙을 주었는지, 그리고 이 재앙을 겪었음에도 원자력에 찬성과 반대가 엇갈리는 이유에 대해 양쪽 모두의 의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내게 원자력에 대해 물었을 때 설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지요.

양쪽 의견을 모두 알게 된 후, 내가 내린 선택은 ‘탈핵’이었습니다. 원자력은 지난 30년간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고 국민이 값싼 전기를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노후화된 원자력발전소가 점차 늘어날 겁니다. 후쿠시마나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사고가 우리나라에선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아니, 우리는 이미 2014년 봄 300명 넘는 어린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를 겪었습니다. 원인은 수명이 다한 노후 선박을 무리하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윤희 윤희 제공

윤희 윤희 제공

모리 에토 글,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고향옥 옮김
해와나무 펴냄
1만1천원

2011년 3월11일.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고 1시간 뒤, 쓰나미가 원자력발전소를 덮쳤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원자력발전소로부터 20km까지는 출입금지 구역이 되었습니다. 먹고 똥 누고, 먹고 똥 누고…. 많이 많이 먹고, 맛있는 고기가 되어야 하는 것은 인간이 정한 소들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간은 또 한번 소들의 운명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출입금지 구역의 소들에게 살처분 명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소치기인 나(희망의 목장 주인 요시자와 마사미)는 이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먹고 똥 누고, 먹고 똥 누는 소들에게 밥을 주며 돌봐주는 것 또한 나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살지 않는 땅, 아니 살 수 없게 된 땅에서 소치기인 나와 소들은 살아내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원자력발전소 사고 전과 모든 것이 똑같습니다. 소들은 먹고 똥 누고, 사계절이 지나고, 꽃이 피고 지고, 새들은 지저귀고, 찬 바람이 불고 그리고 눈이 오고…. 단지 사람들이 없을 뿐이지요.

모두가 떠나고 버려진 땅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과 소들을 지키는 소치기 아저씨. 아저씨의 투박한 소신이 생명이 떠난 땅에 다시금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아저씨가 버려진 땅에서 ‘살아내는 모습’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품는 희망이 정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러길 바라는 마음이 소치기 아저씨의 목장을 ‘희망의 목장’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이정림 이정림 제공

이정림 이정림 제공

김규정 글·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1만2천원

저는 평범한 두 딸의 엄마입니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여본 적도 그럴 필요도 못 느끼고 산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린이책시민연대 활동을 통해 어린이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며 세상에 대한 ‘참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밀양 송전탑 반대 활동도 알게 됐습니다. 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일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닫게 되었죠. 창원에서 있었던 ‘탈탈 북콘서트’에서 밀양 할아버지·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제 눈에는 그분들이 독립투사인 양 멋져 보였고, 양심을 지키기 위해, 오로지 후손에게 물려줄 건강한 땅을 위해 그렇게 힘든 시간 버티신 것이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다고 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 그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아이들도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따뜻한 마음을 갖기 바라봅니다.

이 책은 밀양 송전탑 아래에서 살아가게 된 큰 할매의 이야기입니다. 학교는 못 다녔지만 생명이 제일 소중한 줄은 안다고 한 큰할매는 평범한 일상을 뺏기고 이웃과도 등지고 살아가지만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면서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 희망은 송전탑이 뽑힐 때까지 싸우겠다던 할아버지의 의지와 나 같은 사람들의 작은 힘이 보태어져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정화 이정화 제공

이정화 이정화 제공

구드룬 파우제방 글, 최혜란 그림, 함미라 옮김
보물창고 펴냄
1만2천원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전, 독일에서 일어난 가상의 핵폭발을 다룬 이 동화는 여름방학을 맞아 쉐벤보른에 있는 외가로 가던 롤란트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동독과 서독의 긴장 상태가 고조되고 있었지만, 아빠는 정치는 정치가들이 알아서 하는 거라며 우리 가족의 여행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행길에 일어난 핵폭발은 롤란트 가족의 일상을 한순간에 파괴합니다. 롤란트 가족은 외할머니 댁에서 의식주를 해결하지만, 나와 내 가족이 살기 위해 엄마는 창밖에서 도와달라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외면합니다. 롤란트는 병원에서 병자를 돌보는 리자 할머니를 도와 목구멍이 타들어갈 것 같다며 물을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입에 물을 부어줍니다.

부모를 잃고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버려진 성 아래에서 모여 삽니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눈과 다리가 되어주고 서로의 체온이 되어줍니다. 구걸한 음식을 나눠 먹고 그도 여의치 않자 도둑질을 해 배를 채우며 소리칩니다. 폭탄이 떨어진 건 어른들 책임이라고. 어른들은 자신들이 편하게 사는 것만 중요시했고 그 대가를 우리 아이들이 치르고 있다고. 함께 죽어가는 아이들은 지하실 벽에 숯으로 선명하게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천벌받을 부모들.’

정리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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